스위스 명품 브랜드 ‘빅토리녹스’, 美 고율 관세 직격탄…“시장 점유율 방어 위해 손실 감수”

스위스의 국민 브랜드이자 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스위스 군용 칼’ 제조사 빅토리녹스(Victorinox)가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심각한 경영 압박을 받고 있다.
회사의 CEO 칼 엘스너(Carl Elsener)는 최근 인터뷰에서 “현 상황은 그야말로 전례 없이 어려운 시기”라며 위기감을 내비쳤다.
지난 8월, 미국 정부는 스위스를 포함한 일부 유럽 국가에 대해 최대 39%에 달하는 수입 관세를 전격 부과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복귀를 노리는 정치 행보의 일환으로, 대미 무역수지 적자 축소를 명분으로 내세운 보호무역 정책의 연장선상이다.
이번 조치로 인해 빅토리녹스는 연간 약 1100만 유로(한화 약 157억 원)에 달하는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지난해 빅토리녹스의 총매출은 4억 1,700만 스위스프랑으로, 이 중 약 13%가 미국 시장에서 발생했다.
칼 엘스너 CEO는 “현 관세 체계가 유지될 경우, 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은 사실상 손해를 보고 판매하는 셈”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 점유율 방어를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밝혔다.
사전 출하·미국 내 조립 전략으로 ‘버티기’
회사 측은 미국 시장에서의 가격 인상 없이 공급을 이어가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동원하고 있다. 최근 미국에 두 컨테이너 분량의 스위스 아미 나이프 20만 개와 주방·전문용 칼 20만 개를 선출하한 바 있다. 이를 통해 2025년 말, 일부 제품은 2026년 3월까지 기존 가격을 유지할 계획이다.
또한 빅토리녹스는 스위스 내 주요 생산기지인 이바흐(Ibach) 공장의 자동화 투자도 가속화하고 있다. 해당 공장은 여전히 창업가문 출신 25명이 근무하는 상징적 공간으로, 생산 효율 개선을 통해 원가 절감을 꾀하고 있다.
관세 회피를 위한 전략도 모색 중이다. 제품의 일부 공정, 특히 최종 조립·포장 단계만 미국 내 협력업체를 통해 수행함으로써, 수입 시 과세 기준이 되는 ‘원산지 기준 가치’를 낮추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관세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다.
美 의존도 줄이고 아시아·중남미 확대 모색
중장기적으로는 미국 시장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전략도 추진되고 있다. 빅토리녹스는 최근 중남미와 아시아 시장에서의 유통 채널 확장을 본격화하고 있다. 현재 미국 내에서 판매, 마케팅, 물류 등 100여 명의 인력을 운영하고 있으나, 점차 비(非) 미국 지역으로 역량을 분산할 계획이다.
다만, ‘스위스 메이드(Swiss Made)’의 정체성은 고수하겠다는 입장이다. CEO 엘스너는 “스위스 아미 나이프를 스위스 외 지역에서 생산하는 것은 전혀 고려 대상이 아니다”라며 “브랜드의 신뢰는 스위스 장인정신과 품질에 기반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재 스위스 법상 ‘스위스 메이드’ 라벨을 유지하려면 최소 60% 이상의 제조 원가가 스위스 내에서 발생해야 한다.
스위스 수출 기업 전반에 ‘먹구름’
빅토리녹스의 사례는 스위스 제조업 전반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위스 기계산업연합(Swiss Mechanic)에 따르면, 관세 부과 이후 미국에서의 주문이 감소한 중소 제조업체는 전체의 45%에 달한다.
여기에 최근 들어 스위스 프랑이 달러 대비 12% 이상 강세를 보이면서, 환율 요인도 기업 수익성에 부담을 주고 있다. 빅토리녹스 외에도 제약업체 노바티스(Novartis), 로슈(Roche), 시계 브랜드 오메가(Omega)를 보유한 스와치 그룹(Swatch Group), 식품 대기업 네슬레(Nestlé) 등도 미국 관세 확대의 잠재적 피해 기업으로 거론되고 있다.
CEO 엘스너는 “현재 우리의 미국 투자 전략은 수익 극대화가 아닌 손실 감수를 전제로 한 시장 방어”라며 “불확실성이 큰 환경 속에서 시장 점유율을 지키는 것이 우선순위”라고 덧붙였다.
에코저널리스트 쿠 eocpresso2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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