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음 축제 현장의 “NO ICE”…美 이민단속국 요원 파견 시끌
시민들 “현대판 파시스트 나가라”

“밀라노는 ‘ICE’를 거부한다. 노 그라치에!(됐습니다)”
지난달 31일 오후 이탈리아 밀라노 시내 번화가인 ‘4·25’ 광장. ‘눈과 얼음의 축제’라는 동계 올림픽 개막이 일주일도 안 남은 밀라노에서 처음 맞닥뜨린 건 ‘No ICE’라는 팻말을 든 500여 명의 시위대 행렬이었다. 올림픽의 상징 오륜기를 다섯 개의 수갑으로 그린 팻말을 든 사람도 많았다. 동계 올림픽 개최지에서 ‘얼음(ICE)’을 반대한다는 게 어리둥절했다.
이들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을 반대하는 시위대였다. 시위는 지난달 말 미국이 자국 선수단과 함께 ICE 요원도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 현장에 파견한다고 발표하면서 촉발됐다. 미국 정부는 ICE가 선수단 경호와 J.D. 밴스 부통령 등 주요 인사의 안전 보장 등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지만, 밀라노 시민들은 “트럼프가 평화의 축제인 올림픽 정신을 훼손하려 한다”며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이날 시위대는 항의의 뜻으로 호루라기를 불며 “ICE는 트럼프의 반이민 정책 선봉에 선 현대판 파시스트들”이라며 “올림픽 현장에 절대 ICE를 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위대가 점령한 밀라노 시내에선 올림픽 주제곡 ‘판타지아 이탈리아나’ 대신 미국 포크 가수 브루스 스프링스틴이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발생한 ICE 요원의 총격 사건에 항의하며 만든 ‘미니애폴리스의 거리’가 장송곡처럼 울렸다.
밀라노 근교에서 1시간가량 걸려 광장을 찾았다는 발렌티나(49)씨는 “(ICE가) 올림픽 안보를 지키러 온다는데, 밀라노엔 경찰과 사설 경호원 등 보안 인력이 넘쳐난다”며 “이민자 단속이 주업인 그들이 올림픽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ICE는 오직 칵테일에만” “美이민단속국이 왜 이탈리아까지 오나”
이날 둘러본 밀라노 시내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반(反)이민 정책의 그림자가 동계 올림픽에 대한 흥분과 기대감을 뒤덮은 듯했다. 밀라노 중심지를 점령한 시위 인파 때문에 4·25 광장 일대는 보행자들의 진입이 차단됐고, 버스나 트램 등 대중교통도 2시간 가까이 마비됐다. 일반 시민이나 관광객도 발길을 돌려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야 했다. 광장 한편에 마련된 밀라노 코르티나 올림픽 기념품 매장은 당연하게도 ‘개점 휴업’ 상태였다.
시위대가 모인 4·25 광장은 이탈리아 파시스트 독재자였던 베니토 무솔리니가 반군에 의해 체포된 날(1945년 4월 25일 이탈리아 해방 기념일)을 기념하는 장소다. 현장에서 만난 에세르씨는 “자유로운 이민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파시스트 같은 ICE에 반대하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다”고 했다. 시위 행진을 한 마릴레나(67)씨는 “트럼프 때문에 이탈리아의 이민자들의 삶이 위협받는 것을 원치 않는다”며 ‘얼음(ICE)은 오직 칵테일에만’이라고 적힌 팻말을 흔들었다.
밀라노 시민 모두가 시위대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었다. 광장을 가로지르려다 인파에 막혀 발길을 돌린 한 여성은 “올림픽 덕분에 전 세계 관광객이 몰려오는 시점에 굳이 이런 불필요한 잡음을 내야 하는지 의문”이라고 인상을 찌푸렸다. 한 미국인 관광객은 “미국 정부 기관이 할 일을 했을 뿐인데, 왜 대서양 건너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를 정치적인 이슈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탈리아 정치권에선 이번 사태가 외교 문제로 비화할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안토니오 타야니 이탈리아 외무장관은 “시민들이 우려할 만한 (ICE) 요원들이 오는 것이 아니다”라며 진화에 나섰으나, 이탈리아노동총연맹(CGIL)과 파르티잔국가연합(ANPI) 등 좌파 성향 단체들은 조르자 멜로니 총리의 명확한 입장을 요구하며 올림픽 기간에도 대규모 시위를 예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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