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국의 역사에서도 태국인들의 존경을 받는 군주들이 꽤 여러 있는데,
그중에서도 한 명을 꼽자면
짜그리 왕조의 5대왕 라마 5세입니다.
짜그리 왕조는 현 태국 왕실의 왕조이기도 합니다.

현재 태국의 국왕은 짜그리 왕조의 10대왕 라마 10세죠.
우리는 태국하면 아시아의 거의 모든 국가들이 제국주의 열강들의 식민지가 되던 와중에 유일하게 중립국으로 살아남은 국가로 인식합니다.

태국이 식민지로 전락하지 않은 건
영국과 프랑스가 서로 싸움에 지쳐
태국은 중립국으로 두자고 협의를 본 외부적 요인도 있었지만,
그 내부적으로도 굉장히 치열한 분투가 있었습니다.

태국을 중립국으로 만든 태국의 국왕은 라마 5세였습니다.
태국은 라마 5세의 아버지이자 선대왕이었던 라마 4세부터
본격적인 근대화에 접어들었습니다.

라마 4세는 왕이 되기 전부터 서양에 대해 개방적인 사고관을 가진 덕에
왕이 되고 나서도 주체적으로 근대화를 추진했고,
아들 쭐랄롱꼰에게 어릴 적부터 근대적인 교육을 받게 했습니다.

그렇게 라마 5세로 즉위한 쭐랄롱꼰은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태국의 근대화를 완성합니다.
세금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국고를 늘린 뒤
라마 4세 때보다 훨씬 많은 근대식 교육기관을 확대했고
근대식 우편 기관과 병원을 설립하였습니다.
태국 최초로 내각제를 실시하기도 했죠.

라마 5세는 각종 사회간접자본 설치에 집중하였고
1890년엔 왕립철도청을 만들고
1894년 몇몇 주요 도시를 잇는 철도를 개통하였습니다.
라마 5세 치세의 태국은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였죠.

1902년 라마 5세는 태국의 화폐 오늘날의 바트화를 발행했고,
1905년에는 신분제를 폐지했습니다.
무엇보다 라마 5세는 영국과 프랑스의 위협으로부터
태국을 지켜내기 위해 외교에 가장 큰 힘을 쏟아부었습니다.

라마 5세가 양옆의 영국과 프랑스 사이를 파악하고 두 국가를 조율하며
줄 것은 내주고 최악을 피하려고 했던 라마 5세의 외교를
‘대나무 외교’라고 부릅니다.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긴 하지만 꼿꼿함은 유지하는
대나무의 특성에 빗댄 표현이죠.

19세기~20세기 제국주의 국가 아니면
누구나 제국주의 바람에 흔들릴 수밖에 없었지만
그 흔들림을 유연함으로 승화하여
자주적 태국의 꼿꼿함을 지켜낸
라마 5세 최대의 업적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