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 반대에 무산된 종부세 완화… 집값 수억 내려도 세금 올랐다

정순우 기자 2022. 11. 22. 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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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명에게 세금 고지서 발송
부담 완화 조치, 야당에 막혀 1주택자 세금 큰 폭으로 증가
공시價보다 실거래價 낮은데… 종부세 66만원 늘어 302만원

서울 송파구의 30평대 아파트에 10년째 사는 직장인 A씨(47)는 21일 오전 국세청 홈페이지에서 종합부동산세를 확인하고는 눈을 의심했다. 작년 55만원이던 종부세가 올해는 거의 배(倍)로 늘어난 95만원으로 고지됐기 때문이다. 올해 아파트 공시가격(15억8100만원)이 작년보다 18% 오른 것을 생각하면 종부세 인상 폭이 공시가격의 4배 수준이다. A씨가 사는 아파트는 같은 면적이 지난달 18억7000만원에 팔렸다. 올해 3월 실거래가(24억2000만원)보다 5억5000만원이나 내렸다. 그는 “최근 집값이 수억 원 내렸는데, 종부세는 더 많이 내게 됐다”며 “정부가 1주택자 보유세 부담을 덜어준다고 해서 내심 기대했는데,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이날 올해 종부세(주택 및 토지) 과세 인원이 130만7489명이라고 밝혔다. 주택분 종부세의 경우 121만9849명으로 작년(93만1484명)보다 28만명 넘게 늘었다. 전국 주택 소유자의 8.1%에 달한다. 경기도·부산 등 지방의 종부세 대상자가 급증하면서 서울 이외 지역 과세 인원이 63만8520명(52.1%)으로 처음으로 서울(58만4029명)을 앞섰다. 서울만 따지면 전체 주택 소유자(260만2000명)의 22.4%로 집을 가진 4명 중 1명은 종부세를 내게 됐다. 1주택자로 종부세를 내는 인원은 23만명으로 집계됐다.

올해 종부세 부과액이 공개되자 1주택자들 사이에서 ‘예상보다 너무 많이 나왔다’는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특히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공시가격 인상 정책으로 최근 수년 사이 종부세 과세 대상이 된 공시가격 12억~15억원 수준 주택 보유자는 불과 1년 만에 종부세가 3~4배 늘어난 경우도 있다. 윤석열 정부가 1주택자 종부세 경감을 위해 추진한 지난해 공시가격으로 과세, 기본 공제액 확대 같은 정책이 야당 반대로 무산되면서 국민 부담만 가중시켰다는 비판도 나온다. 종부세는 다음 달 1일부터 15일까지 홈택스(www.hometax.go.kr)나 손택스 애플리케이션을 이용하거나 관할 세무서로 내면 된다.

정부가 추진했던 종합부동산세 완화 조치들이 입법 불발로 줄줄이 무산되면서 상당수 1주택자가 예상보다 많은 종부세 고지서를 내야 할 처지가 됐다. 최근 집값 내림세가 확산하고 일부 단지에선 올해 공시가격보다 낮은 실거래가가 등장한 경우도 있다. 서울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지난여름부터 본격적으로 집값 하락세에 속도가 붙었는데, 21일 고지된 종부세는 집값이 내리기 전인 올해 1월 1일 기준 공시가격으로 부과된다. 이처럼 주택 시장 분위기가 냉각된 가운데 작년보다 세금 부담만 늘어난 경우가 많아 납세자의 반발이 거셀 것으로 전망된다.

◇예상보다 많이 나온 종부세에 1주택자들 ‘한숨’

종부세가 작년보다 큰 폭으로 늘어난 사례는 강남처럼 집값이 비싼 지역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84㎡(이하 전용면적)를 부부가 절반씩 공동으로 소유한 경우의 종부세는 14만6000원에서 올해 38만4000원으로 163% 늘어난다. 성동구 ‘래미안옥수리버젠’ 84㎡ 역시 종부세(부부 공동명의)가 지난해 17만5000원에서 60만원으로 거의 4배가 됐다.

지난해 폭등세(19.1%)를 보인 전국 아파트 공시가격은 올해도 17.2%나 올라 연초부터 과도한 세금 부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이에 정부는 지난 3월 작년 공시가격 기준으로 올해 재산세와 종부세를 매기겠다고 발표했고, 5월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1주택자 종부세 기본 공제액을 공시가격 11억원에서 14억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해당 내용을 담은 법 개정안들은 ‘부자 감세’ 논리를 앞세운 더불어민주당의 반대 때문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결국 법 개정이 필요 없는 공정시장가액비율(세금 산정 때 공시가격에 적용하는 할인율)을 100%에서 60%로 내려 올해 종부세가 부과됐다. 하지만 납세자들이 체감하는 세 부담 완화 효과는 미미했다. 특히 종부세 공제액을 14억원으로 올리는 방안이 무산되면서 공시가격 11억~14억짜리 1주택 보유자 약 10만명은 ‘희망고문’만 당한 꼴이 됐다.

종부세 규모가 큰 초고가 주택 보유자는 공정시장가액비율 하향으로 혜택을 입었다. 공시가격 46억원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전용 178㎡를 부부가 공동으로 소유한 1주택자는 작년 3366만원이던 종부세가 올해 1795만원으로 줄었다. 시중은행 소속 한 세무사는 “기본 공제 금액 상향 조치가 무산되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한 집을 가진 종부세 부과 대상 1주택자의 부담은 늘어난 반면, 기본 공제와 관계없는 고가 주택 소유자들은 세금이 많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집값 급락하는데 세금 더 내라니” 조세 저항 거셀 듯

애초 기대와 달리 1주택자 종부세가 크게 늘면서 납세자들의 불만이 폭주할 전망이다. 특히 금리 인상 여파로 올 들어 9월까지 서울 아파트 실거래가가 8.6% 내렸고, 최근 들어 실거래가가 공시가격을 밑도는 경우까지 속출하면서 ‘조세 저항’이 심상치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서울 송파구 잠실주공 5단지 전용 76㎡(1층)의 올해 공시가격은 19억3700만원인데, 지난달 19억850만원에 거래됐다. 공시가격 역전 현상이 벌어진 것이다. 최근 실거래가를 기준으로 올해 종부세를 매겼다면 130만원 정도지만, 실제 부과액은 302만원이다. 작년 종부세는 236만원이었다.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공시가격을 너무 가파르게 올린 탓에 집값 하락기에 실수요자인 중산층 1주택자에게 과도한 부담을 주고 있다고 지적한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수시로 바꿀 수 없는 공시가격은 급작스러운 시장 변화에 대비하기 위해 시세와 일정 수준의 격차를 유지했던 것인데, 지난 정부가 이런 안전장치를 없애 버렸다”고 말했다.

정부도 납세자들이 세 부담 완화 정책의 효과를 체감하려면 보다 전향적인 조치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 애초 국토교통부는 내년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을 올해(71.5%) 수준으로 동결할 계획이었지만 작년 이전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까지 검토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도 내년도 세법 개정을 통해 종부세 세율 인하, 다주택자 중과 폐지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부의 대국민 약속은 최소한 2020년 수준으로 세금과 국민 부담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라며 “부담이 덜어진다는 것을 국민들이 선명하게 느낄 수 있도록 기획재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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