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둥 같던 아들은 왜 죽어야 했나”···연휴 끝 디엘이앤씨 찾은 8번째 중대재해 사망자 강보경씨 유가족

전지현 기자 2023. 10. 4.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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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앨이앤씨 일용직 하청노동자 고 강보경씨의 어머니(가운데)가 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앞에서 열린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 중 슬픔에 잠겨 있다. 고 강보경 노동자는 지난 8월 11일 부산 연제구 소재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하여 사망했다. 조태형 기자

아들을 잃은 어머니는 유난히 길었던 명절을 눈물로 지새웠다. “우리 애기 어디 갔나···.” 이숙련씨(70)는 아침저녁으로 읊조렸다고 했다. “추석을 영영 빼앗겨 버렸다”는 이씨와 그의 딸 강지선씨(33)는 4일 검은 상복을 입고 서울 종로구 DL이앤씨(디엘이앤씨·옛 대림산업) 본사 건물 앞에 섰다. 노모는 환하게 웃고 있는 아들의 영정을 끌어 안고 눈물을 흘렸다.

이씨의 아들이자 지선씨의 동생인 고 강보경씨(29)는 지난 8월11일 세상을 떠났다. 하도급업체 KCC소속 일용직으로 일하던 고인은 디엘이앤씨의 부산 연제구 신축 아파트 6층에서 창호 교체작업을 하다가 20m 아래로 추락했다. 3인1조로 거실 창호의 유리 교체 작업을 하던 중 틀이 떨어져 나가면서 이를 잡고 있던 강씨가 함께 추락했고,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사망했다.

7월쯤부터 근무를 시작했던 강씨는 창호 보수 작업에 투입된 것은 사고 당일이 첫날이었다고 한다. 현장에 추락 방지 고리·안전망 등 안전장치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가족들은 중대재해에 대한 고용노동부와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촉구하고,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거리에 나섰다. 노동·시민사회단체도 힘을 보탰다. 중대재해 없는 세상 만들기 운동본부 등으로 구성된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는 이날 오전 유가족들과 디엘이앤씨 본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발족을 선포했다.

디엘이앤씨 중대재해 근절 및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회원들과 유가족들이 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앞에서 열린 대책위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고 강보경 노동자는 지난 8월 11일 부산 연제구 소재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하여 사망했다. 조태형 기자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지난해 1월 이후 디엘이앤씨 공사현장에선 중대재해만 7건이 발생해 강씨를 포함한 8명이 숨졌다. 강씨의 누나 지선씨는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사람이지만, 이 회사의 작업장이 안전하지 않다는 것만은 알겠다”며 “동생 이후 8번째, 9번째 사고가 또 일어나서는 안 된다”라고 했다. 유관기관의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노동자 8명이 숨지는 동안 디엘이앤씨 대표이사가 검찰에 송치된 건은 단 한 건도 없었다.

가족들은 사고가 나기 전까지 강씨가 건설현장에서 근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했다. 지선씨는 “사고가 났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달려가며 동생이 제발 중환자실에 있길 바랐다. 그런데 안치실에 있다더라. 세상이 무너졌다”라며 눈물지었다. 가족들은 강씨가 “홀로 남매를 키운 어머니만 바라보며 살아온 집안의 기둥이었다”고 했다. 나노공학 석사 학위를 이수한 강씨는 취업을 앞두고 있었다고 했다. 지선씨는 “학사·석사 과정 중에도 급식소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하던 동생”이라며 “이번에도 집에 알리지 않고 생활비를 벌려고 공사현장 일을 했던 것 같다”라고 했다.

유가족들에게 청천벽력 같았을 사망 소식 이후 그의 죽음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거의 없었다. 지선씨는 사고 다음날 현장 관리자들과 함께 사고 현장답사를 나갔다. 하지만 동생이 추락한 6층 거실은 잠금장치가 걸려 있어 출입할 수 없었고, 사진 촬영도 제지당했다고 했다. 유가족들은 사고 당일 함께 근무한 동료 노동자를 만나고 싶다고 요청했지만 이마저도 거부당했다고 했다. 시민대책위는 “책임감을 느끼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기울이는 모습이 아닌 사고 장소를 은폐하고 사고를 무마하는 데 전력하는 모습”이라고 회사를 비판했다.

고 강보경 일용직 하청노동자의 어머니가 4일 서울 종로구 디엘이앤씨 사옥에서 중대재해 사망 시민대책위원회 발족 및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마친 후 디엘이엔씨 관계자들과 면담을 요구하며 슬픔에 잠겨 있다. 고 강보경 노동자는 지난 8월 11일 부산 연제구 소재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에서 작업 중 추락하여 사망했다. 조태형 기자

유가족과 시민대책위는 디엘이앤씨에 반복되는 중대재해 발생을 막기 위한 근본 대책을 수립하라고 요구했다. DL그룹과 디엘이앤씨 대표에게는 유가족에게 공개 사과할 것을 촉구했다. 지선씨는 “장례식 이후 두 달이 되도록 그누구에게도 죄송하다는 말을 들을 수 없었다”라고 했다. 어머니 이씨는 “하루를 빠짐없이 매일같이 전화해서 밥은 먹었는지, 하루를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오던 아들이었다”며 “내 아들을 살려낼 수 있다면 아무 것도 필요 없다”고 눈물을 흘렸다.

기자회견을 마친 유가족들은 사측 담당자를 만나 입장문을 전달했다. 이들은 5일부터 회사 앞에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엄벌, 재발방지대책 마련 등을 촉구하기 위한 1인 시위를 이어갈 계획이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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