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주·ETF 집중 매수...금융당국, 서학개미 국내증시 유턴 방안 고심
1500원을 넘보는 원달러 환율에도 불구하고 서학개미들의 미국주식 사랑이 식을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코스피 지수 5000선 돌파 기대감이 커지는 상황에서도 좀처럼 '국장'(국내 증시)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에 금융당국은 서학개미의 국내증시 유턴과 환율 안정을 위한 다양한 상품 허용과 규제 완화를 검토하고 있다.

20일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지난 15일 기준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보관액은 1705억달러(약 251조2448억원)로 집계됐다. 작년 말 1636억달러(약 241조1000억원)와 비교하면 2주 동안 69억달러(약 10조1699억원)나 불어난 셈이다.
최근 원달러 환율이 1470원을 상회하는 등 환율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지만 서학개미들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다.
미국 주식 보관액은 2022년부터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2022년 말 442억달러(약 65조1887억원)에서 2024년 말 1121억달러(약 165조2588억원)로 2년 사이 153%나 급증했다.
서학개미들의 주요 투자 대상은 기술주와 상장지수펀드(ETF)로 나타났다. 테슬라(276억달러)를 비롯해 엔비디아(179억달러), 알파벳(72억달러), 팔란티어(65억달러), 애플(43억달러)이 1∼5위를 차지했다.
이와 함께 나스닥 100 지수를 추종하는 'INVESCO QQQ TRUST SRS 1', S&P 500 지수를 추종하는 'VANGUARD SP 500 ETF SPLR', 나스닥 100 지수를 3배 추종하는 'PROSHARES ULTRAPRO QQQ' 같은 ETF도 인기있는 투자 대상이다.
이 중 'PROSHARES ULTRAPRO QQQ'는 우리나라에서는 출시되지 않은 고위험·고배율 상품인데, 금융당국은 이 상품처럼 특정 종목이나 지수 수익률을 3배 이상 추종하는 상품을 국내 증시에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지난달 정부는 보유 해외 주식을 매각한 뒤 자금을 '국내시장 복귀계좌'(RIA)를 통해 국내 주식에 1년간 투자하면 해외주식 양도소득세(20%)를 1년간 한시적으로 부과하지 않는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유인책이 서학개미의 국장 복귀를 유도할 수 있을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이수정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서학 개미의 환류가 국내 증시에 미치는 영향은 환율보다 더 유의미할 수 있다"며 "특히 자금이 대형주와 지수형 ETF로 쏠린다면 체감 영향은 더욱 강력해진다"고 말했다.
한편 서학개미들의 미 증시 투자가 갈수록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로 촉발된 미국-유럽 간 무역전쟁이 향후 미 증시와 글로벌 금융시장에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인공지능(AI) 붐에 대한 고평가 논란 역시 완전히 사그라들지 않은 상황이다.
이와 관련, 로이터통신은 19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이 유럽 8개국을 상대로 '그린란드 관세' 부과를 위협하면서 금융시장에서 '셀 아메리카'(Sell America·미국자산 매도) 우려가 재부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19일 뉴욕증시가 마틴 루서 킹 주니어 데이를 맞아 휴장한 가운데 선물시장에서 미 동부시간 정오 무렵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500과 나스닥 종합지수 선물은 모두 1% 안팎 약세를 보였다.
이날 유럽 증시도 관세전쟁 우려가 재부상하면서 일제히 급락 마감했다. 유럽 우량주를 모은 유로스톡스50은 전장보다 1.72% 떨어진 5925.62로 거래를 마쳤다. 이날 하락 폭은 작년 11월18일 이후 2개월 만에 최대였다. 또 독일 DAX는 1.33%, 프랑스 CAC40은 1.78% 하락했으며 영국 FTSE100 지수는 0.39% 내렸다.
인사이트 엔베스트먼트의 프란체스카 포르나사리 분석가는 "많은 이들이 주말 사이 일어난 일에 상당히 경악하고 있다"며 "이들은 자신의 자산을 어떻게 보유해야 할지를 두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월 트럼프 대통령이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했을 당시 뉴욕증시에서 S&P 500 지수는 이틀간 12%나 폭락했고, 미 국채 시장에서는 투매 현상이 나타났다.
도이체방크 분석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미국의 가장 큰 채권자로 약 8조 달러(약 1경2000조원) 규모의 주식 및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도이체방크의 조지 사라벨로스 글로벌외환리서치 책임자는 "서방 동맹의 지경학적(geoeconomic) 안정성이 무너지고 있는 환경에서 유럽인들이 채권자 역할을 기꺼이 수행할지는 명확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일각에서는 최근 트럼프 리스크에도 불구, 금융시장 환경이 미국 주식과 국채의 투매를 야기했던 작년 4월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시각도 있다. 뉴욕증시에서 국부펀드 같은 큰 손 투자자들이 이탈할 정도의 위험은 아니라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