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마트 보틀벙커 창원점 폐점, 너무 짧았던 와인숍 전성기
메가 와인 큐레이션숍을 지향하는 롯데마트 보틀벙커에 먹구름이 드리웠다. 지난 2022년 경남권 와인 수요를 흡수하겠다는 목표로 출점한 창원중앙점이 오픈 2년여 만에 폐점을 결정하면서다. 롯데마트가 팬데믹 기간 국내 와인 수요에 맞춰 보틀벙커를 공격적으로 확장했지만, 동시에 재고가 쌓이는 시장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관련 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와인 편집숍의 전성기도 저물었다는 평가다.
16일 롯데마트에 따르면 롯데마트 맥스 창원중앙점의 보틀벙커 2호점이 이달 말 영업을 종료한다. 2022년 3월에 오픈한 지 2년5개월 만이다. 이로써 전국의 보틀벙커 매장은 잠실점, 창원중앙점, 광주상무점, 서울역점 등 총 4곳에서 3곳으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마트 관계자는 “창원중앙점의 경우 다른 매장과 달리 기대만큼 수익이 나오지 않아 영업종료를 결정한 것”이라며 “보틀벙커의 추가 출점계획은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경남 창원은 롯데마트가 서울 잠실에 이어 두 번째로 낙점한 지역이다. 경상권의 와인 수요가 그만큼 뒷받침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이 틀리지는 않았다. 2호점 개점 이후 맥스 창원중앙점의 주류 매출은 전년 대비 12배 성장할 정도로 기세가 좋았다. 이어 2022년 4월 오픈한 광주상무점 역시 그해 매출이 전년 대비 7배에 달했다. 롯데마트가 2021년 12월(잠실점)부터 지난해 9월(서울역점)까지 2년 동안 메가 편집숍을 4개로 확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하지만 기반은 탄탄하지 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와인 시장의 성장이 둔화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장조사기관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와인(일반포도주) 시장 규모는 팬데믹 이전으로 회귀하는 모양새다. 2021년 6400만리터에 달했던 소매판매량은 2022년 6300만리터로 주춤하더니 지난해 5400만리터로 쪼그라들었다. 이대로라면 코로나19 특수 이전인 2019년의 4300만리터 수준까지 하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의 목소리다.
판매량 하락은 수입량 축소를 초래했다. 관세청 통계에 따르면 와인 수입량은 2020년 5만4126톤에서 2021년 7만6575톤으로 치솟은 뒤, 이듬해 7만1020톤에 이어 지난해 5만6542톤으로 떨어졌다. 올해 상반기 역시 수입량은 2만4460톤으로 전년의 3만1309톤과 비교하면 21.9% 감소했다.
다만 2021년과 2022년의 수입량이 워낙 많다 보니 판매량과의 괴리가 발생했고, 재고 부담으로 이어졌다. 창원중앙점은 이를 소진하기 위한 시장재편의 일환이다. 결국 흐름을 거스르는 확장전략이 부메랑이 된 셈이다.
이런 가운데 보틀벙커 3호점인 광주상무점의 존립에도 시선이 쏠린다. 창원중앙점과 포지션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둘은 지역 주민의 수요에 초점을 맞춘 매장이어서 시장 축소의 여파가 더욱 크다. 팬데믹 시절에는 홈파티를 위해 이곳에서 와인을 찾는 고객이 많았지만, 엔데믹과 함께 관광이 활성화된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강원 양양, 경북 경주 등의 여행지 위주로 출점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앤소믈리에학과 교수는 “2021~2022년도의 과잉공급으로 시장이 위축됐다”며 “보틀벙커의 패착은 무리한 속도로 확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홈술(홈+술)에서 호술(호텔+술)로 트렌드가 변한 만큼 보틀벙커 등의 편집숍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주변에 4성급 호텔이 있고, 1박 이상을 머무는 관광지로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와인의 위기는 시장 전반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3개 점포를 폐점했던 신세계엘앤비의 와인 편집숍 와인앤모어 역시 올해 상반기에만 매장 3개를 추가로 정리했다. 지난해 이 회사의 매출은 전년 대비 12.5% 줄어든 1806억원, 영업이익은 93.8% 감소한 7억원에 그쳤다. 이외에도 금양인터내셔날과 아영FBC, 나라셀라 등 국내 주요 와인 유통사의 매출이 지난해 일제히 하락했다. 무엇보다 이러한 추세는 롯데마트의 고심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와인이 식료품 판매를 위한 미끼상품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롯데마트는 할인점 운영 방향을 그로서리 특화 매장으로 선회하고 출점을 확대하고 있다. 이를 위해 필수적으로 육성해야 하는 품목이 와인이다. 소비자는 와인을 단독 구매하기보다 곁들일 식품을 함께 사는 경향이 뚜렷하다. 보틀벙커가 롯데마트의 실적을 지탱하는 주요 사업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올 상반기 롯데마트(국내)의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45억원 줄며 적자로 돌아섰다.
박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