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조명의 세계_11편 : 주거 공간의 비스포크 건축 조명

조명설계 전문가가 소개하는 건축조명의 세계_ 11편 : 비스포크 조명

조명이 그저 어두운 곳을 밝히는 장치라고만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거주자의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도, 높일 수도 있는 것이 조명이다. 조명설계전문가 차인호 교수를 통해 매월 조명설계의 세계와 실제를 만나본다.


지금도 어제 방문한 건축주댁의 여섯 살 말괄량이 서연이가 웃고 뛰어다니며 숨바꼭질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건축주와 만나는 마지막 일정은 이렇게 이사 후 최종 점검으로 마무리된다. 설치된 조명의 배광을 포함해 스위치, 센서 작동에는 문제가 없는지 면밀하게 살핀다. 전체 공간 인상과 조명이 잘 어울리는지 판단하고 전문 건축조명 시스템을 일상에서 사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여러 가지 조언도 함께 덧붙인다.
상업 공간이라면 다른 이야기지만, 주거 공간이다 보니 건축주의 일상을 방해하지 않도록 최소한의 방문 시간을 잘 활용하여 체크하는 것이 우리 연구소의 원칙이다. 완성된 현장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시간이기에 해 질 녘에 방문해 보통 3~4종의 전문 장비로 촬영한다. 그러다 보니 특히 귀여운 아이들이 있는 경우 건축주 부부와 함께 촬영해 드리면 좋아하곤 한다. 가끔 완성된 현장의 건축주 가족사진을 보면서 힘든 업무를 이겨내는 것도 이 일의 큰 보람이다.

사진 촬영을 마치고 나니 건축주는 이미 친지들을 모시고 집들이를 하며 조명을 자랑했다고 전한다. “책장이나 선반, 주방 싱크대의 상부장 같은 가구에 들어가는 조명까지, 디테일을 교수님께서 직접 다 설계해 주니 너무 좋았습니다. 어디 가족여행으로 좋은 숙소에 묵더라도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만 들어요.”하며 미소 짓는다. 조명을 제대로 하고 나니 건축주가 집에 오래 머물고 싶다는 말은 마지막 현장 미팅에서 감사의 인사로 듣곤 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설계자로서는 가장 기쁜 순간이 아닐 수 없다.

사진 : 가족사진 뒤로 보이는 싱크대 상부장의 상하부 조명도 조리 공간에 필요한 충분한 배광 조건을 만족시키며 저녁 시간에는 싱크대 조명만으로 거실 공간의 전체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진 : 건축주가 별도로 구매해서 설치하고 싶었던 선반이 있어 상세 도면을 요청했고 필자가 직접 입면을 직접 그려 조명과 배광이 최적의 환경으로 완성했다.

인테리어 현장은 협업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 조명의 경우 공정의 후반부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보니 이전 공정의 높은 완성도와 협조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늘 긴장하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진행 상황을 예의주시하게 된다. 벽이나 천장의 마감 디테일도 조명과 직접 닿는 상황이기에 몇 배나 섬세하게 관찰해야 한다. 시공 방식에서도 현장과 긴밀한 협의가 필요할 때가 자주 있다. 제작 가구 역시 주방의 공간 인상을 좌우하고 거실까지 시선을 확장·연장하면서 싱크대의 상부장에 들어가는 상향광, 하향광까지 고민해야 한다.
이전에 온라인에 공개한 필자의 영상을 보고 그냥 겉모습만 흉내 낸 타사의 사례를 많이 보게 된다. 문제는 왜 그런 설계가 적용되었는지 정확하게 이해하고 카피한 것이 아니기에 싱크대 상판의 밝기가 충분치 않거나 색온도, 연색성에 문제가 있는 배광 문제가 많이 보여 안타까웠다. 그래서 최근 우리 연구소에서는 아예 자체 인테리어 시공팀을 두고 턴키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하니 완성도를 유지하면서 내 설계 목적과 의지대로 현장을 마무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을 줄이고 더 많은 소통을 통해 진행하기 수월해졌다.

직업병이겠지만, 기존의 조명이나 공간이 어지간하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다. 특히 한국의 기존 조명 장비나 시스템에 허점이 계속 보이고 공간 전체 인상에서도 개선할 사항이 수십, 수백 가지가 보인다.
대표적인 사례로 식탁, 특히 대형 아일랜드 테이블이나 8~10인 이상의 긴 식탁 팬던트 조명 장비로 긴 바 형태의 광원을 테이블 위에 매달아 설치하는 경우 수입 장비를 포함해 국산 장비까지 다 살펴보아도 문제가 많다. 그래서 우리 연구소에서는 이런 문제들을 개선한 제품을 납품, 시공하고 있다. 기존 제품 중 일부는 엄격한 필자의 눈에, 조명이라기보다는 예쁘게 생긴 장난감으로 보일 때가 있다. 극도로 슬림하고 모던한 외형 디자인에만 집중하다 보니 전문 조명 장비가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기능에서 결함이 많아진다. 히트싱크는 작아져서 칩의 방열구조와 안전성에 문제가 생겨 제품 수명에 영향을 미치고, 충분한 밝기를 확보하지 못하니 수평면 조도도 낮고 빛의 조사면도 넓지 않다. 그러니 최대한 테이블 면에 가까이 낮춰 설치해야 하는데, 사용자 머리가 닿거나 행동이 불편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 다른 문제는 이런 디자인 조명들의 가격이 성능과 배광 품질에 비해 터무니없이 비싼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합리적인 가격대로 제품을 직접 개발해 우리 연구소 현장에 설치되고 있다.
기존 슬림형 조명 장비가 가진 조형적 우수성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성능과 배광 모두를 완성도 있게 해결한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깊은 노력을 기울였다. 한 골프장 사무실 미팅룸 사례를 소개한다. 테이블 길이가 2,600㎜ 정도 되는데, 테이블 크기와 주변 공간 환경에 맞도록 비스포크(커스터마이징) 제품 그 상부에 전문 조명 장비를 설치했다. 회의용 시각 자료를 테이블에서 보기에 충분한 배광 조건의 전문 장비로 미팅룸에 다른 조명을 켜지 않고도 전체적인 공간 인상을 연출할 수 있도록 설계하고 시공했다. 이 최적의 출력과 배광을 유지하면서도 더 슬림한 형태로 만들기 위해 지금도 디자인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이렇게 3차 개선한 모델이 조만간 개발 완료될 예정이다.

왜 그런 설계인지 이해하고 카피한 것이 아니기에 밝기가 충분치 않거나 색온도, 연색성에 문제가 있는 배광 문제가 많이 보여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사진(위, 아래) : 스타 컨트리클럽(골프장) 사무실 미팅룸 A에 설치한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의 맞춤형 길이 2,400㎜의 팬던트 조명. 신제품 PDT-3867

다음은 벌써 3년이 지난 광장동 펜트하우스 사례이다. 많은 건축 공간적 한계와 문제를 많이 안고 있었지만, 필자가 설계와 시공을 함께 진행하면서 LDK의 전체적인 공간 인상을 횡으로 확장하는 방식으로 조명을 연출해 해결해 나갔다. 그 외에도 건축주가 요청하는 공간 인상은 건축화 조명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요소가 많다. 직접 가구 업체에 제작도면을 그려주고 여러 차례 목업을 제작하면서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 화장대 조명은 일반적인 메이크업 공간의 조명과 다른 느낌을 주도록 공간 해석이 필요했다. 건축주의 취향을 반영해 주변 가구나 마감재를 선정하다 보니 일반적인 국내 인테리어 사례와는 다소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심플하고 모던한 디자인을 지양하고 부분적으로 드라마틱한 연출 설계로 마감했다. 광원부 이중 유리 구조의 벌브 내부를 샌딩처리하고 빛의 확산도를 다시 점검했다. 건축 조명의 개념이 지금보다도 미약했던 당시에 건축주에게 전문성을 가지고 조명을 깊이 있게 고민하면 이렇게까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림 : 화장대 조명 제작을 위한 프로토타입 설계.
사진 : 목업 제작을 거쳐 현장에 설치 완성된 화장대 조명, 지금도 건축주가 만족하며 잘쓰고 있다며 감사의 메시지를 보내주고 있다. 눈부심 없이 환하고 쾌적해서 좋다는 평이다.

욕실조명, 그중에서도 욕조를 위한 조명 장치는 이 현장만의 욕조 크기와 소재감에 따라 다른 설계가 필요했다. 그리고 그에 따른 변화에 맞춰 입욕 환경 차이를 명확하게 인지해야 했다. 고가의 수입 욕조를 건축주가 구매하기 전에 조명 환경 테스트를 진행하기 위해 양해를 구해 판매처 쇼룸에 조명을 설치하고 배광 조건을 맞추었다. 내부의 황금빛 마감을 강조하기 위한 최선의 배광과 조명 환경으로 설계하고 시공했다. 프라이빗한 공간이라 현장에 욕조를 안치하고 욕실의 한쪽 벽을 통유리로 설계했다. 목욕을 즐기면서 반대편의 드레스룸과 파우더룸을 볼 수 있도록 조명으로 시선을 확장시키고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사진 : 광장동 펜트하우스의 욕조 조명설치 후 현장의 2차 조명 테스트.
사진 : 욕조와 변기, 샤워기가 놓인 완성 모습, 전면 통창으로 공간감을 극대화했다.

아래 프로젝트에서는 현관 앞에 신발 수납만을 목적으로 하는 슈즈룸도 별도로 갖추고 있었다. 슈즈룸은 여성 의뢰인 단 한 사람을 위한 공간이기에 신발장의 선반 높이를 사용자, 여성 건축주 키 165㎝에 맞추어 설계하고 조명 배광도 그에 맞춰 설정하는 방식으로 철저히 비스포크 공간과 조명 환경을 연출했다. 시선보다 높은 선반이나 아래쪽 선반은 수납된 신발을 제대로 보기 어렵다. 편하게 서서도 모든 높이의 선반에 놓인 신을 잘 볼 수 있도록 시선 높이에 따라 선반의 바닥 기울기 각도를 조절하여 고개를 숙이거나 몸을 별도로 움직이지 않아도 쾌적하게 신을 보고 고를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이에 따른 각 선반의 조명 환경도 각 선반 높이에 따라 각기 다른 쾌적한 설계가 적용되었다. 드레스룸 중앙의 안경 쇼케이스도 하단에는 서랍을 열면 자동으로 별도의 조명이 점등되어 서랍의 내부를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사진 : 광장동 펜트하우스 슈즈룸 내부, 건축주 키와 시선을 중심으로 비스포크 가구와 조명을 설계했다.
사진 : 안경 쇼케이스가 놓인 파우더룸과 드레스룸. 확장되는 시선으로, 욕실에서 입욕하며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설계했다.
공간의 사용자, 가족구성이 다르기에 취미나 라이프스타일에도 차이가 있고 공간에 요구하는 바가 각기 다르기에 같은 공간이어도 가구 배치나 공간환경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정된 작업시간과 예산 문제로 모든 주거 공간을 이렇게 광장동 펜트하우스 사례처럼 완성도 높여 만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조명을 얼마나 공간의 문제나 사건과 연결하여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제한된 시간과 비용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매 학기 첫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디자인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문제 설정이 잘못되어 있거나 문제를 아예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필자는 모든 의뢰인의 현장에 각기 다른 문제를 설정하고 이를 설계목표로 삼는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동일한 유형의 공간이 의뢰가 왔을 때가 있었는데 그럼에도 두 공간의 결과물이 다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두 공간의 사용자, 가족 구성이 다르기에 취미나 라이프스타일에도 차이가 있고 공간에 요구하는 바가 각기 다르기에 가구 배치나 공간환경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설계자가 건축주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문제(각 공간의 설계상 차별점, 설계자의 해결 목표, 건축주 요청 사항)를 설정하다 보면 매번 다른 문제의 해답을 찾아가는 재미있는 수학 문제를 푸는 느낌이다. 그래서 이 일이 힘들고 어렵지만, 기쁘고 보람된 작업의 연속이다.

여기서 학생들이나 연구소(회사)의 식구들에게 강조하는 것 중 하나는 설계나 시공 현장에서는 당장 보이는 답안지의 풀이 방법에만 의존하여 쉽고 편하게 풀어가려고 하기보다 문제를 제대로 설정한 후에 꼭 필요한 답을 찾는 데만 집중해 달라고 요청한다. 다른 말로 대충 대충 일하지 말라고 한다. 대강대강 일하는 것이 습관처럼 굳어지는 것, 늘 하던 대로만 처리하고 마는 것이 일상의 루틴이 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한다. 이 부분은 다음에 기회에 지면을 따로 마련했으면 한다.


글·사진_ 차인호 교수 :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

성균관대학교 교수, 디자인학 박사(Ph.D. 건축조명 + 공간계획). 전문 건축조명과 인테리어 회사인 ‘차인호 공간조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권위 있는 IALD(국제조명디자이너협회)의 최고 레벨인 Professional Member이다. 일본 Musashino Art Univ.,에서 건축조명디자인 분야 세계적 거장 멘데 카오루(面出薰, LPA 대표)를 석사과정 지도교수로 모시고 건축조명디자인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면서 세계적 건축가가 설계하는 싱가폴 도시계획조명, 롯본기 모리타워 등 국제적 대형 건축조명 프로젝트에 참여해왔다. 귀국 후에는 한국의 공간환경에 적합한 빛의 공간을 직접 연구한 조명기구로 설계, 시공하며 만들고 있다. www.inholighting.com

구성_ 신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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