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직업이 된 여자, 다섯 번째 남편에게 빠지다

▲ 시리즈 <트렁크> ⓒ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알려줌] 시리즈 <트렁크> (The Trunk, 2024)

결혼이라는 제도는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결혼을 선택하지 않는 이들이 늘어나는 한편,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서 새로운 형태의 관계를 모색하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트렁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기간제 결혼'이라는 파격적인 설정으로 풀어낸다.

<트렁크>의 중심에는 기간제 결혼 매칭 업체 'NM(New Marriage)' 소속의 '노인지'(서현진)가 있다.

'인지'는 네 번의 계약 결혼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베테랑 계약 배우자다.

다섯 번째 결혼 상대로 만난 '한정원'(공유)은 과거의 트라우마로 인한 불안과 외로움을 안고 사는 음악 프로듀서다.

전처 '이서연'(정윤하)과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인지'가 요구한 기간제 결혼에 마지못해 응한 '정원'은 처음에는 '인지'와의 어색한 동거 생활을 겪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예상치 못한 변화를 맞이한다.

매일 밤 반복되던 악몽이 줄어들고, 약 없이도 잠들 수 있게 되면서 '이서연'과 살 때는 느끼지 못했던 낯선 온기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주목할 만한 것은 작품이 취하는 독특한 서사 구조와 캐릭터들의 복잡한 심리다.

새로운 남편 '윤지오'(조이건)와의 결혼 생활을 즐기는 듯 보이는 '이서연'은 여전히 '한정원'과 '노인지'에게 모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맹목적 애정을 시험하듯 자신에게만 매달리던 '한정원'의 변화에 불안을 느끼는 '서연'의 모습은, 현대인의 왜곡된 사랑과 집착을 대변한다.

'노인지' 역시 이전의 계약 결혼들과는 전혀 다른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철저한 매뉴얼대로만 움직이던 '인지'가 다섯 번째 남편 '한정원'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기 시작하면서, 이야기는 더욱 복잡한 국면으로 접어든다.

여기에 수상한 남자 '엄태성'(김동원)이 '노인지'의 주변을 맴돌며 미스터리한 분위기는 한층 고조된다.

작품의 미학적 성취는 이러한 복잡한 인물들의 감정선을 섬세하게 포착해 내는 데서 빛을 발한다.

김규태 감독은 호숫가에 떠오른 의문의 트렁크를 중심으로, 물속에 가라앉아 있던 진실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과정을 긴장감 있게 그려낸다.

김규태 감독은 "과하지 않은데 과감한 스타일"을 추구했다고 밝혔는데, 이는 단순히 영상미의 차원을 넘어선다.

극 중 등장하는 모든 소품과 공간이 인물의 감정과 상황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이는 작품의 주제 의식을 강화하는 연출적 전략으로 읽힌다.

특히 제목이기도 한 '트렁크'는 단순한 소재를 넘어 작품의 핵심적인 메타포로 기능한다.

호숫가에 떠오른 트렁크가 품고 있는 비밀은, 현대 사회에서 결혼이라는 제도가 감춰온 진실들에 대한 은유로 해석될 수 있다.

이는 작품이 취하는 미스터리적 요소가 단순한 장르적 장치를 넘어, 우리 시대의 결혼과 사랑에 대한 성찰적 시선으로 이어지게 만든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 요소다.

서현진은 감정의 결핍을 "최소한의 표현"으로 그려내며 현대인의 정서적 고립을 섬세하게 포착해 낸다.

서현진은 "대본을 처음 읽었을 때 직접적인 표현이 거의 없었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감정들은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레이어가 있는데 그 점을 보여줄 수 있는 드라마라고 생각했다. 특히 안개에 휩싸인 것 같은 작품 특유의 이미지가 좋아서 선택했다"라고 밝혔다.

이어 "'노인지'의 모든 감정을 1/10 정도로만 표현하려고 했는데 의도가 잘 전달될 수 있으면 좋겠다"라고 연기 주안점을 언급했다.

공유 역시 "자기방어가 강한 인물"로서의 '한정원'을 설득력 있게 구현하며, 관계 맺기의 어려움을 겪는 현대인의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정원'에 대해 공유는 "트라우마로 인해서 불면증과 악몽에 시달린다. 정서적으로 불안하고 외롭고 피폐한 삶을 살고 있는 인물이다.

굉장히 예민하고 타인에 대한 의심도 많고, 누군가에게 본모습이나 마음을 쉽사리 드러내지 않는 자기방어가 강한 인물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했다"라고 소개했다.

그리고 '이서연'을 맡은 정윤하는 "소재가 굉장히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우리나라에서 결혼에 대한 이야기를 이렇게 진솔하게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고, 모험적이면서도 시사성이 있는 이야기로 다가왔다"라고 대본을 처음 봤을 때의 소감을 전했다.

그렇게 <트렁크>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둘러싼 현대 사회의 복잡한 단면들을 미스터리 멜로라는 장르적 외피를 통해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관계 속에서, 진정한 감정의 가능성을 모색하는 작품의 시선은 우리 시대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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