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생 국민연금 못 받는다' 보도가 공포 조장인 이유

박재령 기자 2023. 3. 21.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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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 연금 시민단체 연이어 토론회 개최
"부담은 맞지만 인내 가능한 수준…세대 갈라치기 그만"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연금개혁 논의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언론 보도가 한쪽으로 치우쳤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기금 고갈 시점, 수익률, 전문성, 후세대 부담 등의 키워드가 부각돼 국민연금의 공적 역할, 사회적 신뢰, 소득대체 등의 주장은 개혁 논의에서 빠졌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나 시민사회진영에선 이를 '기울어진 운동장'이라고 표현했다.

▲ 지난 7일 중구 프레지던트 호텔에서 열린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기금개악 반대한다는 팻말을 들고 있는 공적연금국민강화행동.

정치 편향 논란이 있는 검사 출신 변호사가 전문위원에 포함되고,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에 가입자단체 몫까지 줄어들자 시민단체에서 “자본·경영계 편향”이라며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지만 언론보도에서 이 같은 갈등은 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국민연금의 실리콘밸리은행(SVB) 등의 투자 손실이 포털을 뒤덮을 뿐이다. 원종현 수책위 상근전문위원은 통화에서 “SVB 사태는 미국 금리 인상 기조 등 국제금융에 미치는 함의가 더 크다. 기사를 보면 손실 의미를 설명하기보단 연금이 얼만큼 손실을 봤다는 내용만 나와 있다”고 했다.

▲ 지난 16일 나온 공적연금국민강화행동 성명.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했다.

[관련 기사 : '전문성 강화' 국민연금 프레임 보도가 결정적으로 놓치고 있는 것]

지난 10일 서울 공덕역 인근에서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기자 간담회와 13일 국회 토론회에서 언론이 주요하게 다루지 않았던 연금 쟁점들이 나왔다. 기금 고갈 이후의 연금 활용, 세대 간의 합의, 연금 유지를 위한 상호신뢰 등이 키워드였다.

“기금 고갈 이후 한국 생활수준 2배 올라, 변화 감안해야”

▲ 지난 10일 공덕역 인근 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 남찬섭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사진=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국민연금 기금의 고갈은 설계상 불가피한 결과다. 이전까지 대략 매달 8~9만 원을 내면 30만 원 이상을 받는 '적자' 구조였기 때문이다.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보험료를 내는 숫자가 연금을 받는 숫자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기금을 건드리지 않고도 지급할 수 있었다. 그래서 기금이 쌓이는 것”이라며 “애초에 연금을 처음 설계할 때 인구 고령화를 대비해 베이비부머 세대가 퇴장하면 기금이 없어지는 '완충기금' 개념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이미 외국에선 기금이 없는 상태에서 연금 지급에 필요한 재정을 현재 가입자들의 보험료에서 충당하는 '부과방식'이 적용되고 있다. 독일, 스페인, 영국, 프랑스 등의 나라는 연금기금이 거의 없거나 하나도 없지만 각 나라에서 돈을 못 받은 인구는 없다고 남 교수는 전했다. 연금기금의 고갈 유무와 지급 여부는 직접적 관련이 없다는 것이다. 남 교수는 “지금의 국민연금도 매달 내는 보험료, 수입에서 연금이 매달 나간다. 따지고 보면 현재 상태에서는 (국민연금도) 부과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고갈 시점이 계산될 때마다 '국민연금 위기', '90년대생은 연금 못 받는다' 등의 공포 조장 보도가 반복된다. 그럴 때마다 수혜를 입는 건 사적보험사다. 지난달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보험업계의 성장성을 가늠하는 대표적 지표인 생명보험사의 연금보험 초회보험료는 지난해 3분기 누적 2조67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18.9%(3186억 원) 증가했다.

[관련 기사 : 쏟아지는 '연금 공포 마케팅' 보도에 “재벌보험사 관계 의심”]

국민연금의 수익률을 지적하며 수익률이 올라야 고갈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언론의 주장도 사실상 무용해질 가능성이 높다. 고갈이 예정된 시점에서 고갈 이후의 국민연금 활용방안을 논의하는 것이 더 생산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언론은 연금이 고갈되면 2080년 월급의 35%를 보험료로 낼 수 있다며 공포마케팅을 멈추지 않았다. 남 교수는 “2060년에 가면 미래 생산 인구는 현재보다 실질 생활 수준이 2배가 넘고, 2080년엔 3배 넘게 잘 살게 된다”며 “그런 맥락 없이 '부과방식비용률 35%'라고 하면 현재 생활 수준을 놓고 사람들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후세대 착취는 과장… 인내 가능한 수준”

▲ 원종현 전문위원 자료집 갈무리.

국민연금을 놓고 세대 갈등을 조장하는 것도 문제다. 인구 구조상 후세대 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맞지만 정확한 계산 없이 불신을 강조하는 보도는 세대 간 합의를 어렵게 만든다. 원종현 수책위 상근전문위원은 1962년생과 1992년생의 수익비와 부담비(운용수익률 감안 수익비)를 비교하며 수익비가 너무 크다며 '후세대 착취'라고 하는 주장들에 반박했다.

원종현 위원은 “국민연금은 남는 장사인 동시에 후세에 부담인 건 맞다. 기금운용을 감안해도 비율로 0.4 정도가 부족하다”며 “예를 들어 100원을 받아 180원을 줘야 하는데 운용을 다 해도 150원밖에 안되니 30원이 부족할 수 있다. 하지만 80원 이상 부족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재정에서 인내 가능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인연금이라면 모르겠지만, 국가 사회보장 제도로서 경제 발전을 담당한 분들에 0.4 정도 국가 부담을 하는 것이 크게 부담스러울까. 아마 각각의 생각이 다를 지점”이라며 “국민연금 제도의 지속성은 기금 잔금이나 기금 수익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제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가입자들의 제도에 대한 믿음, 신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지난달 4일 한국경제 4면 기사.

국민연금 수익률이 너무 낮다는 지적은 최근 유난히 강조된 보도 흐름이다. 수익률을 위해 전문성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 구성 변경 주장의 주요 근거가 됐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싶은 금융투자회사들의 입김이라고 비판했지만 최근까지도 국민연금의 전문성을 지적하는 보도는 이어졌다.

[관련 기사 : '국민연금 10년 수익률 꼴찌' 한국경제 보도 “나쁜 통계 억지로 만들어”]

원 위원은 “80년대 (국민연금) 제도 개선 이후를 보면, 약 5% 후반대의 수익률만 꾸준하게 내주면 개인으로 봤을 때 균형이 되는 수익”이라며 “국민연금이 실제로 1988년 이후 거둬왔던 평균수익률은 2022년도 상반기 기준 6.2%를 넘는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가 하는 것이기 때문에 약속된 금액을 주면 남는 장사를 할 수 있다는 뜻”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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