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대를 둘러싼 성은 내탁일까 협축일까? [이강웅의 수원화성이야기]

경기일보 2024. 9. 18. 09:3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전략적 의도 숨은… 정조의 실험정신 돋보인 서장대
서장대를 둘러싼 성은 사례를 찾기 힘든 형식의 성이다. 귀중한 자료로 잘 보존돼야 한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수원화성 시설물 중 최고 사령관이 머물며 전투를 지휘하는 곳이 서장대다. 서장대는 팔달산 정상에 있다. 팔달산 능선에서 가장 북쪽이다. 의궤에 “100리 안쪽의 모든 동정은 앉은 자리에서 변화를 다 통제할 수 있다”며 팔달산 정상부의 전략적 입지를 매우 좋게 평가하고 있다.

이런 입지 때문에 팔달산정에는 최고 지휘부인 서장대, 장대를 보좌하는 서노대, 그리고 보조 공간인 후당이 계획된다. 이런 시설물을 배치하고 사용하려면 평평하고 너른 터가 필요했다. 하지만 당시 팔달산정은 온통 암반으로 들쑥날쑥하고 삼면은 매우 심한 급경사지였다.

급경사 입지와 함께 필자가 눈여겨본 것은 팔달산정의 성이다. 서장대를 둘러싼 성은 화성에서도 특이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성 안팎 모두 돌로 쌓았고 원성에 무수히 많은 큰 구멍이 있기 때문이다. 안팎을 모두 돌로 성을 쌓았다면 협축이다.

성을 쌓는 방식에는 두 가지가 있다. 낙안읍성이나 만리장성처럼 성안 쪽과 바깥쪽 모두 돌로 성벽을 쌓는 방식을 ‘협축’이라 칭한다. 반면 화성의 경우처럼 성 바깥쪽 면은 돌로 쌓고 성안은 자연의 산이나 인공적으로 흙을 쌓아 붙이는 방식을 ‘내탁’이라 한다. 협축과 내탁은 성을 축성 방식으로 분류하는 용어이고 개념이다.

팔달산정에 너른 터를 만들기 위해 화성에서 가장 어려운 공사를 해야 했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수원 화성 성터를 보고 정조는 ‘천작내탁 불용협축’이라 했다. ‘하늘이 내려준 내탁이고, 협축은 허용하지 않는다’란 의미다. 이래서 화성은 내탁 방식의 성으로 지금까지 알려져 왔다. 그런데 화성에도 협축은 있다. 곡성 중 문 네 곳, 암문 다섯 곳, 수문 두 곳이 협축 형식의 성이다. 성 안팎을 소통하는 시설물이라 성안 쪽에 흙더미를 쌓을 수 없었기 때문에 협축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비록 전체 성의 3%에 해당하지만 협축은 협축이다.

만일 서장대를 둘러싼 원성이 협축으로 밝혀진다면 수원화성은 곡성에도 원성에도 협축이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게 된다. 즉, ‘화성은 모두 내탁이다’란 정의는 완전히 깨진다. 팔달산정의 성은 내탁일까, 협축일까.

협축이라 볼 수 있는 안팎으로 돌로 쌓은 부분을 살펴보자. 범위는 서암문부터 북쪽으로 정상이 끝나는 곳까지 44보로 약 52m다. 두께는 보이는 윗면 두께가 3.3m다. 여장 두께 90cm와 여장에 붙은 통로 폭 2.4m를 합한 수치다. 실제 아랫면은 이보다 더 두꺼울 것이다.

높이는 16척으로 약 5m다. 밖에서 보이는 높이다. 성안 쪽은 높이 전체가 보이지 않고 높이 1.2m 전후만 노출된 상태다. 나머지 아랫부분은 흙으로 메워진 상태다. 특이한 점은 노출된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점이다. 구멍은 35m 정도 구간에 아래위로 냈다. 흙 위 노출된 부분이 구멍 바로 아래까지인 것으로 보면 병사가 구멍을 활용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돌로 성 안팎을 쌓았다. 윗면 두께는 3.3m이고 높이 1.2m 정도를 노출하고 나머지 아랫부분은 흙으로 메웠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왜 이런 특이한 형식으로 성을 쌓았을까. 그 이유를 찾아보자. 이유는 복합적이다. 시공성, 안전성, 용도성으로 나눠 살펴보자.

첫째, 입지에 따른 시공성과 안전 때문이다. 서장대 앞쪽은 가파른 경사면이었다. 이런 지형에 너른 터를 만들기 위해 돌과 모래주머니를 쌓은 후 말뚝으로 지탱하고 그 안에 흙을 붙여 평평한 터를 만들었다. 흙을 돋운 높이가 10m이고 공사 범위가 사방 80m다. 면적으로 6천600㎡(2천평)나 되는 화성 최대 난공사였다.

성을 쌓을 팔달산정 서쪽 지형도 마찬가지였다. 바위들로 울퉁불퉁하고 급경사지다. 또 서장대 공사 일정을 보면 이곳 성 공사는 여름 장마철이다. 돌로 성 밖을 쌓고 성안에 흙을 붙이는 내탁 시공은 불가능했다. 흙을 메우고 비가 오면 흙은 모두 돌 사이로 빠져나갔다. 높게 쌓은 성은 자빠지는 위험이 컸다. 더구나 팔달산 능선에선 모래와 흙을 구하기 어려워 산 아래에서 인력으로 산 위까지 운반해야 했다.

이래서 성 안팎을 돌로 쌓은 것이다. 자재인 돌은 팔달산 능선에 무진장이었고 돌은 비가 와도 공사가 가능했다. 무엇보다 시공에서, 구조에서 안전했다. 따라서 시공 안전과 구조의 안전을 위해 돌로 안팎으로 성을 쌓은 것이다. 협축 방식이다.

둘째, 팔달산정 원성에 구멍을 뚫어야 하기 때문이다. 팔달산정 원성에는 구멍이 뚫려 있다. 성안에는 노출된 1.2m 부분에 위아래로 사각형 구명이 있다. 성 밖에 나가 살펴보면 이 구멍은 성 중간 높이 아래로 관통된 모습을 볼 수 있다.

성벽을 관통하는 구멍을 내려면 내탁으로는 불가능하다. 흙으로 구멍을 낼 수 없다. 구멍 난 흙은 무너지기 때문이다. 성에 구멍을 내려면 성 두께 전체를 돌로 쌓아야 가능하다. 필요한 구멍을 내기 위해 성 안팎 모두를 돌로 쌓았다. 협축 방식이다.

협축 형식으로 성안 쪽에도 돌로 성을 쌓은 팔달산 정상의 성으로 서장대와 서노대를 감싸고 있다. 구간 길이는 44보 정도다. 이강웅 고건축전문가

문헌에 협축을 ‘성 내벽의 상당한 부분이 지상에 노출된 경우’로 정의한다. 이곳 성 내벽의 노출 정도가 상당한 부분이라 볼 수 없다. 그러나 이 정의는 잘못됐다. 내탁과 협축은 축성 방식의 분류다. 축성이란 시공 방법을 말하는 것인데 겉에 보이는 외형으로 정의하면 안 된다. 서장대를 둘러싼 원성은 시공 방법이 분명 협축이다.

서장대를 둘러싼 성이 특이한 형태를 한 이유를 시공성과 구조성으로 봤다. 이는 이유 중 하나일 뿐이다. 사실은 깊은 전략적 의도가 숨겨져 있다. 다음 편에 구멍에 숨겨진 비밀을 소개할 예정이다.

한 가지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지형에 따라 다양한 시도를 한 팔달산정의 협축에서 정조의 실험정신을 엿봤다. 글·사진=이강웅 고건축전문가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경기일보 webmaster@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