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슬램게임: 드래프트에 참가하시겠습니까?] (014) ‘삼일 유키’ 삼일고 양우혁 “대한민국 최고의 가드가 될래요!”


양우혁과 농구의 인연에는 착오 아닌 착오가 담겨있었다. 유년 시절부터 운동을 좋아했던 양우혁을 본 그의 아버지는 매산초 농구부로 찾아갔다. 엘리트 농구선수의 길을 걷는 것을 추천하기 위해서였다. 농구 ‘선수’가 되기 위한 테스트라는 것을 전혀 모른 채 열심히 기초 테스트에 임한 양우혁. 뒤늦게서야 그 테스트가 농구부 생활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는 사실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이미 그의 손에는 농구공이 들려 있었다.
“아빠가 워낙 농구를 좋아하셨어요. 저도 운동을 엄청나게 좋아했고요. 그런데 어느 날 아빠께서 ‘매산초 농구부에 테스트를 받으러 가볼래?’라고 하셔서 따라갔어요. 테스트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저는 그저 동아리 농구를 하기 위한 과정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엘리트 농구부 테스트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요. 나중에 사실을 알고 나서는 살짝 당황하기도 했죠. 그래도 테스트까지 기회를 주셔서 봤는데 입단을 거절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어요. 게다가 원래 저도 운동을 좋아했다 보니 큰 거부감 없이 시작할 수 있었어요.”
약간의 해프닝과 함께 시작한 농구부 생활. ‘운동 러버’ 양우혁과 농구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가까워졌다. 특히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주장을 맡으며 어린 나이에 리더십까지 익혔다. “초등학교 때는 그저 재미있게 농구했어요. 그때는 어리고 칭찬받는 것을 좋아했다 보니 좋은 플레이를 할 때마다 ‘잘했어!’라고 인정받는 게 너무 좋았어요. 칭찬을 많이 듣다 보니 농구가 더 좋아져서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기도 하네요(웃음). 주장도 했다고는 하지만 뭣모르고 했던 시절 같아요. 파이팅 구호 외치는 그런 것들 열심히 했어요.”
농구 걸음마를 힘차게 뗀 양우혁은 연계 학교인 삼일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미 매산초 시절, 개인 공격 능력에서 가능성을 보인 양우혁은 이한권 전 코치의 지도 속, 팀을 이끌 줄 아는 가드로 한 단계 더 성장한다. 물론 장점인 개인 공격 능력을 기르는 것도 등한시하지 않았다. 이 같은 바쁜 중학생 양우혁의 삶 속에는 스스로 가진 생각의 전환과 담대한 목표, 의지가 더해졌다. “중학교 시절 배운 농구에는 헷갈리는 것이 많았어요. 그전까지는 그저 수비를 제치고 득점만 하면 농구를 잘하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중학교에 와서는 팀플레이를 더 해야 ‘진짜 농구를 잘하는 선수’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당시 코치님이셨던 이한권 코치님께 가드로서 해야 할 역할을 많이 배웠어요. 새로우면서도 기존에 배웠던 것들과 많이 달랐죠. 몸에 익히는 데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 역시 느꼈죠.”

양우혁은 삼일고 1학년 시절, 본격적으로 아마추어 농구 관계자와 팬들에게 자신의 이름 석자를 각인시키기 시작했다. 눈을 사로잡는 화려한 드리블 능력과 허를 찌르는 돌파, 정교한 풀업 점프슛은 물론 적재적소에 동료들을 도와주는 어시스트 능력까지. 가드가 갖춰야 하는 모든 것을 다 갖춘 양우혁이 주목받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드리블 같은 것은 카이리 어빙, 앨런 아이버슨을 계속 따라 하면서 익히려 했어요. 삼일고 코치님으로 계셨던 박찬성 코치님이랑 매일 같이 배우면서 자신감이 더 생겼죠. 슛은 김민구 코치님(현 경희대)과 새로 오신 이중원 코치님이 많이 손을 봐주신 것이 정말 커요. 여기에 농구 시야와 같은 전반적인 것은 정승원 코치님, 유병훈 코치님을 통하여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성과를 1차적으로 인정받은 양우혁은 2023년, 첫 청소년 대표팀(U16) 명단에 이름을 올린다. 비록 당시 양우혁을 필두로 한 대표팀은 8강 탈락이라는 아쉬운 결과를 받아야 했으나, 양우혁에게는 무한 성장의 기폭제가 된 소중한 시간이었다. “정말 모든 것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농구 선수로서 가진 첫 목표가 청소년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었거든요. 전국 고등학교 선수들 중 잘하는 선수들이 모인 자리잖아요? 동료들도 ‘아 이건 못 잡을 것 같은데?’라고 생각이 드는 패스도 다잡아주고, 서로의 실수를 잘 커버해 줬죠. 개인적으로도, 팀적으로도 뿌듯한 감정이 컸던 U16 대표팀이었어요.”
“제일 한스러운 경기는 뉴질랜드와의 대회 첫 경기였어요. 우승 후보인 국가를 상대로 많이 리드 당하다가 역전하는 순간이 있었는데… 이길 수 있던 귀중한 경기를 놓쳐버리니 아쉬움이 더 컸던 경기였어요. 특히 제가 마지막 공격 리딩에 나섰는데 공이 저의 발을 맞고 터치 아웃이 되면서 공격권을 넘겨줬죠. 그만큼 이 경기를 통하여 클러치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기도 했어요. 결과는 아쉽지만, 개인적으로는 얻은 것도 많아요.”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양우혁은 2학년, 강제 휴식을 취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피로골절, 발날 골절까지 여러 부상이 그의 출전을 가로막은 것이다. 코트를 힘차게 뛰어다녀도 모자랄 시기에 맞은 일시 정지. 이 시간은 양우혁의 정신을 바로잡는 충전기 역할을 했다.
“U16 대표팀에 갔다 와서 피로골절이 생겨서 바로 쉬었어요. 2학년 중간에 복귀했지만, 발날이 부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죠. 너무 아쉬웠죠. 바닥까지 내려앉은 학년이었다고 생각해요. 스스로 자존심도 많이 상했어요. U18 대표팀에도 가고 싶었는데… 한편으로는 아무리 농구를 잘하더라도 몸 관리가 먼저라는 것을 느낀 학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3학년은 동계 훈련 때부터 더 독하게 했던 것 같아요.”
독기로 무장한 양우혁을 막을 사람은 많지 않았다. 양우혁은 고등학교 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고3이 되어 다시금 빛났다. 그의 뛰어난 개인 기량을 코트에서 마음껏 뽐냈다.

“저는 늘 스포츠는 하나의 쇼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어요. 뭐가 됐든 간에 화려한 것들이 자주 나와야 보는 팬들께서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만큼 ‘내 플레이를 보고 팬들이 감탄할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선수’가 되자는 목표도 있었어요. 그러한 생각도 가지면서 여러 기술을 갈고닦아왔고, 좋은 기회로 유튜브 채널에 얼굴을 비출 수 있게 됐죠. 미디어에 노출이 되면, 그래도 많은 분들이 더 좋아해 주시지 않을까요(웃음)?”
인지도만 높아진 것도 아니다. 유튜브 및 SNS를 통하여 재가공된 양우혁의 활약상은 자라나는 농구 유망주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실제로 올해 열린 여러 한국중고농구연맹 주최 대회에서는 양우혁 한 명을 보기 위해 달려드는 어린 팬들의 모습도 적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벌써 양우혁을 롤모델로 뽑는 초등학교, 중학교 선수들도 등장한다. 늘어난 관심이 좋지만, 고등학교 선수에게는 부담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맞아요. 초반에는 부담 아닌 부담도 있었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관심들을 제가 즐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중에 성인 농구 선수가 되었을 때 더 많은 관심을 받을 선수가 될 것으로 생각하니까요. 프로필에도 적었듯이 저의 최종 목표는 ‘대한민국 NO. 1 가드’가 되는 것입니다. 그 목표만을 바라보고 가다 보면 많은 분들이 가지는 기대치와 관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죠. 감사함을 느끼며 제가 해야 하는 것 묵묵히 하려고요!”
개인적으로는 성과를 연속해서 냈지만, 양우혁에게는 한 가지 옥에 티가 있었다. 바로 뒷받침되지 못한 소속 팀 삼일고의 성적이다. 지난 8월 끝난 주말리그 왕중왕전이 열리기 전까지 삼일고의 올해 최고 성적은 전국대회 8강에 머물렀다. 중요한 순간마다 강호인 용산고와 경복고에 덜미를 잡힌 것이다.
이로 인해 양우혁에게 ‘팀을 승리로는 이끌지 못하는 선수’라는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편견은 양우혁의 승부욕과 증명에 대한 의지를 불태우는 역할을 했다. “용산고와 경복고 보다 제가 더 원망스러웠어요. 그 두 학교는 원래 좋은 성적을 낸 학교잖아요. 잘하는 학교를 상대로 승리하지 못하는 제가 싫었어요.”

팀 성적과 편견 삭제라는 뚜렷한 목표를 가진 양우혁을 누가 막을쏘냐. 양우혁은 8월 열린 주말리그 왕중왕전, 완전히 이를 갈고 나왔다. 14강 토너먼트에서 만난 천적 1번 용산고와의 만남에서 그는 무려 35점을 쏟아내며 삼일고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용산고는 워낙 많이 만난 상대라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들어갔어요. 1쿼터에 단 2점에 그친 것이 오히려 이겨야겠다는 생각을 더 하게 해줬고, 자연스럽게 많은 득점으로 연결된 것 같아요.”
배재고, 광신방송예고를 연파하고 오른 결승전에서는 양우혁과 삼일고의 천적 2번인 경복고가 기다리고 있었다. 경복고는 끝까지 양우혁의 목표 달성을 괴롭혔다. 윤지원-윤지훈 쌍둥이 형제를 앞세운 경복고에 주도권을 뺏겼고, 3쿼터 초반 들어서는 17점(40-57) 차이로 리드당했다. 하지만 큰 격차는 흐려져 가던 양우혁의 집중력을 다시금 붙잡는 동아줄이었다. “사실 17점의 격차가 났을 때는 ‘끝났나?’하는 생각도 조금 했어요. 그러나 뒤집어서 이길 생각을 더 했고, 바로 정신을 차리고 코트에 다시 나설 수 있었어요.”
최고 가드에게 큰 격차는 어쩌면 자신의 독무대를 위한 장치 중 하나였을 것이다. 양우혁은 이 순간을 기점으로 폭발적인 득점력을 다시 가동했다. 그의 자리를 가리지 않고 터지는 풀업 3점슛은 계속해서 림을 갈랐다. 4쿼터, 역전(80-77)을 일궈낸 연속 3점슛 2방과 속공 득점도 자신의 손으로 적립했다. 승부처를 지배한 선수로 올라선 양우혁은 삼일고의 25주말리그 왕중왕전의 가장 높은 곳에 올랐다.

“눈물이 나올 줄 알았는데 안 나오더라고요. 그저 우승 순간에는 얼떨떨하기만 했던 것 같아요. 제가 보여줄 수 있는 농구를 자신 있게 하니까 저절로 우승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쁜 순간이었습니다. 왕중왕전 우승은 저에게 농구하는 데 자신감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 다시금 새기게 해줬어요. 앞으로도 자신감은 계속해서 얻어가되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더 연구하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느꼈죠.”
“너무 속이 시원했어요.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한다는 수식어가 따라오는 게 굉장히 힘들었어요. 그래서 우승 후에 하고 싶었던 말이자 생각은 이거였어요. ‘봤지?’ 항상 저는 경기할 때 소위 말해 쫄면서 하는 플레이를 한 적이 없어요. 과정이 좋지 않더라도, 결과가 나오면 된다는 생각이 큰 도움이 되었고, 그 생각이 결승전에 잘 나온 것 같아요.”

“커리에게 배운 것들이요? 신기한 것도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에서도 하는 훈련이 많다는 것을 알아서 새롭기도 했어요. 그저 선수로서 훈련을 어떤 자세로 임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한편으로는 큰 무대를 꿈꾸려면, 영어 공부도 더 해야 한다는 것을 느꼈어요. 외국 친구들과도 농구에 대해 소통을 더 하고 싶었지만, 언어의 장벽 때문에 어려웠거든요. 그래서 영어에 대한 욕심이 자연스레 생겼습니다.”
개인의 기량 발전과 팀 성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양우혁은 다가오는 10월, 부산에서 열리는 전국 체전을 끝으로 고등학교 모든 대회를 마친다. “고등학교 마지막 대회 역시 우승으로 끝내고 싶은 마음이 커요. 지금은 팀적으로도 열심히, 개인적으로도 하던대로 하면서 열심히 준비하고 있습니다!”

지난 8월 말, 양우혁은 농구 팬 전체의 관심을 끈 주인공이 되었다. 올해 11월 열리는 2025 KBL 신인선수 드래프트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고교 무대 최고 가드이자 스타인 양우혁이 대학 진학이 아닌 얼리 엔트리 선언을 한 것은 아마추어 농구계 및 프로 무대 전반의 뜨거운 이슈로 떠올랐다. 드래프트 판도도 양우혁의 참가로 또 하나의 변화를 맞이했다.
양우혁이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이 된다면, 지난해 박정웅(안양 정관장), 이근준(고양 소노)에 이어 두 시즌 연속 고졸 얼리 엔트리 신화가 탄생할 수 있다.
“사실 예전부터 저는 고교 선수 자격으로 프로에 조기 진출하는 것을 막연한 목표로 가지고 있었어요. 경기를 거듭하면서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아서 잠시 접어두고 있었어요. 그런데 주말리그 왕중왕전을 계기로 다시 고민을 해보게 됐어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프로 무대에 일찍 도전해 보고 싶었어요.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춘 프로 무대에서 좀 더 갈고 닦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죠.”
“삼일고 선배님인 송교창(부산 KCC) 선배님과 이현중(나가사키) 선배님의 도전 정신도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주었어요. 특히 송교창 선배님은 고졸 얼리 엔트리 선수로 최고의 커리어를 기록한 선수잖아요? 그러한 모습들이 저에게 용기를 많이 주었어요.”
치열한 경쟁 속 자기 PR의 중요성 역시 더욱 커진다. 취업준비생인 드래프트 도전자들이 입사 희망 기업인 KBL 10개 구단에게 왜 다른 도전자들보다 자신을 선발해야 하는지 적극적으로 어필해야 할 필요성은 더욱 커진다. 그렇기에 ‘25슬램게임’은 각 도전자들에게 ‘1분 자기소개’의 시간을 부여하기로 했다. 양우혁은 자신을 ‘다 잘하는 가드’라고 소개했다. 인터뷰 내내 당차고 자신감 가득했던 그의 패기가 크게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누구나 행복한 상상이라는 것을 해본 적 있지 않나. KBL 일원이 되고 싶은 꿈을 가진 드래프트 참가자들은 저마다 한 번씩 “내가 프로 선수라면?”이라는 행복한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그래서 물었다. 프로 선수가 된 당신은 어떤 플레이를 펼치고 팬들과 동료들에게 어떤 칭호를 받는 선수가 되어있을 것 같은지에 대해 말이다. 양우혁은 ‘카와무라 유키 같은 선수’가 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공교롭게도 그의 별명은 ‘삼일 유키’다. “너무 마음에 들어요(웃음). 비교 대상이라고 하기도 민망한데… 그 정도로 카와무라 (유키)는 제가 정말 존경하는 선수입니다. 자신을 둘러싼 의심이나 편견을 깨고 탄탄한 커리어를 만드는 중인 선수잖아요? 카와무라 선수와 여러 면에서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더 듣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누구보다 열심히 해서 카와무라 유키처럼 키가 작으면 큰 무대에서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있을 것 같아요. 실속은 챙기면서 화려한 플레이도 같이할 줄 아는, 농구 인기에 긍정적인 영향력이 있는 선수가 되고 싶고, 될 것 같아요. ‘대한민국 NO. 1 가드’가 최종 목표이듯 한국 농구의 추세나 패러다임을 바꾸는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느낀 바는 분명했다. 고등학생이지만 양우혁의 농구를 대하는 태도와 자신감, 목표 의식은 어쩌면 경쟁자인 대학생 형들만큼이나 강하고 뚜렷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눈이 즐거운 플레이를 펼치지만, 더 큰 발전에 대한 목마름도 강하다.
고등학생이라는 어린 나이에 얻은 관심 속 책임감을 내면에 더하는 성숙함도 그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들 중 하나다. 삼일 유키라는 별명처럼 언젠가는 양우혁 역시 그의 목표처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드가 되어 카와무라 유키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
또 다른 고교 선수 성공 신화의 탄생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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