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페 롱바디의 배신? 팰리세이드 조상님 된 국산 SUV

안녕하세요. 오늘은 현대 맥스크루즈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누군가는 이 모델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자동차 산업에서 진정한 실패는 아무 흔적도 남기지 못한 차를 의미하죠. 그런 면에서 맥스크루즈는 전혀 실패한 모델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음 세대의 길을 닦은 조용한 선구자라고 해야 맞을 겁니다. 바로 오늘날의 팰리세이드가 있게 만든 1등 공신이죠.

밀레니엄 이후 SUV 시장은 여러 차례의 큰 변화를 겪었습니다. 특히 2010년을 전후하여 북미를 중심으로 그 변화가 두드러졌는데요. 소비자들이 더 편안한 승차감과 넓은 실내 공간을 갖춘 SUV를 원하게 되면서, 크로스오버화와 대형화라는 두 키워드를 중심으로 많은 제조사들이 경쟁했습니다. 혼다 파일럿, 토요타 하이랜더 같은 크로스오버 SUV가 세단을 대체하는 선택지로 떠올랐고, 포드나 닷지 같은 전통적인 현지 제조사들도 투박한 프레임 바디 대신 모노코크 유니바디 설계를 적용하며 이러한 흐름에 발맞췄습니다.

한편 현대차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투싼과 산타페는 국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지만, 야심차게 내놓았던 대형 크로스오버 베라크루즈가 실패하면서 후속 전략에 차질이 생겼기 때문이죠. 고민 끝에 현대차는 나름 합리적인 결정을 내립니다. 완전히 새로운 대형 SUV를 개발하는 도박 대신, 새로 개발되는 산타페의 라인업을 확장하여 판매 볼륨을 키우기로 한 것이죠.

이 전략은 산타페의 차체를 길게 늘려 성인도 불편 없이 탈 수 있는 여유로운 3열 공간을 확보하고, 실용성과 가격 경쟁력을 갖춰 경쟁사의 상위 모델에 대응하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동시에 개발 비용을 절감하고, 세계적인 베스트셀러로 자리 잡은 산타페의 이름값을 그대로 활용하려는 의도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코드네임 NC를 부여받은 3세대 산타페의 롱바디 모델은 얼떨결에 숏바디 사양이 된 기존 산타페와 함께 개발되어 2012년 뉴욕 모터쇼를 통해 처음 공개되었습니다. 공개 당시 차명은 그냥 산타페였고, 기존 산타페는 산타페 스포츠로 불렸죠. 이후 시장에 따라 산타페 XL, 그랜드 산타페 등으로 판매되었습니다.

국내 시장에서는 산타페 맥스라는 이름을 고려하다가 아예 다른 모델임을 강조하고 싶었는지, 마침내 맥스크루즈라는 이름으로 출시되었습니다. 맥스크루즈라는 차명은 최대, 최고의라는 뜻의 영단어 'Maximum'과 유람 여행을 의미하는 'Cruise'의 합성어로, '최고의 여정을 선사하는 대형 SUV를 표방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멕시코 휴양도시 베라크루스에서 이름을 가져왔던 상위 모델 베라크루즈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의도한 것 같기도 합니다. 산타페나 투싼처럼 북미의 실제 지명에서 유래한 다른 모델들과 달리 단순히 합성어라 개인적으로는 이름의 무게감이 좀 떨어져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이름이 달라서인지, '수타페' 문제로부터는 자유로웠다는 장점도 있었죠.

맥스크루즈는 앞서 설명했듯 산타페를 늘려서 만든 모델입니다. 기존 싼타페 DM 대비 전장을 약 22cm, 휠베이스를 10cm 정도 키워 국산 SUV 중 가장 긴 전장을 자랑했습니다. 전면부는 헤드램프를 공유해서 산타페의 인상이 어느 정도 남아 있었지만, 옆모습과 뒷모습은 아예 다른 차 수준으로 차별화한 것이 특징입니다.

급격하게 치켜 올라간 산타페와 달리, 부드럽게 이어지는 널찍한 쿼터 글래스는 이 차가 온전한 3열을 갖추고 있음을 강조했습니다. 견고한 디자인의 대구경 알루미늄 휠, 후면부의 면적을 넓힌 리어램프와 매립형 듀얼 머플러는 차분하게 마무리되어 좀 더 고급스럽고 중후한 분위기를 만들어냈죠.

앞모습도 자세히 보면 디테일이 달랐습니다. 특히 안개등을 감싸는 형태의 LED 주간 주행등은 맥스크루즈만의 전용 사양이었습니다. 다른 부분은 금형 자체가 달랐지만, 전면 범퍼는 산타페와 호환되었기 때문에 얼굴만 맥스크루즈로 바꾼 '산타 크루즈'들이 종종 도로에서 보이기도 했습니다.

실내 역시 앞서 출시된 3세대 산타페의 것을 거의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거대한 Y자 형태의 센터패시아, 스티어링 휠부터 에어벤트, 창문 스위치 하나까지 첨단 감각이 돋보이는 산타페의 실내는 소비자들에게 호평을 받고 있었기에 그대로 가져온 것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았습니다. 화려한 투 실린더 타입의 계기판은 가운데 컬러 LCD 정보창을 더해 디자인과 기능성을 모두 잡았습니다. 오토홀드가 포함된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 3단계 조절 앞좌석 열선 및 통풍 시트, 운전석 메모리 시트, 220V 인버터 등 화려한 외모에 걸맞은 편의 장비를 갖춰 럭셔리 SUV를 표방했던 베라크루즈 못지않은 상품성을 뽐냈습니다.

여기에 9개 스피커의 액튠 프리미엄 사운드와 8인치 대화면 내비게이션, 스마트폰으로 원격 시동, 온도 설정 등이 가능한 블루링크 텔레매틱스 시스템, 차선 이탈 경고 및 주차 조향 보조 시스템 등 다양한 첨단 사양도 투입되었습니다. 내비게이션을 선택하지 않으면 4.3인치 컬러 LCD가 적용된 고급형 오디오가 들어갔는데, 후방 카메라가 띠용하고 나오는 게 신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이 차의 진가는 뒷좌석부터 두드러졌습니다. 6인승을 기본으로 7인승을 옵션으로 제공했는데, 6인승 모델은 미니밴에서나 볼 법한 2열 독립형 캡틴 시트를 갖춰 동급 SUV 중에서 가장 편안한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특히 휠베이스가 10cm가량 늘어나면서 3열 공간이 쓸 만해진 것이 핵심이었습니다. 산타페도 3열 시트 옵션이 있었지만 비상시에나 쓰는 아동용 좌석에 가까웠죠. 이와 달리 맥스크루즈는 과거 중형 미니밴 수준으로, 2열 승객이 무릎 공간을 약간 양보한다면 성인이 타도 큰 불편이 없는 수준의 공간을 제공했습니다.

이에 더해 넓은 면적의 쿼터 글래스, 특히 2열 승객 머리 위까지 뻗어 있는 광활한 파노라마 선루프가 주는 개방감이 상당했습니다. 뒷좌석 승객을 위한 열선 시트와 B필러 에어벤트, 수동식 측면 커튼 등 편의 장비도 충실했지만, 12V 콘센트만 덜렁 있는 것은 조금 아쉽게 느껴졌습니다. 잘 쓰지 않는 3열 쪽에 별도의 공조 장치 컨트롤러는 물론 220V 인버터까지 있었는데, 차라리 이걸 2열에 옮겼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커진 차체는 단순히 거주성뿐만 아니라 적재 공간에도 반영되었습니다. 3열만 접어도 넉넉한 짐 공간이 나오고, 2열까지 모두 접으면 거의 방이나 다름없는 공간이 펼쳐졌습니다. 캠핑이나 차박 같은 아웃도어 레저 활동을 즐기는 분들에게는 아주 강력한 세일즈 포인트였죠.

베라크루즈 고객층을 흡수하려면 최신 옵션과 넓은 공간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다행히 6기통 엔진을 제공하며 산타페와 차별화했죠. 4기통 R 디젤 엔진을 주력으로 하는 것은 같았지만, 맥스크루즈는 상위 트림인 2.2L 엔진만 제공했고, 추가로 북미 사양의 3.3L V6 람다 GDI 가솔린 엔진을 그대로 적용해 더욱 안락한 패밀리카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 어필했습니다.

변속기는 두 모델 모두 6단 자동 변속기가 맞물렸고, 전륜 구동이 기본이며 토크 온 디맨드 방식의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을 옵션으로 장비했습니다. 이 사륜구동 모델에 한해 구동력과 제동력을 제어해 차가 코너 밖으로 밀려나는 것을 방지하는 구동 선회 제어 장치를 기본 적용하여 커진 차체에 대응하고 코너링 시 안정성을 보완한 점은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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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이 시기 현대 기아차 대부분이 공유했던 전자식 스티어링 시스템의 이질적인 조향감이 이 안정감을 반감시킨 게 문제였죠.

주행 특성은 산타페와 확실히 다르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습니다. 차가 길어지면서 움직임이 다소 둔해졌지만, 늘어난 휠베이스와 달라진 무게 중심은 장거리 주행 시 고속 안정성과 안락한 승차감을 만들어내는 데 이점이 있었습니다. 더 많은 승객과 짐을 싣고 장거리를 달려야 하는 이 차의 성격과 잘 맞았죠. 이 시기 현대차의 자체 커스터마이징 브랜드인 튜익스 패키지를 더해 내외관 구성은 물론 트레일러 히치, 브레이크 성능까지 보강할 수 있었던 것은 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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