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청자 여사 “국민에 고개 숙이는 건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尹대통령이 욕먹더라도 국민과 계속 소통을 해야”
‘천안함 폭침’으로 순국한 고(故)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81) 여사는 본지 인터뷰에서 “윤석열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 윤 대통령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다양한 사람과 끊임없이 소통해달라”고 했다. 윤 여사는 지난 대선 때 윤 대통령 유세에 참여했고 윤 대통령이 취임한 후로도 윤 대통령 지지자를 자처해왔다. 하지만 윤 여사는 “지금 윤 대통령은 지켜보기에 답답한 면이 있다”고 했다. 그는 윤 대통령을 향해 “더 포용력을 보여줘야 한다”면서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빨리 관계를 회복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데만 집중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윤 여사는 작년 10월 본지 인터뷰에서 “정부와 여당이 국민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매사 통보와 명령 식으로 일을 처리하는 게 답답하다”고 했었다. 1년 만에 다시 만난 윤 여사는 “매일 뉴스에서 ‘특검’ ‘탄핵’ 타령만 나오는 등 상황이 갈수록 나빠져 안타깝다”며 “욕을 먹더라도 계속 국민과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시길 바란다. 국민 앞에 고개 숙일 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라고 했다. 윤 여사는 ‘김건희 여사 논란’과 관련해서는 “억울해도 민심이 요구할 때 들어야 한다”고 했다.
작년 10월 국민의힘이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서 패배한 직후 인터뷰를 하고 1년 만에 다시 만난 윤청자 여사는 1년 전보다 정부·여당에 더 화가 나 있었다. 윤 여사는 “북한군 공격에 막내아들을 잃은 나만큼 윤석열 대통령의 성공을 간절하게 바라는 사람이 있겠느냐”면서 윤 대통령과 정부·여당을 항해 “잘해달라”고 ‘하소연’하다시피 했다. 그는 “시골의 무식한 할머니지만, 요즘 나라 돌아가는 게 위태해 보여 드리는 말씀”이라고 했다. 윤 여사는 최근 ‘천안함 특별법’에 소극적인 정부·여당의 태도에 실망해 지난 1일 국군의날 행사 초청도 거절했다면서 “안보엔 여야가 없어야 하는데 한국은 거꾸로 간다”고 했다. 그는 “국민은 먹고살기 어려운데 정치인들은 무책임하게 매일 싸움만 하는 걸 지켜보는 게 지긋지긋하다”고 했다. 인터뷰는 지난 4일 윤 여사의 서울 맏아들 집에서 진행됐다.
안보엔 여야 없는데 한국은 거꾸로 가
–윤 대통령을 지지했는데 요즘은 어떤가요.
“같은 파평 윤씨인 데다 윤 대통령이 항렬상 아저씨뻘이라 처음부터 마음이 이끌렸어요. 늘 응원해 왔는데 요새는 보기에 답답해요. 포용력 있는 정치를 보여주질 못하시니까요.”
–어떤 점이 그렇습니까.
“대통령이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 밥을 먹니 안 먹니 같은 뉴스만 매일 나오던데 나 같은 노인이 보기엔 둘이 왜 싸우는지 이해가 안 돼요. 두 분은 원래 친했던 사이잖아요. 윤 대통령이 한 대표를 불러다 예전에 같이 고생하면서 일했던 얘기라도 해보면 안 되나요? 옛날 얘기 하다 보면 마음도 누그러지고 옛정도 생기잖아요. 부여 시골집에서 혼자 사는 나로선 TV로 세상일 돌아가는 것 듣는 게 전부인데, 뉴스 보면 탄핵·특검 타령만 나오니까 지긋지긋하면서도 큰일 났다 싶어요.”
–‘윤·한 갈등’이 보기 싫으시군요.
“대통령께선 본인 마음에 안 들더라도 자꾸 불러다 다독거리며 품어줘야 한다고 봐요. 한 대표도 대통령이 하자는 대로 좀 따라줘야 하고요. (한 대표) 처음 나왔을 땐 나라 바로잡아 줄 사람으로 봤는데, 지금 보니.... 나라가 위기인데 서로 잘났다고 튕기며 자존심 싸움만 하는 것 같아서 지켜 보자니 속에서 열불 납니다. 서로 힘 모아서 대한민국 잘 지킬 생각을 해야지, 둘이 똑같아요. 대통령이 민주당 사람들도 열심히 만났으면 좋겠어요. 이 정부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끊임없이 소통해야 해요.”
–’김건희 여사 문제’는 어떻게 풀어야 하는지.
“먼저 고개 숙이고 손 내밀 때 세상 많은 문제의 매듭들이 풀려요. 난 윤 대통령 부부가 여러 논란에 대해 억울해할 측면도 있다고 봐요. 그래도 민심이 요구할 땐, 들어야 해요. 대통령께서 황산벌 전투에 나가기 전 계백 장군의 마음을 한번 헤아려봤으면 좋겠어요. 지금 대통령 비서실장(정진석)이 우리 고향(충남 공주·부여)에서 국회의원 하신 분인데 여론을 정확히 대통령께 전달해줬으면 좋겠어요. 아무나 대통령 옆에 있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요. 한동훈 대표도 나라가 위기니까 대통령께 힘을 보태줬으면 해요.”
–10·1 국군의날 행사 초청을 왜 거절했습니까.
“원래는 당연히 가려고 했지요. 그런데 최근 국회 소위에서 ‘천안함 특별법’이 통과됐는데 ‘사실 왜곡·허위사실 유포 시 처벌 조항’이 빠졌다는 걸 알게 됐어요. 국방부가 ‘역사적 사건마다 처벌 규정을 만들 수 없다’고 했다는데, 피가 끓더라고요.야당은 ‘5·18 왜곡처벌법’을 관철했는데 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나요. 천안함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은 아직도 온갖 괴담과 음모론으로 고통받아요. 아들 볼 낯이 없어 국군의날 행사에 못 갔어요.”
–서울 한강 변에 천안함 모형을 전시하는 게 소원이시라던데.
“천안함이 좌초됐네 어쩌네 음모론을 떠들던 사람 여럿이 이번에도 국회로 들어갔던데, 그들이 북한 공격으로 찢긴 천안함을 실제로 본다면 그런 헛소리를 떠들 수 있을까요. 고교 역사 교과서 9개 중 8개에 천안함 내용이 실린다는데, 내용을 보면 실망스러워요. 그나마 실리기라도 해서 다행이긴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직접 눈으로 보는 거예요. 서울 여의도나 반포처럼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 모형이라도 전시해 놓고, 유가족이나 생존 장병이 설명해주는 안보 교육의 장을 만드는 게 이 노인네 소원입니다. 그래야 학생들이 앞으로 누구 밑에서 교육을 받든 진상을 제대로 알게 돼 안보 앞에선 하나되는 어른으로 자라나지 않겠어요.”
–요즘 동네 민심은 어떤가요.
“동네 노인들이 ‘민주당이 25만원 주기로 했다’면서 고마워 죽겠다는 분위기에요. 내가 ‘후손들 미래를 생각하라’고 야단쳤어요. 내가 하도 잔소리를 하니 이웃들도 눈총을 줍디다. 다들 먹고사는 게 어려워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요. 대책 없이 퍼주겠다는 건 무시무시한 건데 선동 정치가 아주 잘 먹히는 것 같아 걱정돼요.”
–경제가 어렵단 얘기가 많은데요.
“뉴스 보면 살기 어렵단 얘기가 많아서 가슴 아파요. 그렇다고 퍼주자는 게 답이 되어선 안 돼요. 각자가 본분을 다하고 정직하게 노력하는 나라여야 희망이 있다는 걸, 딸을 잃으며 뼈저리게 느꼈어요.옛날에 아홉 살 맏딸이 시냇가에서 놀다가 숨졌는데, 누군가 건설용 모래를 불법으로 퍼가고선 뒷마무리를 제대로 안 해 생긴 웅덩이에 빠져서 그런 거예요. 비리가 많았단 얘기죠. 나는 부정(不正)이라면 치가 떨려서, 자식들한테 ‘정직하게 살아야 복이 온다’고 가르쳤는데, 요즘 정치권이 떠드는 세상에선 부정이 곧 정의 같아요.”
개혁은 욕먹기 마련… 尹 고충 많을 듯
–정치권이 반성해야 한다는 건가요.
“국민 좀 바라보고 일했으면 좋겠어요. 청문회 보면 의원들이 만날 ‘국민의 대표로서~’ 어쩌고 호통치던데, 자기네 지지자들만 국민으로 여기는 거 같아요. 그러니 멀쩡한 나라가 두 쪽으로 갈라져서 만날 싸움질만 하겠죠. 그리고 대통령에게 옆에 서있는 사람은 많아도, 아래에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 정부를 정말 성공시켜야겠다는 각오는 없고 다들 자기 한자리 차지하기 바쁜 거죠. 무슨 문제 터지거나 야당이 선동할 때 발 벗고 나서는 정부 인사가 누가 있나요.”
–윤 대통령 임기가 곧 반환점을 돕니다.
“한미 동맹 강화, 한일 관계 개선, 한·미·일 협력 같은 건 안보를 튼튼히 하는 것이니 고맙게 생각해요. 그리고 여러 개혁 추진도 나는 찬성합니다. 개혁을 하려면 원래 욕 많이 먹게 되어 있고, 대통령도 고충이 많을 거예요. 다만 귀 닫고 자기 고집만 부리는 것 같은 태도는 바꿔주셨으면 좋겠어요. 국민이 있어야 나라도 있고,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는 거 아닌가요.”
☞윤청자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순국한 고 민평기(당시 34세) 상사의 어머니로 충남 부여에서 홀로 산다. 유족 보상금 1억원을 해군의 ‘3·26 기관총’ 제작을 위해 기탁했고, 좌파 진영이 제기한 ‘천안함 좌초 음모론’에 맞서왔다. 2020년 ‘서해 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다가가 ‘천안함이 누구의 소행인가’라고 물었다. 2022년 대선 때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를 지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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