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광장] 미루어 헤아리는 마음

송인호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2025. 12. 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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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인호 한동대학교 법학부 교수

한 해가 또 지나간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흐르지만, 그 시간이 사람을 자동적으로 성숙하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성숙은 단순히 나이 듦이 아니라, 자기 울타리를 넘어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속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인간의 성장은 이해의 폭을 넓혀 가는 과정이며, 성급하게 판단하던 일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는 순간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조금씩 성숙해 간다.

이해의 폭이 넓어지면 자연스럽게 인내심도 커진다. 젊은 시절에는 타인의 행동이 쉽게 이해되지 않고, 작은 차이와 자극에도 마음이 요동치기 쉽다. 그러나 세상을 조금씩 알게 되며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되고 이해되지 않던 것이 이해되게 된다. 물론 경험의 축적 과정에서 선입견과 고집이 강해지는 건 주의해야 할 부작용이다.

나이가 들면 삶의 리듬과 소통의 방식이 달라지고, 익숙한 것이 편해진다. 살아온 시간과 환경이 만들어 낸 자연스러운 결과다. 이런 과정을 이해하게 될 때, 우리는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어른들의 말과 행동을 바라볼 수 있다. 이러한 깨달음은 다시 청년기를 바라보는 태도로 이어질 수 있다. 청년은 경험이 부족하기에 세상이 거칠고 불안하게 느껴지고, 감정은 쉽게 흔들린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하는 시기이기에 때로는 미숙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바로 그 시기에 들은 어른들의 짧은 격려 한마디가 평생을 지탱하는 힘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기도 한다. 청년기를 지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억 하나쯤은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웃을 '내 부모 또는 내 자녀일 수도 있는 존재' 또는 '내가 걸어온 길, 그리고 내가 걸어갈 길을 걷고 있는 이'라고 생각하게 될 때, 우리의 인식은 변하며 참을성은 눈에 띄게 커진다.

개인적 차원을 넘어 사회적 차원으로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해방 이후 80년 동안 대한민국은 압축적이고도 급격한 변화를 겪어 왔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시대적 상황 속에서 살아왔다. 그 결과 세대와 지역, 생활 환경에 따라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판단 기준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차이는 대개는 옳고 그름이나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각자가 살아온 시간과 맥락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뿐 아니라, 내가 왜 이런 생각과 감정을 갖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자기 이해의 확장도 필요하다. 한 번 더 생각하고, 한 걸음 물러서서 바라볼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의 의미를 성급하게 해석하고 그 배경까지 헤아리는 데에는 인색한 인간의 본성을 억제하고, 판단보다 이해를 앞세울 때, 불필요한 마찰을 줄이고 관계를 조금 더 부드럽게 유지할 수 있다.

문제는 인간은 경험하지 못한 것은 쉽게 이해하지 못하고, 이미 지나간 자신의 과거는 빠르게 잊어버린다는 데 있다. 그래서 미루어 헤아리고, 애써 기억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바로 공감력의 확장이다. 공감은 타고나는 성품이 아니라, 반복과 성찰을 통해 길러지는 능력이다. 이해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은 생각이 느려진다는 뜻이 아니라, 판단이 깊어진다는 의미다.

사회가 성숙해진다는 것은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뜻이 아니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채로도 서로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자세를 갖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세는 이해, 즉 '미루어 헤아리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또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지난 한 해 동안 우리의 마음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는지 조용히 돌아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