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없어 공장 증설 포기 … 일당 19만원 불체자도 감지덕지"

고재만 기자(ko.jaeman@mk.co.kr), 정지성 기자(jsjs19@mk.co.kr) 2023. 1. 25.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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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력난 덮친 중소기업 ◆

청년들의 취업 기피로 중소기업의 인력난이 갈수록 더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25일 경기도 안산시에 위치한 시화산단에서 한 중년 근로자가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승환 기자>

인기 있는 정보기술(IT) 업종에다 직원 기숙사까지 운영하고 있는 A사는 최근 수출 호조로 공장 확장을 추진하려고 했지만 직원을 구하지 못해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A사는 취업 시즌에 맞춰 작년 9월 채용 공고를 냈지만 연말까지 문의만 간간이 올 뿐 서류 접수가 단 한 건도 없자 최근 공고를 내렸다.

A사 관계자는 "작년에 실적이 좋았고, 올해도 수출 주문이 많이 들어와 공장을 확장하고 싶지만 사람을 못 뽑아서 고민"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병역특례 혜택을 받을 수 있어서 마이스터고나 특성화고 졸업생이 주로 취업했는데, 이들이 요즘은 대학을 가거나 '워라밸'이 보장되는 서비스업종에서 근무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포장용기 제조업체 B사는 설 연휴가 끝남과 동시에 다시 분주하게 공장을 돌리고 있다. 늘어난 수출 물량을 맞추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 4명을 추가로 고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는 불법 체류자도 있다. B사 관계자는 "현행 외국인 고용한도제(쿼터제) 아래에서는 일감이 몰릴 때 인력사무소를 통해 불법 체류자를 아웃소싱(외부 조달)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다른 공장들도 주문이 많은 시기에는 정식으로 입국한 외국인 직원의 몇 배에 달하는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다"며 "심지어 아웃소싱한 불법 체류자 일당이 14만~19만원으로,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정식 입국한 직원보다 2배 이상 많다"고 전했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高)' 위기로 고전하고 있는 제조 중소기업이 최악의 인력난까지 겹치면서 몸살을 앓고 있다.

2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작년 상반기 기준 300인 미만 기업의 미충원 인원(기업이 필요로 하는 인력 대비 충원하지 못한 인원)은 16만4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71.3% 급증했다. 이는 300인 이상 기업의 미충원 인원(1만2000명)보다 13배가 넘는 수치다. 같은 기간 미충원율은 13.4%로 3.8%포인트 증가했다.

중소기업 인력난 원인은 저출산·고령화, 구직자와 구인기업 간 미스매치,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복지 격차, 코로나19 대유행에 따른 외국인 근로자 입국 제한 등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다는 분석이다.

만성적 인력 부족을 호소하는 중소기업계가 주 52시간제 유연화, 쿼터제 폐지 등을 통해 일손 부족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에서 직원 20여 명을 데리고 조선부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C씨는 이날 매일경제와 전화통화에서 "25년간 공장을 운영하면서 작년처럼 사람을 구하기 어려웠던 적은 처음이었다"고 토로했다. C씨는 "업종 특성상 특정 기간에 일감이 몰릴 때가 많은데 인력 부족과 주 52시간제 때문에 납기를 맞추기가 힘들다"며 "유연근무제로 맞출 수가 없기 때문에 주 52시간제를 철저히 준수하라고 하는 것은 범법자가 되라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정부가 중소기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역대 최대 규모로 외국인 근로자 문호를 넓히겠다고 선언했지만, 중소기업계에서는 단순히 쿼터제를 확대할 게 아니라 한도 폐지를 통해 더욱 과감하게 개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종별 외국인 한도와 사업장별 고용 허용 인원을 제한하는 현행 쿼터제는 오히려 중소기업의 불법 체류자 고용, 기업 쪼개기 등 각종 편법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올해 외국인 비전문 취업비자(E-9) 총쿼터(입국 인원)를 전년 대비 60% 이상 증가한 11만명으로 늘리고, 기업별 외국인 근로자 고용 한도도 확대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중소기업계에서는 이 같은 조치가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실제 최근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1000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정부가 발표한 기업별 외국인 근로자 고용 한도 확대에 대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의견이 50.4%를 차지했다.

경기도 평택시에서 건설자재 공장을 운영하는 D씨는 "현행 쿼터제 아래에서는 내국인 직원이 10명 이하라 외국인 근로자는 9명까지만 고용할 수 있는데, 한국인 직원이 줄면 외국인 근로자도 줄어드는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비판했다. 식료품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E씨는 "주변 공장들은 외국인 근로자를 법정 한도보다 더 뽑기 위해 기업을 2~3개로 쪼개는 방식으로 추가 채용하는 사례가 많다"며 "적발된다고 해도 당장 공장을 돌리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단순히 외국인 근로자 확대에만 머물 게 아니라 당근과 채찍을 확실하게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플라스틱 부품 제조업체 F사 대표는 "한 업체에서 10년 이상 성실하게 일한 외국인 근로자에게는 영주권을 줘서 정년까지 일할 수 있게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노민선 중소벤처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쿼터제를 늘리려는 정부 노력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중소기업 현장의 인력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보다 빠른 제도 도입과 개선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고재만 기자 / 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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