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인사이트] 서울 누비는 야생동물… 암사동에 삵, 연대 뒷산에 산양, 남산에 솔부엉이

손덕호 기자 2024. 10. 19.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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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정서희

서울 종로구 창덕궁 후원에 멧돼지가 돌아다니는 모습이 지난 9월 말 방범 카메라에 찍혔다. 다음날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는 종일 수색작업을 벌였지만 멧돼지를 찾지 못했다. 다시 하루 뒤 후원 관람 예약을 취소시킨 뒤 사냥개를 동원해 포획에 나섰고, 2시간 만에 멧돼지를 발견해 사살했다. 1.5m 길이에 몸무게는 90㎏이었다. 빠른 속도로 달려오는 멧돼지에 사람이 부딪히면 크게 다칠 수 있다.

야생동물은 서울 도심에도 자주 나타난다. 너구리가 아파트 단지 근처 공원을 산책하던 주민을 습격하는 사고도 발생했다. 서울의 산과 하천에도 다양한 야생동물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 먹이사슬의 최상위권에 있는 맹수 삵은 암사동에서 발견됐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수달도 한강에 살고 있다. 들개가 북한산과 관악산에서 등산객을 위협하기도 한다.

2022년 8월 6일 서울 노원구 중계동 국민은행에 멧돼지가 출현했다. /서울시 제공

◇멧돼지, 연간 649회 서울 도심 출몰… 너구리도 81회 나타나

멧돼지는 서울 도심에서 한 달 평균 50건 이상 출몰하고 있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에 따르면 2023년 1년 동안 649회 멧돼지가 나타나 출동해 안전조치를 했다. 멧돼지가 많이 나타난 곳은 은평구, 종로구, 중랑구, 강북구 등 산 주변 지역이다.

서울 종로구 부암동도 멧돼지가 나타나는 단골 장소다. 지난해 1월 부암동 도로에서는 멧돼지가 가로질러 뛰어다니는 모습이 목격됐다. 소방당국은 신고를 받고 출동했지만 멧돼지는 근처 산으로 사라진 상태였고, 인명 피해는 없었다. 지난 2019년 10월에는 부암동 주택가에 멧돼지가 나타나 포획단에 의해 사살당했다. 부암동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끼고 있어 이곳에 사는 멧돼지가 자주 내려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래픽=정서희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는 야생동물은 멧돼지만 있는 게 아니다. 너구리는 ‘귀엽게 생겼다’는 인식이 있지만, 2022년 7월 송파구의 아파트 단지 옆 장지근린공원에서 50대 여성이 너구리 때문에 다쳤다. 고양이와 생김새가 비슷해 접근했다가 공격을 받고 병원 신세를 졌다.

서울연구원이 올해 3월에 발표한 연구 결과 너구리는 서울 25개 자치구 중 서대문구를 제외한 24곳에서 발견됐다. 서울야생동물구조센터는 2021년 한 해 동안 너구리를 81건 구조했다. 주로 하천과 산림 주변에서 주로 살고, 먹이를 얻으려 도심으로 내려온다. 서울 도심 32.2% 정도의 지역에서 살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래픽=정서희

◇천연기념물·멸종위기 1급 야생동물도 발견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 1급에 해당하는 야생동물도 서울에서 발견되고 있다. 천연기념물인 솔부엉이가 2016년 남산에 설치된 대형 인공 새집에서 번식했다. 솔부엉이는 곤충이나 작은 새를 먹는 먹이사슬의 최상위 포식자인 맹금류다.

또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인 삵도 2021년 강동구 암사생태공원에서 발견됐다. 어미로부터 독립한 새끼 삵이 물웅덩이 주변에서 사냥하고 있었다.

암사생태공원서 발견된 삵. /서울시 제공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산양도 서울 광진구·중랑구 용마산과 종로구 인왕산, 연세대 뒷산인 서대문구 안산에서 발견됐다. 산양은 주로 강원도나 경기 북부, 경북 일부 지역에 서식하는데, 시민들의 등산로 바로 옆에서도 살고 있는 것이다. 인왕산과 안산은 왕복 4차로인 통일로로 가로막혀 있는데, 2018년 야생동물이 두 산을 오갈 수 있는 무악재 하늘다리가 완공됐다. 산양은 이 다리를 건너 다니는 것으로 추정된다.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 수달도 서울을 가로지르는 한강과 지류 하천에서 살고 있다. 수달은 1974년 이후 한강에서 발견되지 않았으나 2016년 탄천 하류에서 발견됐다. 2022년에는 15마리가 한강 본류와 탄천, 중랑천, 여의도 샛강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왕산에서 발견된 산양. /서울시 제공

한편 시민들이 자주 찾는 산에도 들개가 출몰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관악산(청룡산·삼성산 포함), 북한산(도봉산·수락산 포함)에는 들개가 200마리 이상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려견과 달리 들개는 사람을 경계하기 때문에 등산객에게 먼저 접근하는 경우는 적지만 위협을 느끼면 공격할 수 있다.

◇서울 자연 회복되고 먹이도 있어… 야생동물 도심으로

서울에서 야생동물 출몰이 잦아진 이유는 환경 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게 전문가들 의견이다. 산양은 최근 몇 년간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려 풀을 찾기 어려워지자 먹이를 찾아 저지대로 이동한 것으로 추정된다. 용마산의 경우 활엽수가 많아 먹이가 풍부하고 용마폭포가 있어 산양이 물을 구하기 쉽다. 또 너구리는 시민들이 길가에 뿌려 놓은 고양이 사료를 먹으려 도심으로 내려왔다는 의견도 있다.

한강에서 발견된 수달. /서울시 제공

자연 환경이 회복된 것도 도심으로 야생동물이 내려오는 한 이유다. 삵이 한강변에서 서식하는 것도 콘크리트 호안(護岸)을 걷어내고 녹지를 갖춘 자연형 호안으로 복원한 덕분이라는 게 서울시 설명이다.

야생동물은 시민들에게 피해를 주기도 한다. 멧돼지가 도심으로 내려오면 인명과 재산에 피해를 줄 수 있고, 너구리에 물리면 광견병 바이러스가 옮을 수 있다. 서울시는 어묵 반죽 안에 광견병 백신을 넣은 ‘미끼’를 살포해 야생동물이 면역을 형성하게 하는 방법으로 시민들의 안전을 보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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