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우 하윤경은 최근 디즈니+ 드라마 '강남 비-사이드'에서 승진에 눈 먼 야망 넘치는 검사 민서진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실제 검사 출신 변호사들을 만나 자문을 구하는 등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고 한다.

[인터뷰] '강남 비-사이드' 하윤경

배우 하윤경의 얼굴에선 현실에서 몇 센티미터 떨어지지 않은 인물의 모습이 배어나온다. 진창 같은 삶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지친 기색이거나, 어딘가 마음이 쓰려 안아주고 싶은 표정이거나, 자그마한 정의라도 지켜내기 위해 애쓰는 소시민의 얼굴이 되기도 한다.
지난 11월6일부터 27일까지 매주 에피소드를 순차 공개했던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강남 비-사이드'(극본 주원규·연출 박누리) 속 하윤경은 선과 악의 경계에 서서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평범하지만 현실적인 인물, 민서진을 연기하고 있다. 승진과 성공을 위해 앞뒤 가리지 않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바꿀 수 없는 현실에 분노하는 검사이다. 누아르라는 장르의 외피 안에서 하윤경은 평범한 그래서 더욱 공감을 얻는 인간의 얼굴을 내비친다.
"(민서진의 감정을)얼마나 표현하고 숨겨야 하는지 헷갈렸다"는 하윤경은 "호흡과 눈빛의 흔들림 정도로만 표현해야" 했던 고충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동안 독립영화를 하면서 현실에 맞닿아 있는 이야기를 많이 해왔다"며 앞으로는 "조금 더 장르적인 작품을 해보고 싶은 마음도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 강남의 어두운 이면 담은 이야기에 끌린 이유
'강남 비-사이드'는 서울 강남을 배경으로, 사라진 클럽 직원(김형서)을 각자의 이유로 찾아나서는 검사 민서진을 비롯해 형사 강동우(조우진), 포주 윤길호(지창욱)가 뒤엉키며 거대한 커넥션에 얽힌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서울 한복판, 강남의 어두운 이면을 들여다본다.
진창에 빠진 것처럼 눅눅하고 불쾌감이 들지만, '강남 비-사이드'는 이를 외면하지 않고 오히려 확대해 드러낸다. 연출자 박누리 감독의 말처럼 강남은 "화려한 밤의 뒷골목 그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축축하고 잘 보이지 않는 어두움과 그보다 더 어두운 공간"으로 묘사된다. '강남 비-사이드'는 마약 거래와 성매매, 범죄가 만연하는 도시의 화려한 뒷골목과 클럽의 뒤편에 주목한다.
그동안 하윤경은 사회적 규범 안에서 쉽게 인정받을 수 없는 동성애를 그린 '딸에 대하여', 디지털 성범죄로 삶이 무너진 피해자를 조명한 '경아의 딸' 등 독립영화에 출연하면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그려왔다.

"대단한 목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그는 "사회적으로 좋은 메시지가 있는 작품에 늘 끌린다. 나한테 울림이 생기고 그런 것에 위로를 받는다. '강남 비-사이드' 역시 선한 기운들이 작품 안에 잘 담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같이 하게 될 배우들이 듬직하기도 했다(웃음)"고 말했다.
소재가 소재인 만큼 '강남 비-사이드'은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 심연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불쾌할 수 있고, 불편할 수 있는 지점들까지 수면 위로 들어 올린다. 일명 '콜걸'이라고 불리는 이들과 포주의 관계, 클럽 MD와 마약 유통, 상류층과 고위 관리자들의 어두운 손까지 유기적으로 엮어낸다. 때문에 피비린내 나고 살벌하고 잔인하게 묘사된 장면들도 많다.
"사실 이것보다 심한 일들이 현실에는 더 많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거라고 생각해요. 자극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어둠의 이면을 보여드리면서 경각심도 가지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감독님과 이야기했는데, 끝까지 좋은 이야기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사실 우리가 평온하게 살다 보면 잊잖아요. 세상에 얼마나 나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지, 그로 인한 희생자가 얼마나 있는지. 그게 어쩌면 '강남 비-사이드'의 큰 교훈 아닐까요?"
하윤경이 연기하는 검사 민서진은 단박에 '어떤 인물이다'고 정의 내리기 어렵다. 지방대 출신에, 제대로 된 '빽'도 없는 민서진은 성공을 향한 이글거리는 야망과 함께 '아닌 건 아니라고' 똑부러지게 말한다. 어둠과 빛의 경계선에 서 있는 그는 마치 화려하지만 어두운 강남 그 자체를 닮은 듯하다. 하지만 속내를 쉽게 드러내지 않고 표정의 변화 없는 그는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지도 않는다.
하윤경은 "초반부 민서진의 진심 아닌 진심이 드러나는 장면은 '나는 승진에 눈 먼 미친 X이다'가 유일하다고 생각했다"며 "이 사람의 진실성과 감정을 담으려고 했다. 검사 경력이 그렇게 오래된 사람은 아니지만, 정확해지기 전까지 보류하고 지켜보는 삶을 살아왔던 것이 아닐까. 그런 점이 극을 흥미롭게 만드는 지점 같다"고 설명했다.

● 민서진처럼, 하윤경이 견뎌온 시간(들)
1992년생 하윤경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기과 출신이다. 2015년 국립극단 청소년극 '록산느를 위한 발라드'로 데뷔해 올해로 9년차를 맞았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봄날의 햇살' 최수연 변호사로 시청자에게 낯익지만 사실 '거미숲', '리모콘이 어딜 갔지?', '우산을 안 가지고 와서', '저 ㄴ을 어떻게 죽이지?' 등의 다양한 장단편 독립영화로 꾸준히 한 단계씩 밟아온 배우이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당연히 많았죠. 한 번도 포기하고 싶은 적이 없다는 배우들이 있다면 정말 부러운 것 같아요. 처음에는 나약해보일까봐 그런 부분을 숨겼어요. 오디션에서 떨어지면 그때마다 힘이 정말 빠져요. 어떤 때는 반대로 준비를 하나도 안 한 오디션에 붙는 경우도 있죠. 그때 제가 생각했던 것은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쌓아온 나의 연기력과 고민들이 준비하지 않은 오디션에서 나올 수도 있겠구나', '헛된 시간만은 아니었구나'라는 거였어요."
민서진은 승진을 위해, 정의를 위해 갈팡질팡하면서도 결국 내부고발이라는 선택을 한다. 이를 연기하는 하윤경은 작품 앞에서, 연기 앞에서 그런 선택의 순간들을 겪었을까. 그는 "항상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편"이라며 "그런 선택들이 빛을 발하지 않을 때도 많다. 그때마다 '내가 보는 눈이 없나', '대중적이지 못하나' 생각도 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그런 순간들이 있었기에 좋은 작품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들어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큰 반향을 일으키지는 않더라도 내가 타협하지 않고 내가 좋고 맞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앞으로도 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가 '슬기로운 의사생활' 시리즈의 의사,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변호사, '강남 비-사이드'의 검사까지, 이른바 '사'자가 들어가는 전문직 캐릭터들을 유난히 많이 맡아왔다는 점이다. "직업 자체보다 캐릭터의 가치관"을 더 본다는 하윤경은 "(전문직 캐릭터를 하다보면)인간으로서 새로운 것에 대한 배움과 쾌감이 있는 것 같다. 군인도 해보고 싶다. 이왕 전문직 해보는 거 다양한 분야를 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며 웃었다.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그것만은 빼놓지 않는다.
"기술적인 연기는 최대한 경계하는 편이에요. 사람인지라 자기만의 무언가가 계속 생겨요. 이를테면 필살기 같은?(웃음) 연기할 때 가장 중요하게 표현하고 싶은 것은 어떤 역할이든 그 사람한테 연민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물론 진짜 나쁜 역할은 안 되지만! 그 사람의 연민 포인트가 있어야지, 그런 점에서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흥미를 느낀다고 생각해요"

사진제공=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