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축통화의 저주? 트리핀 딜레마와 트럼프의 달러 전쟁!

[이용우의 경제 더하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트럼프 정부의 오락가락 정책과 시장 혼란

혼돈의 연속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은 출범부터 오락가락했다. 그는 하루 아침에 입장을 바꿔 각국에 고율 관세를 부과하거나 유예를 반복하고 있다. 지난 10일(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대한 관세율을 기존 84%에서 124%로 전격 인상하겠다고 발표해, 이미 부과 중이던 20% 제재 관세까지 합쳐 총 145%의 초고율 관세를 중국산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들에는 90일간 상호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기본 관세율을 10%로 낮추겠다고 번복했는데, 이에 따라 한국에 대한 미국의 관세도 일시적으로 25%에서 10%로 인하되었다.

자료=한겨레 신문

급작스런 정책 변화에 금융시장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발표 당일 나스닥 지수가 5% 폭락하여 전날 12% 급등과 정반대 움직임을 보였고, 미국 철강기업 US스틸의 주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단기간 내 정책 번복에 따라 10% 이상 하락하는 등 큰 폭으로 요동쳤다. 잇따른 말 바꾸기와 즉흥적 결정으로 기업들은 어떤 기준에 맞춰 대응 전략을 세워야 할지 갈팡질팡하게 되었고, 정책 불확실성의 증대로 인해 경기 전망과 투자 계획 수립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폭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가늠하기조차 어려운 실정이다.

이런 데도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미국과의 협상을 서두르고 있다. 통상전문가라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듯하지만 그는 통상협상에서 큰 실패를 한 전적이 있다. 지난 2000년 한국과 중국간 마늘을 둘러싼 통상마찰 당시, 굴욕적 합의를 한 주인공이다. 당시 한 대행은 산업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냉정한 손익 계산과 협상 전략 없이 나섰다가 통상보복을 자초했고 그 사실이 알려지자 청와대 경제수석에서 경질됐다. 전략 부재에 불순한 정치적 의도마저 감지되는 그에게 맡겨 놓을 일이 아니다.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 사진= 연합뉴스

이론적 배경: ‘마이런 보고서’와 트리핀 딜레마

트럼프 관세전략의 밑바탕에는 스테판 마이런(Stephen Miran)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이 제시한 이른바 ‘마이런 보고서’의 구상이 있다. 마이런 보고서의 정식 명칭은 「글로벌 무역 시스템의 재구축을 위한 사용자 가이드」(주: Stephen Miran, “A User’s Guide to Restructuring the Global Trading System”, 2024년 11월 13일 발표)인데, 이 보고서는 미국 경제 쇠퇴 원인과 해법을 다소 극단적 방식으로 제시하여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보고서의 핵심 주장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강달러의 역설: 달러가 기축통화 지위를 갖게 되면서 지나치게 높은 달러 가치가 고착되었고, 이로 인해 미국 제품의 수출 경쟁력이 떨어져 제조업 쇠퇴와 일자리 감소를 초래했다.

● 기축통화의 부담: 미국은 달러 기축통화를 유지하느라 경상수지 적자 등 경제적 비용을 치르고 있을 뿐 아니라, 동맹국들에게 안보 우산을 제공함으로써 막대한 안보 비용까지 부담해 왔다.

● 비용 분담 요구: 안보 우산은 모든 국가가 혜택을 보는 국제 공공재인 만큼, 동맹국들은 미국에 대한 장기투자 형태로 안보 비용을 분담해야 한다. 예컨대 동맹국이 미국의 장기국채를 불리한 조건으로 매입·보유해(이자 없는 할인채 형태 등) 미국이 지는 기축통화 비용을 다른 국가에 부담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이다.

● 관세 지렛대: 미국은 모든 무역 상대국에 일률적 고율 관세를 부과하고 이를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여야 한다. 만약 어떤 국가가 미국 국채를 요구대로 장기 보유하지 않으면 그 나라에는 영구히 관세폭탄을 유지하고, 나아가 미국의 안보 우산 밖으로 밀어내는 압박 카드로 쓴다.

● 달러 약세 유도: 미국은 자국 통화인 달러가 너무 강세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유로, 엔화 등 외환보유고를 적극 활용해 시장에 개입함으로써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유지하되 과도한 강세를 조정하고, 이를 통해 미국 제조업의 부활과 무역수지 개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노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마이런 보고서의 논리다.

이 전략의 최종 목표는 “마러라고 합의”(Mar-a-Lago Accord)로, 1985년 플라자 합의보다 훨씬 강압적인 형태로 동맹국에 굴욕적인 협조를 요구하는 신경제 질서체제다. 쉽게 말해, 동맹국에 관세 칼날과 안보지원을 무기 삼아 달러 패권 유지비를 받아내겠다는 발상이다. 이 구상은 이론적으로 '트리핀의 딜레마'(주- 로버트 트리핀(Robert Triffin) 예일대 교수가 1960년에 출간한 저서 ‘금과 달러 위기’에서 이 개념을 제시하였다.)를 해결하려는 시도다.

트리핀 딜레마란 글로벌 기축통화국이 직면한 모순을 가리키는 것으로, 달러 같은 기축통화를 공급하려면 미국은 상시적인 국제수지 적자로 세계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밖에 없는데, 이 상태가 지속되면 결국 대외신인도 하락과 자국 경제 불안정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되는 구조적 딜레마다.

'마이런 보고서'는 미국이 더 이상 일방적으로 세계의 결제통화 의무를 떠안지 않고, 그로 인한 손실을 동맹에 전가하여 분담함으로써 이 딜레마를 완화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브레튼우즈의 교훈: 화이트 안과 케인즈 안

마이런 보고서의 배경을 더 깊이 이해하려면, 2차 세계대전 직후 국제통화체제를 설계할 당시의 브레튼우즈 협정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다.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에서는 전후 세계 금융질서를 설계하기 위해 미국의 화이트 안과 영국의 케인즈 안이 격돌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국제결제 질서를 위해 ‘방코르’(Bancor)라는 초국가 통화를 창설하고 국제통화기금(IMF)을 통해 세계 무역 불균형을 조정하자고 제안했다. 케인즈 안(案)은 단일 국가의 통화에 의존하지 않는 다자간 결제 시스템으로, 기축통화를 보유한 나라의 부담을 덜고 무역흑자국과 적자국 모두에 조정 책임을 지우는 이상적인 안으로 평가받았다.

반면 미국 재무부의 해리 덱스터 화이트는 케인즈 안이 영국에 유리한 일방적 구상이라 여겼고, 별도의 통화를 만들기보다는 미국 달러를 '금 본위'로 삼아 각국 통화를 달러에 연동시키는 고정환율제를 제안했다. 이는 전후 세계 금융질서를 미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전략적 구상이었다.

결국 1년여의 논쟁 끝에 미국의 화이트 안이 승리하여 1944년 IMF 설립 협정은 화이트 안을 기본으로 일부 케인즈 안을 가미한 형태로 타결되었다. 이 협정에 따라 달러를 금에 고정(온스당 35달러)하고 다른 나라 통화들은 달러에 연동(peg)하여 운용하는 브레튼우즈 체제가 출범하게 되었다.

브레튼우즈 체제의 출범에 기여한 화이트(왼쪽)와 케인즈. 화이트는 나중에 소련 간첩 혐의를 받았다.

화이트 안의 채택으로 미국은 전후 막대한 특수를 누리며 달러를 세계 기축통화로 만드는 데 성공했지만, 그 대가로 막중한 책임을 짊어지게 되었다.

전세계 무역과 금융에 필요한 달러를 공급하기 위해 미국은 만성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감수해야 했고, 1960년대 말이 되자 금 달러 본위제 유지가 어려울 만큼 달러 발행량이 누적되었다. 결국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1971년 달러의 '금 태환 정지'를 선언하여 브레튼우즈 체제를 일방적으로 종료하였고, 이로써 케인즈가 우려했던 트리핀 딜레마의 전개가 현실화되었다.

한편 케인즈 안에 담겼던 국제 통화 ‘방코르’ 구상은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 철학은 이후 IMF 특별인출권(SDR)이나 유럽 통화통합(Euro화) 등의 형태로 일부 반영되었다. 국제 공공재인 통화 질서를 단일 패권국 통화에 의존하지 않고 다극화하거나 새로운 초국적 통화를 도입하자는 논의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마이런 보고서의 구상 역시, 고전적 브레튼우즈 질서의 한계를 직면한 미국이 새로운 판짜기를 모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금태환을 정지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 달러화가 기축통화의 지위를 유지한 것은 미국 경제에 대한 신뢰가 유지되었고 미국이 지속적인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달러를 공급하였기 때문이다. 곧 미국에 대해 국제사회가 신뢰를 하였기 때문이다. 마이런 보고서는 이런 상태가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한 것이고, 미국이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떨어졌다는 것을 생생히 보여준 사인이다. ②편으로 이어집니다.


※ 이용우는 제21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주로 정무위원회와 연금개혁특위 등에서 기업의 지배구조, 대기업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정거래 이슈 관련 입법 활동을 많이 했다. 아울러 기후위기 등 대전환의 시대에 주목하여야 하는 ESG 제도 정립에 대해 21대 국회에서 최초로 문제제기하고 제도화하기 위한 활동을 하였다. 국회의원 전에는 현대그룹, 한국투자금융지주, 한국투자신탁운용 총괄CIO, 인터넷전문은행인 카카오뱅크 공동대표 등을 지냈다.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동대학원 석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고, SAIS(School of Advanced International Studies), Johns Hopkins University Visiting Scholar(방문학자)를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