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A를 앞두면 성적이 상승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동안의 커리어를 평가 받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하기 때문이다. 주가를 최대한 높인 뒤 시장에 나오는 것이 일반적이다. 오죽하면 금지약물 스테로이드와 결합된 'FA로이드'라는 말까지 존재한다.
2년 전 애런 저지도 FA를 앞두고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당초 양키스가 연장 계약에 미온적인 태도로 나왔는데, 보란듯이 62홈런을 쏘아 올려 아메리칸리그 단일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타이밍을 놓친 양키스는 시즌 후 저지와의 협상에서 철저히 '을'의 입장이었다. 결국 연평균 4000만 달러에 달하는 9년 3억6000만 달러 계약을 안겨줬다.
올해 김하성에게 거는 기대도 남달랐다. 지난해 타격에서 발전이 있었고, 수비는 골드글러브 수상(유틸리티)으로 확실하게 인정을 받았다. 4년 계약의 마지막 시즌에 성적이 크게 향상될 것을 예상했지만, 아직은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105경기 : 타율 .229, OPS .694
지난해 김하성은 152경기 타율 0.260, OPS 0.749를 기록했다. 시즌 중반 질주하던 구간이 있었는데, 마지막 29경기에서 오버페이스의 여파가 나타났다(타율 0.190, OPS 0.504).
그 이전까지 김하성의 타격 성적은 놀라웠다. 123경기 타율 0.280, OPS 0.816이었다. 공격 종합 지표로 불리는 조정득점생산력(wRC+)도 메이저리그 2루수 전체 2위였다.
2루수 wRC+ 순위 (~8/23일)
131 - 루이스 아라에스
129 - 김하성
123 - 케텔 마르테
121 - 아지 알비스
121 - 마커스 시미언
우리가 기대한 김하성은 아마 이 모습이었을 것이다. 지난 시즌도 초반에 주춤한 뒤 5월 중순부터 속도를 냈기 때문에 올해도 비슷한 시점에서 불타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때마침 김하성은 5월20일 애틀랜타 원정부터 상승세에 접어들었다. 이후 23경기 타율 0.270 4홈런, OPS 0.902를 기록했다. 김하성의 시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문제는 동력이 이전 같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해 김하성은 고점을 향해 달린 기간이 길었다. 덕분에 시즌 막판 추락에도 개인 최고 성적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좋은 타격감이 길지 않았다. 6월13일 이후 20경기에서 타율 0.209, OPS 0.564로 다시 곤두박질쳤다. 그러다 보니 시즌 성적도 계속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다.
홈런도 실종됐다. 6월23일 밀워키전에서 시즌 10호 홈런을 때려낸 뒤 26경기 연속 홈런이 없다. 101타석 연속 무홈런이다. 2년 전 45경기 동안 홈런을 치지 못한 적이 있었지만, 당시 첫 풀타임 시즌의 적응기였던 점을 감안하면 현재 홈런 가뭄은 이례적이다. 참고로 지난해 김하성은 시즌 105경기에서 홈런 15개를 때려낸 바 있다.
2023-24년 김하성 월간 장타율
4월 [23] .326 2홈런 [24] .388 4홈런
5월 [23] .434 3홈런 [24] .337 3홈런
6월 [23] .477 4홈런 [24] .433 3홈런
7월 [23] .551 5홈런 [24] .270 0홈런

애당초 김하성은 파워로 승부하는 유형은 아니다. KBO리그에서 30홈런 시즌이 한 차례 있었지만, 그 이전 5시즌 평균 홈런 수는 20개 정도였다. 웨이트로 파워를 늘린다고 해도 상위리그에서 홈런 기대치를 충족시키는 건 매우 어렵다. 하위리그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파워를 내세우려면 일단 빠른 공 대처가 이뤄져야 하는데, 김하성은 빠른 공 지배력이 두드러지진 않는다. 빠른 공 대처가 최상급이었던 2015-16년 강정호와 다른 점이다.
2015-16년 포심 상대 타율 (150타석)
0.418 - 강정호
0.359 - 에릭 호스머
0.342 - 매니 마차도
0.338 - 애드리안 곤살레스
0.337 - 잰더 보가츠
2015-16년 포심 상대 장타율 (150타석)
0.716 - 강정호
0.655 - 호세 바티스타
0.641 - 조시 도널슨
0.638 - 브라이언 도저
0.620 - 데이빗 오티스
올해 김하성의 아쉬운 점은 여기서 비롯된다. 정확성과 파워가 동시에 떨어졌다. 둘 다 갖추지 못하면 둘 중 하나에 초점을 맞춰야 되는데, 둘 다 놓치는 모양새다. FA를 앞두고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보니 타석에서의 접근법이 애매해졌다.
타자들의 정확성은 리그 전체적으로 흔들리고 있다. 최근 메이저리그는 정확성보다 파워를 우선시한다. 구속과 회전수로 무장한 투수들이 탈삼진을 노리자, 타자들은 홈런으로 응수하고 있다. 이에 인플레이 타구가 줄고 '홈런 볼넷 삼진', 이른바 'TTO(three true outcomes)' 결과물이 짙어졌다. 지난해 사무국은 이 성향을 완화하기 위해 각종 규정들을 신설했는데, 올해 리그 평균 타율이 도로 하락하면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리그 평균 타율 변화
2021 : 0.244
2022 : 0.243
2023 : 0.248
2024 : 0.243
*2023년 피치클락 & 주자 견제 제한 등 도입
김하성의 타격 부진도 리그 특징에 속한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리그 평균 타율보다 낮기 때문에 이 현상만으로는 다 설명할 수 없다. 김하성은 규정타석을 충족한 146명 중 타율 121위다.
그렇다면 남은 시즌 김하성의 타율은 올라갈 수 있을까. 장담할 수 없지만, 눈여겨 봐야 될 부분은 있다. 인플레이 타구에 대한 타율, 'BABIP'다.
BABIP는 유의미한 지표로 자리매김했다. 타자의 BABIP가 지나치게 높으면 아무리 타율이 높아도 일정 수준의 '운'이 작용했다고 해석한다. 발 빠른 좌타자들은 BABIP가 기본적으로 높을 수 있지만, 통산 혹은 리그 평균보다 높다면 아웃이 돼야 할 타구가 안타로 바뀐 상황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올해 김하성은 위와 반대로 BABIP가 유독 낮게 잡히고 있다. 0.254에 불과하다. 리그 평균 BABIP가 0.289, 지난 2년간 개인 통산 BABIP가 0.298인데, 두 수치와 거리감이 있다. 내셔널리그 타자들 중에서도 5번째로 낮다.

물론, BABIP가 낮다고 해서 무조건 김하성이 불운하다고 보는 건 단편적이다. 하지만 올해 김하성은 BABIP가 갑자기 낮아질 징조가 없었다.
BABIP는 타구의 질이 나쁘면 타율과 함께 떨어질 수 있다. 약한 타구나 빗맞은 타구가 안타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올해 김하성은 평균 타구속도가 지난 두 시즌보다 빨라졌다. 타구속도 95마일 이상 타구를 집계한 비중도 지난해 26.7%에서 올해는 36.1%로 늘었다.
김하성 평균 타구속도
2022 - 86.7마일
2023 - 86.2마일
2024 - 88.3마일
실제로 타구의 질로 계산된 기대 피안타율에서 김하성은 0.251를 보이고 있다. 실제 타율보다 준수하다. 타구의 질이 개선됐는데, 타율이 오히려 떨어진 건 모순되는 점이다.
BABIP는 타구 유형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변동이 생길 수 있다. 시프트에 의해 안타가 막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하성은 이 가정에서도 BABIP가 급락할 조짐이 없었다. 작년보다 밀어친 타구 비중이 20.8%에서 22.6%로 늘어나면서 분포도를 고르게 맞췄다. 아웃 확률을 높이는 땅볼 비중도 지난해 41.3%, 올해 41%로 별 차이가 없다.
선구안이 무너진 것도 아니다. 선구안이 나빠지면 막무가내 스윙으로 좋지 않은 타구가 양산된다. 하지만 김하성은 올해 볼넷/삼진 비율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가장 빼어나다.
규정타자 볼넷/삼진 비율
1.38 - 무키 베츠
1.15 - 후안 소토
0.90 - 프레디 프리먼
0.83 - 스티븐 콴
0.78 - 쥬릭슨 프로파
0.76 - 김하성
메이저리그는 다재다능한 선수를 선호하는 추세다. 지표에서도 공격과 수비, 주루가 전부 반영되는 승리기여도의 가치가 높아졌다. 수비와 주루가 뛰어난 김하성은 공격이 메이저리그 수준이라는 것을 각인시키는 게 중요하다. 공격만 평균치를 해줘도 승리기여도에서 강점을 드러내 몸값을 높일 수 있다. 당연히 지금보다는 분발을 해줘야 한다.
우선, 노림수부터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 힘으로 우위를 점하지 못한다면 콘택트에 집중해야 한다. 후반기에 돌입한 시점에서 무리하게 욕심을 부리면 일이 더 꼬일 수 있다.
후반기 승부수는 타율이다. 리그 평균보다 떨어지는 타율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다. 성적이 아쉬웠지만, BABIP를 들여다보면 운이 따르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전반기 때 외면받은 BABIP의 가호를 후반기에 받을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한다.
김하성 월별 BABIP 변화
4월 : 0.241
5월 : 0.227
6월 : 0.263
7월 : 0.298
- 이창섭
현 <SPOTV> MLB 해설위원
전 <네이버> MLB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