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진짜 슈퍼 화이트지. 처음 마셨을 때 느꼈던 그 섬세함이 아직도 잊혀지질 않아."
북이탈리아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Friuli Venezia Giulia) 돌레냐 델 콜리오(Dolegna del Collio)의 언덕. 이탈리아 북동단의 고요한 와인 산지에서 마주한 한 소믈리에는 그렇게 말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던 건 예르만 빈티지 투니나(Jermann Vintage Tunina)였다.

예르만 빈티지 투니나는 단순한 화이트 와인이 아니라, 이탈리아 프리미엄 화이트의 기준을 새롭게 정의한 한 와인으로 인식을 굳혔다. 지역 토착 품종과 국제 품종을 블렌딩해 완성한 이 와인은 균형과 깊이를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슈퍼 화이트(Super White)'라는 별칭으로 수십 년간 전 세계 와인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아 왔다.
와이너리 예르만(Jermann)은 1881년 오스트리아 출신 안톤 예르만이 프리울리 지역에 정착하며 포도원을 가꾸면서 시작됐다. 1970년대에 3세대 실비오 예르만(Silvio Jermann)이 와이너리에 합류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양조학을 공부하고 캐나다에서 와인 경험을 쌓은 뒤, 전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감각을 바탕으로 새로운 양조 철학을 도입했다.
실비오 예르만은 '필드 블렌딩(field blending)이라는 전통적인 와인 제조 방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는 여러 품종을 한 포도밭에 함께 심고 동시에 수확해 하나의 양조 과정에서 블렌딩하는 방법이다. 서로 다른 품종의 특징이 처음부터 조화롭게 어우러지도록 설계된다.
일반적인 블렌딩이 양조 이후에 서로 다른 품종의 와인을 섞는 것이라면 필드 블렌딩은 수확과 발효 단계부터 섬세한 조화를 의도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보다 복합적인 아로마와 균형 있는 구조감을 지닌 와인을 만들어내며 빈티지 투니나가 보여주는 입체적인 풍미 역시 이 방식의 결과물이다.

프리울리 베네치아 줄리아는 이탈리아에서도 손꼽히는 화이트 와인 명산지다. 알프스 산맥과 아드리아 해 사이에 위치해 해양성 기후와 대륙성 기후가 교차하는 독특한 기후를 지닌다.
큰 일교차와 규칙적인 해풍은 포도가 천천히 익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산도와 당도의 균형이 잘 잡힌 고품질 포도를 생산하게 한다. 프리울리 와인의 섬세하고 정밀한 스타일은 이러한 떼루아 덕분에 가능하다.
빈티지 투니나의 블렌딩에 사용되는 샤르도네(Chardonnay)는 구조감과 숙성 잠재력을, 소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은 선명한 산도와 허브 뉘앙스를, 리볼라 지알라(Ribolla Gialla)는 프리울리 지역 특유의 미네랄리티와 청량함을, 말바시아(Malvasia)는 은은한 꽃 향과 부드러운 질감을 더한다.
이 품종들이 어우러진 결과단일 품종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풍성한 아로마와 입체감 있는 구조을 지닐 수 있게 됐다.
색상은 밝은 황금빛으로 풋과일·꿀·야생화의 향의 조화가 매력적이다. 스테인리스 탱크에서 9개월 숙성한 이 와인은 오크의 영향 없이도 깊이 있고 복합적인 풍미를 드러낸다. 드라이한 스타일에 부드러운 질감, 적당한 산도와 입안에서 퍼지는 여운까지 단단한 뼈대와 우아한 흐름이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이 와인은 가리비 관자·구운 농어·버섯 크림 파스타·해산물 리조또·리코타 치즈·라비올리 등 깔끔하면서도 향이 깊은 요리들과 훌륭한 마리아주를 이룬다.
2007년 예르만은 돌레냐 지역에 전통 건축 양식과 최신 양조 기술이 결합된 새 와이너리를 완공했다. 20헥타르 이상의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이 공간은 빈티지 투니나와 W 드림스, 카포 마르티노 같은 브랜드를 온전히 표현하는 장소다.
2013년에는 이탈리아에서 세 번째로 카사 클리마 와인(CasaClima Wine, 이탈리아 기후에너지청(Agenzia CasaClima)에서 운영하는 지속 가능성과 에너지 효율성 기반의 와이너리 인증 제도) 인증을 획득했고, 일부 포도밭은 유기농 방식으로 전환하며 지속 가능한 생산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리고 2021년, 안티노리(Antinori)는 예르만을 인수했다. 이로써 움브리아의 체르바로(Cervaro), 프리울리의 빈티지 투니나와 W 드림스까지, 이탈리아 슈퍼 화이트를 대표하는 명작들을 모두 손에 넣게 되었다. 이 세 와인은 지역성과 감각, 품질의 기준을 모두 갖춘 안티노리 화이트 포트폴리오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프리미엄 화이트 와인의 정수를 묻는다면, 대답은 정해져 있다. 바로 투니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