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70년대 국민 아역 배우였던 김정훈이 최근 의외의 근황을 전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아역 시절 대성공 이후 연예계를 떠나 사업가로 전환했던 그는 심근경색, 해외 이주, 가족 간병 등 인생의 굴곡을 거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역 배우 김정훈. 그를 떠올리면 자연스럽게 1968년 영화 ‘꼬마 신랑’이 연상됩니다. 이 작품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오른 김정훈은 이후 ‘미워도 다시 한 번’ 시리즈 등에서 국민 남동생으로 불리며 100만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당시 그는 한 달에 10편이 넘는 영화를 찍으며, 영화 한 편당 20만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알려졌습니다. 지금 시세로 환산해도 상당한 금액이죠. 어린 나이에 엄청난 주목을 받았던 김정훈은 누구보다 일찍 ‘성공’을 맛봤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과도한 작업량은 오히려 그에게 삶에 대한 회의감을 안겨주었고, 결국 그는 영화 출연을 거부한 채 연예계를 떠나 대만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연예인에서 사업가로…그리고 다시 한국으로
김정훈은 대만에서 평범한 학생으로 생활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습니다. 이후 컴퓨터 부품(메인보드) 수입 유통 사업으로 성공을 거두었고, 중국 북경에서 언어학원도 운영하며 다방면에서 활약했습니다.
그러나 사업 확장과 외국 생활로 인해 어머니의 걱정이 커졌고, 결국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결혼하고 새집증후군 관련 사업에 뛰어듭니다. 하지만 사업 실패와 함께 42세에 심근경색으로 쓰러지며 인생 최대의 위기를 겪게 됩니다.

당시 아이들이 어렸던 시기였기에 그는 “일단 살아야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일을 내려놓고 회복에 집중했다고 합니다.

미얀마로 떠나 새로운 도전…현재는 가족 곁으로
건강을 되찾은 김정훈은 다시 한번 도전정신을 발휘해 미얀마로 향했습니다. 현지에서 군부 방송국의 장비 디지털화 작업을 맡으며, 사업가로서 또 다른 이력을 쌓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미얀마에서 생활하며 새로운 삶을 이어갔습니다.
이후 그는 다시 한국으로 귀국해, 치매를 앓고 있는 어머니와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를 돌보며 서울과 담양을 오가고 있습니다.

현재 가족들은 홍콩, 캐나다, 미얀마 등 전 세계에 흩어져 살고 있지만, 김정훈은 당분간 한국에 머물며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고자 합니다.
‘꼬마 신랑’ 김정훈, 아역 스타에서 사업가로…심근경색·해외 이주·가족 간병까지 파란만장한 근황이 대중들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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