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학창시절은 생각보다 훨씬 소탈했다.

경기초, 청운중, 경복고를 거치는 동안 단 한 번도 ‘삼성 오너의 아들’이라는 티를 내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 역시 그저 "좀 잘 사는 집 아들인가 보다" 정도로 생각했을 뿐, 그가 재계 1위 삼성의 후계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성적은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고, 반장을 도맡아 할 만큼 책임감도 강했다.
말수는 적었지만 늘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내며 소리 없이 주변을 배려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에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가 등록금을 못 내자, 조용히 대신 내준 일화가 뒤늦게 알려지기도 했다.
본인은 끝까지 밝히지 않았지만 나중에 친구들 사이에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역시 이재용답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재벌가 아들답지 않게 늘 조용했고, 특별대우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이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선택한 데에는 할아버지 이병철 선대회장의 조언이 결정적이었다.
이병철 회장은 손자에게 "경영학은 외국에 가서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먼저 인문학을 배우고 세상을 보는 눈을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게 이재용은 서울대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했고, 이후 일본 게이오대에서 MBA를, 하버드대에서는 경영학 박사과정을 밟으며 경영공부를 이어갔다.

서울대 재학 시절에도 특별대우는 없었다.
동기들 자취방에 놀러 가 라면을 끓여 먹고, 직접 요리해 친구들을 대접하는 현실 대학생 그자체였다.
학적부에 아버지 직업을 ‘회사원’이라 적을 정도로 자신의 배경을 드러내지 않았고, 친구들과 토론과 여행을 즐기며 평범한 20대를 보냈다.

당시 민주화 열기가 한창이던 서울대 캠퍼스에서 이재용 역시 시위에 참여한 적이 있다.
같은 과 선배와 연인인 척 손을 잡고 시위대에 섞여 들어가기도 했다. 세간의 재벌 후계자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고등학교 동창들과의 만남은 계속됐다.
부사장 시절까지도 매년 연말 동창회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경호원 없이 캐주얼한 차림으로 삼겹살집에 나타나 소주 한 잔 기울이며 친구들과 격의 없이 대화하는 모습은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도 익숙한 풍경이었다.

동창들은 이재용을 이렇게 기억한다.
"말수 적고 늘 조용했지만, 남에게 민폐 끼치는 걸 제일 싫어했던 친구였다.
남의 말도 귀담아 잘 듣고, 성적도 항상 반에서 상위권이었다. 그저 모범생이었다."
어릴 적부터 이렇게 다져진 겸손함과 배려는 이후 그의 경영 스타일에도 고스란히 녹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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