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에 비싼 가격표 붙이면 맛도 변할까

'가격이 품질을 인식시킨다'는 말은 마케팅 교재에도 나오는 내용이다. 이에 대한 거의 최초의 과학적 실험이자 가장 유명한 실험은 2008년 실시된 와인 시음 연구다.

스위스 바젤대학교 연구팀은 참가자 140명을 대상으로 15분간 6잔의 와인을 시음하고 와인의 강도와 맛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와인 6잔 중 3잔은 아무 표시가 없었고 각각 저가와 중가, 고가의 와인이 담겼다. 나머지 3잔에는 와인의 가격표가 붙었는데, 연구팀은 이중 일부를 정상 가격보다 4배 높거나 4배 낮게 조작했다.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unctional MRI)을 사용해 참가자 두뇌활동을 측정한 결과, 비싼 가격이 붙은 와인을 마실 때 참가자들은 더 맛있다고 느꼈다. 반면 정상가보다 낮은 가격표가 붙은 와인을 마시면 맛이 떨어진다고 여겼다. 참고로 두 와인의 강도는 비교적 정확하게 맞춘 것들이었다.

이 실험결과를 두고 연구팀은 "와인 자체도 중요하지만, 가격도 주관적인 경험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내렸다.

와인 <사진=pixabay>

2017년 독일 본대학교 연구팀이 실시한 후속 연구에서도 같은 결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연구팀은 높은 가격표가 붙은 와인을 마신 참가자들의 두뇌에서 감정이나 보상,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내측안와전두피질(medial orbitofrontal cortex)의 활동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대학 행동경제학자 베른드 웨버는 "더 높은 가격에 의해 보상 및 동기 부여 시스템이 크게 활성화되고, 이는 미각 경험을 증가시킨다"고 말했다.

다만 최근 바젤대학교 연구팀에 의해 실시된 와인 시음 연구는 기존의 것과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이전 실험들이 플라스틱 튜브를 통해 와인을 시음하게 했던 것과 달리, 일반적인 시음 방법을 택했다.

그 결과, 와인 가격을 일부러 4배 낮추더라도 참가자들은 맛이 떨어진다고 느끼지 않았다. 연구팀은 "참가자들이 와인의 색깔과 냄새까지 고려했기 때문에 가격 정보의 영향을 잠재적으로 낮출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와인은 눈과 코로도 즐긴다. <사진=pixabay>

이 연구 결과와 흡사한 실제 사례도 있다. 2002년 미국 뉴욕시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에서 월스트리트 직원 4명이 2000달러(약 227만원)짜리 '샤토 무통 로칠드'라는 최고급 와인을 주문했다. 자칭 와인 전문가라는 사람이 한 모금 마신 뒤 맛을 칭찬했는데, 사실 이 와인은 18달러(약 2만원)짜리 '피노 누아르'였다. 나중에 레스토랑 주인이 사실을 털어놓고 사과하자 자칭 와인 전문가는 "내 그럴줄 알았다"며 멋쩍게 웃었다.

반면 18달러짜리 와인을 주문한 근처 테이블의 젊은 부부는 기대하던 것보다 훨씬 맛있다며 무척 즐거워했다. 그 테이블에는 2000달러짜리 진짜 샤토 무통 로칠드가 제공됐지만, 주인은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레스토랑 주인은 지난해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일화를 소개하며 "그날 밤 두 테이블 모두 즐거워했지만, 젊은 부부 쪽이 더 행복해하는 것 같았다"며 "때로는 진실을 모를 때 인생이 더 달콤하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최근 '음식 퀄리티와 선호도(Food Quality and Preference)'라는 저널에 소개됐다.

채유진 기자 eugene@sputnik.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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