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차전지 설비업체 디에이테크놀로지가 무상감자 직후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유상증자를 단행했다. 거래정지 상태에서 액면가 기준으로 신주를 발행하며 새 주인을 맞이했다. 상법상 주주 통지 기한 위반 여부와 전직 경영진의 사법 리스크가 맞물리는 가운데 적정성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2차전지 설비 국산화…라임 사태에 '휘청'
11일 금융감독원 전자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디에이테크는 최근 27억원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 납입 절차를 완료했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는 ㈜오하(6.34%)에서 정찬수 씨(21.14%)로 변경됐다. 이와 함께 ㈜머스트테크와 ㈜다우에프에이도 각각 10억원, 5억원을 투자해 지분 17.62%, 8.81%를 확보했다. 신주에는 상장 예정일인 오는 21일부터 1년간 보호예수 조건이 설정됐다.
정 씨는 12억원을 투자해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했다. 그는 ㈜창성, ㈜가나판금에서 사내이사를 지냈다.
이번 거래는 상장폐지 위기에 놓인 디에이테크의 경영 정상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온다. 회사는 지난해 12월 코스닥시장위원회로부터 상장폐지 결정을 받았지만, 이후 제기한 상장폐지결정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인용되면서 현재 정리매매 등 후속 절차는 보류된 상태다.
디에이테크는 국내 2차전지 장비 산업 초기부터 성장해온 업체다. 1996년 개인사업자 '대성 FA System'으로 출발해 2000년 법인 전환 후 2003년 현재의 디에이테크놀로지로 사명을 변경했다. 국내 최초로 각형 리튬이온전지 조립장비를 개발하며 이차전지 조립공정 핵심 설비인 노칭·커팅·스태킹 장비 등을 국산화했다.
특히 고속 노칭공정 설비 분야에서 하드웨어·소프트웨어 특허를 확보하며 기술력을 인정받았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외 특허 등록 건수는 61건에 달한다.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업체뿐 아니라 글로벌 완성차·배터리 기업들과의 협력 경험도 보유하고 있다.
기술 경쟁력을 바탕으로 회사는 2014년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이후 중국 법인 설립, 생산설비 확장, 수출 확대 등을 통해 외형 성장을 이어갔다. 2018년에는 '이차전지 제조장비 벤처 1000억 기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라임자산운용 사태와 맞물려 성장세가 급격히 꺾였다. 2018년 디에이테크 최대주주에 오른 에이팸(옛 에스모) 배후에 라임자산운용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검찰은 라임 사태 핵심 인물인 이인광 에스모 회장이 라임 자금 1300억원을 동원해 디에이테크 등 코스닥 상장사를 연이어 인수한 뒤 주가조작을 벌인 것으로 판단했다. 이후 디에이테크 전 대표 이 모 씨가 이 회장의 해외 도피를 돕고 회사 자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4부는 올해 1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및 범인도피 혐의로 기소된 이 전 대표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배임·횡령 규모가 310억원대에 이르고 회사 재정 악화와 상장폐지 위기를 초래했다고 판단했다.
라임 사태 이후 주요 거래처 이탈과 실적 악화도 이어졌다.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이 발주를 중단한 것으로 전해진다. 회사는 2020년 137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하며 적자로 전환했다. 이후 적자가 지속되며 2023년 영업손실은 420억원까지 확대됐다.
결국 회사는 2024년 5월 수원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이후 삼일회계법인을 매각주관사로 선정해 스토킹호스 방식의 인수합병(M&A)을 추진했지만, 원매자를 찾지 못하며 회생절차는 지난해 11월 폐지됐다.
재무구조도 악화됐다. 회사의 지난해 말 연결 기준 자본총계는 -107억원으로 완전 자본잠식 상태다. 당기순손실은 86억원을 기록했다. 전직 임원 횡령 혐의와 계속기업 존속능력 불확실성 등으로 외부감사인으로부터 감사의견 '의견거절'을 받았다.
액면가 증자 속 상법 위반 논란
디에이테크는 결손금 보전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을 목적으로 보통주 30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감자를 완료했다. 감자 이후 발행주식 총수는 1억7854만주에서 595만주로 감소했다.
회사는 감자 완료 이틀 뒤인 지난달 29일 운영자금 조달을 위해 540만주 규모의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 발행가액은 액면가인 500원으로 책정됐다. 이는 지난해 12월 거래정지 직전 종가인 6090원 대비 91.7% 낮은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유증의 절차적 적정성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상법 제418조 제4항은 제3자배정 방식으로 신주를 발행할 경우 납입기일 2주 전까지 주요 사항을 공고하거나 주주에게 통지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디에이테크의 경우 유증 결정 공시일부터 주금 납입일까지 기간이 8일에 그쳤다. 이에 법정 기한을 충족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된다. 주주들의 신주발행금지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방어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유증을 결의한 이사회에는 사내이사 4명만 참석했다. 사외이사 2명과 감사는 모두 불참했다. 이를 두고 주요 자본거래 결정 과정에서 내부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다만 회사 측은 거래정지 상태에서 시장가격 산정이 어려운 만큼, 외부평가기관인 삼덕회계법인을 통해 주식가치를 평가받았다는 입장이다. 평가 결과 현금흐름할인법(DCF) 기준 1주당 가치는 443원으로 산정됐고, 이를 토대로 액면가인 500원에 발행가를 결정했다는 설명이다.
시장에서는 이번 유상증자가 경영정상화를 위한 자금 수혈이 될지, 향후 절차적 하자를 둘러싼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블로터>는 디에이테크놀로지에 이번 유증 추진 배경, 투자자 선정 경위, 절차 논란에 대한 입장 반영을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이 이뤄지지 않았다.
최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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