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모양처로 유명한 신사임당이 순종적인 아내는 아닌 이유
현모라는 것은 언제가부터인지 순종적인 아내로 그려지는데 사실 신사임당은 순종적인 아내는 아니었다.
사실 신사임당은 집에만 얌전히 살림하는 여자는 아니었다. 대외활동도 자주하고 당대 명사인 남자들과도 교류한 인사다.
또한, 칠거지악으로 금지하는 투기를 하기도 하였는데 꽥꽥 소리 지르는 것이 아니라 논리로 남편을 눌렀다.
남편 이원수는 과거 급제를 못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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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임당: "제가 죽은 뒤에 당신은 다시 장가들지 마십시오. 우리가 7남매(4남 3녀)나 두었으니까 더 구할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예기>의 교훈을 어기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원수: "공자가 아내를 내보낸 것은 무슨 예법이오?"
사임당: "공자가 노나라 소공 때에 난리를 만나 제나라 이계라는 곳으로 피난을 갔는데, 그 부인이 따라가지 않고 바로 송나라로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자가 그 부인과 동거하지 않았다 뿐이지, 아주 나타나게 내쫓았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원수: "증자가 부인을 내쫓은 것은 무슨 까닭이오?"
사임당: "증자의 부친이 찐 배를 좋아했는데, 그 부인이 배를 잘못 쪄서 부모 공양하는 도리에 어김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증자도 한 번 혼인한 예의를 존중해서, 새장가를 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이원수: "주자의 집안 예법에는 이 같은 일이 없소?"
사임당: "주자가 47살 때에 부인 유씨가 죽고, 맏아들 숙은 아직 장가들지 않아 살림을 할 사람이 없었지만, 주자는 다시 장가들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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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남편 이원수는 신사임당이 죽자마자 바로 주막집 딸 데려다가 ....... 아니 죽기 전부터 이미 밖에서...)
신사임당의 집안이 훨씬 부자였던데다가 당시에 양반가는 집안 여자가 재산 관리와 생산 활동을 했고 신사임당이 받은
재산 또한 사위와 자녀들에게 갔다.
조선시대에도 신사임당이 현모양처로 전해내려오는 걸 보면 현모양처라는게 마냥 순종적인 아내라고 여겨지진 않은 것 같다.
나는 한량 백수인데.... 마누라가 훨씬 부자인데.... 재산관리하면서 돈도 불려주고 밖에서 두 집 살림 하는 것도 봐주는데다가
당대 명사들이랑 말 통할 정도로 교양이 있어서 자식 조기 교육도 잘 시켜서 천재도 만들고... 게다가 나보다 먼저 죽어서 장인어른에게 받은 재산이 나에게 온다?
당대 사람들도 이정도 여자면 순종적이지 않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한 게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