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세계그룹의 손정현 전 스타벅스코리아(SCK컴퍼니) 대표 해임은 이례적으로 빨랐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당일에 터진 '탱크데이' 마케팅에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하루를 넘기지 않고 최고경영진을 교체했다. 이튿날에는 정 회장 본인 명의의 사과문까지 발표했다. 과거 정 회장 본인의 '멸공' 발언 전력과 이번 사고가 겹치며 그룹 전체의 도덕성 논란으로 번질 경우 4조원대를 걸고 공들여온 광주 사업 전반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위기 수습을 위해 투입된 손 전 대표가 3년여간 수익성 개선에 실패하면서 해임을 앞당겼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19일 업계에 다르면 스타벅스코리아는 이달 18일 오전10시 자사 앱에서 텀블러 할인행사를 시작했다. '단테·탱크·나수데이'라는 행사에서 탱크 시리즈 제품을 판매하는 날짜를 5월18일로 지정하며 탱크데이라고 명명했다. 홍보물에는 '책상에 탁!'이라는 문구도 들어갔다. 5·18 당시 계엄군 탱크 진입, 1987년 박종철 열사 고문치사 사건 때의 경찰 발표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표현으로 논란은 빠르게 번졌다. 손 전 대표 명의의 사과문이 두 차례 나왔지만 여론은 가라앉지 않았다. 신세계그룹은 당일 저녁 손 전 대표를 즉시 해임하고 행사 기획·주관 담당 임원도 함께 해고하기로 결정했다.
'멸공' 전력에 '탱크데이' 겹쳤다
2022년 정 회장은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멸공' 해시태그를 단 게시물을 올려 이마트·스타벅스 불매운동을 촉발했다. 이 사고로 정 회장의 이 같은 전력이 온라인에서 빠르게 재소환되며 단순한 마케팅 검수 실패를 넘어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 문제로 프레임이 이동할 가능성이 커졌다. 신세계그룹은 "정 회장은 특히 이번 사고가 5·18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기념일에 일어난 데 대해 격노했다"고 밝혔다.
신세계그룹이 호남 지역 사업에 특히 공을 들여왔다는 점도 빠른 대응의 배경으로 꼽힌다. 정 회장이 직접 관할하는 이마트의 완전자회사 신세계프라퍼티는 광주 어등산 부지에 '그랜드 스타필드 광주'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총투자비 1조3403억원 규모로 2030년 1차 오픈이 목표다.
여기에 신세계는 올 2월 광주시와 광천터미널 복합화 사업인 '더 그레이트 광주'에 총 3조원 규모의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지난해 매출 8191억원으로 호남권에서 입지를 다진 광주신세계백화점의 리뉴얼이 포함된 대형 프로젝트다. 현대백화점이 광주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호남 상권을 둘러싼 경쟁은 시작되기 전부터 치열하다. 5·18 논란으로 광주·전남 소비자의 여론이 돌아서면 4조원대에 달하는 투자의 전제가 흔들릴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소비재 기업인 만큼 호남의 민심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기수습 명목으로 왔지만…수익성도 못 지켰다
손 전 대표의 퇴장을 앞당긴 또 다른 배경은 경영성과다. SCK컴퍼니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1730억원으로 전년(1908억원) 대비 약 9.3% 줄었다. 영업이익률도 6.2%에서 5.3%로 내려앉았다. 올해 1분기에도 영업이익은 293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58억원 감소했다. 환율 상승과 원두가 부담으로 실적이 하락했다. 위기수습이라는 취임 명분은 사라지고 수익성까지 후퇴하는 흐름에서 또 다른 대형사고가 터진 셈이다.
정 회장은 19일 본인 명의의 사과문을 추가로 냈다. 그는 '이번 사안에 대한 모든 책임이 저에게 있음을 통감한다'며 '그룹 전체의 역사인식과 감수성이 부족했다는 사실을 무겁게 받아들인다'고 밝혔다. 발생 경위와 승인절차에 대한 조사 결과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전 계열사의 마케팅 검수 과정을 전면 재점검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대표 해임이라는 즉각적인 조치를 넘어 그룹의 의사결정 시스템 전반을 도마 위에 올린 셈이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사안이 엄중한 만큼 정 회장이 책임을 통감해 직접 사과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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