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직도 있네? 민들레 영토, 들어는 보았는가[쩝쩝박사]
서울 동대문구에 남아 있는 가게 한 곳 방문
"이별 이벤트한 손님, 편지 주고 간 여학생 모두 기억나"
우리 주변의 궁금한 먹거리, 솔직한 리뷰를 원한다면? ‘쩝쩝박사’가 대신 먹어드립니다. 세상의 모든 맛집을 찾아서. [편집자주]

그곳의 이름은 ‘민들레 영토’다. 줄여서 민토. 1994년 서울 신촌 연세대 ‘어머니점’이라 불리는 1호점을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 터를 잡으면서 2000년대 중반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종합문화공간이다. 창업자인 지승룡 대표는 카페에서 책을 읽다 30분 만에 쫓겨난 경험을 바탕으로 눈치 보지 않고 오래 앉아 있어도 되는 공간을 만들고자 민들레 영토를 생각해 냈다.

하지만 위기는 서서히 찾아왔다. 1997년 이화여자대 앞에 처음으로 들어선 스타벅스를 시작으로 국내에도 다양한 커피 전문 프랜차이즈가 생기면서 카페에 머무는 동안 일정 시간을 보장하는 민들레 영토만의 독자적인 강점이 더는 빛을 보지 못했다.

기자는 지난 10월 8일 자 기사(‘ㄱㅣ억ㄴr 니…? 그 시절 우리들의 캔모ㅇr’ 편)의 댓글을 보던 중 눈에 띄는 글을 발견했다. 해당 글에는 민들레 영토는 어찌 됐는지 궁금하다는 내용이 담겼고 많은 이들의 공감을 받았다.

글에는 ‘이곳은 도시 속 작은 문화공간으로 저렴한 가격의 음료와 식사를 나누면서 대화, 독서, 음악감상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세미나실, 영상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심리치료 및 휴먼 이벤트 등을 통해 신(新)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열린 문화터입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음료는 기본 음료(아메리카노와 각종 차, 탄산음료, 에이드 등)에 한해 무제한으로 리필이 가능하다. 민토 간식은 해쉬브라운 포테이토, 소시지구이, 토스트, 미니 와플, 컵라면 중 한 가지를 선택하면 된다. 단 컵라면은 500원의 추가 금액이 발생한다.

2층에 자리를 잡고 가게를 둘러보니 곳곳에 손님들의 낙서가 보였다. 그중 눈에 띄었던 것은 사진으로 남아 있는 2008년도 낙서였다. 내용에는 ‘입학 축하해 너의 꿈을 이루어봐 이루어진다!’ ‘너무 먼 당신 보고 싶습니다’ ‘시험이 끝났는데 왜 기분이 안 좋지?’ 등이 담겼다.


곁들여 먹은 치즈 오븐 떡볶이는 마치 경양식당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떡볶이 위에 올라간 치즈는 부드럽게 늘어났고 오동통한 떡은 쫄깃했다. 치즈와 떡을 함께 맛보니 묵직하고 다채로웠다. 맵지 않았고 적당히 입맛을 당기는 단맛이었다.

이곳은 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가게다. 중년의 여성 사장은 가게 문을 연 지 20년 정도 됐다며 단골 대학생 손님들은 벌써 마흔이 넘었고, 10년 전에 일하던 남녀 아르바이트생은 서로 눈이 맞아 결혼해 한가족이 됐다고 회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어떤 여학생으로부터 한 통의 편지를 받은 때였다. 사장은 “하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내내 한자리에 앉아 있던 여학생이 있었다. 당시엔 3시간의 시간제한이 있었는데 골똘히 홀로 생각에 잠겨 있는 학생을 차마 내쫓을 수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당시 편지를 읽는데 마음이 애잔했다며 비슷한 일화로 한 남성 손님이 가게 2층을 빌렸던 사연도 전했다. 그는 “어느 날 남성 손님이 찾아와 2층을 잠시 대관하고 싶다고 했다”라며 “처음엔 정중히 거절했지만 연인과 이별하기 위해 빌리고 싶다고 간곡하게 부탁하기에 허락했다”라고 말했다. 사장은 “그렇게 남성 손님은 2층에서 ‘이별 이벤트’를 꾸몄다”라며 “연인을 데려와 그간 자신의 잘못들과 미안함을 고한 뒤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더라”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요즘 근황에 대해선 “코로나19 이후 손님이 많이 줄었으나 잊지 않고 찾아주는 손님이 꾸준히 있어 소소하게 가게 문을 열고 있다”라고 밝혔다. 방문하는 손님 연령층은 다양하지만, 주로 자주 오는 이들은 20대에서 30대가 많다고 했다.

그는 “이제 민들레 영토는 나에게 있어 삶의 전부”라며 “20년을 어떻게 했나 싶은데 돌이켜보니 시간이 참 빠르게 지나간 것 같다. 여전히 한 곳에서 일할 수 있어 감사하고 기쁘다”라고 말했다.

송혜수 (ssong@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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