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좌파가 본 ‘나 뉴라이트 아니다’라는 이들 [프리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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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기자에게 추석은 이어서 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후반전 접어들자 생면부지의 옆 사람과 악수하거나 심지어 부둥켜안고 겅중겅중 뛰는 나를 발견했다.
얼치기 좌파였던 나에겐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상당수가 전직 좌파다)이 지난 몇 년 동안 벌여온 행태들이 별로 낯설지 않다.
그러나 뉴라이트들도 민족주의를 이길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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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지 기자에게 추석은 이어서 쉴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빈둥거리다 지쳐 어지러운 방을 정리하던 중 20여 년 전의 책들을 뒤적이게 되었다. 당시 겪은 황당한 일이 떠올랐다.
한국과 일본이 공동 개최한 2002 월드컵 때였다. 밤마다 거리는 ‘대~한민국 짝짝짝 짝짝’을 외치고 다니는 빨간 셔츠들로 달아올랐다. 자신을 이른바 ‘좌파’로 규정했던 나에겐 달가운 분위기가 아니었다. 스포츠로 개인과 ‘피착취 계급’의 저항 의식을 마비시키는 민족(국가)주의의 미친 작동으로만 보였다. 문제는 밤늦게 마감하고 후배 기자와 함께 들어간 주점에서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대형 TV로 한국 대 이탈리아 경기를 보며 열광적인 응원전을 펼치고 있었다. 당초엔 그야말로 혼신을 다해 술에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어느새 TV를 힐끔힐끔 곁눈질하고 있었다. 후반전 접어들자 생면부지의 옆 사람과 악수하거나 심지어 부둥켜안고 겅중겅중 뛰는 나를 발견했다. 연장전에서 한국 팀이 극적인 역전골을 꽂아 넣자 ‘눈물을 흘렸다’라면 너무 점잖은 표현이고, 흐느끼고 말았다. 취한 상태도 아니었다.
제정신이 든 뒤 찾아온 것은 엄청난 위화감이었다. 자칭 ‘좌파’란 자가 집단주의 이데올로기에 이토록 쉽게 무릎을 꿇어도 되나? 나름 고민한 끝에 그냥 손을 들기로 했다. 민족주의는 한국인 각각의 의식 속으로 침투한 이물질이라기보다 정체성의 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리칠 수 없다면 적절히 수용하고 타협하며 다스리는 길밖에 없다.
얼치기 좌파였던 나에겐 뉴라이트라는 사람들(상당수가 전직 좌파다)이 지난 몇 년 동안 벌여온 행태들이 별로 낯설지 않다. ‘개인’이라는 범주 및 자본주의 발전이란 기준만으로 역사를 본다면, 일제강점기를 진보의 시대로 여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아가 일제의 미곡 수탈, 위안부, 징용공 등을 상업적 거래라고 우길 수도 있겠다. 그러나 뉴라이트들도 민족주의를 이길 수는 없다. 그들 역시 이미 짙은 패색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니까 청문회에서 ‘나는 뉴라이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겠지.
이종태 기자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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