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아이언맨 팔 만들었던 로봇 천재의 근황

태양광 발전소를 스마트하게 관리하는 솔루션
‘커널로그 패치’ 개발기
창업 기업은 한 번쯤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등 큰 시행착오를 겪는 ‘데스밸리(죽음의 계곡)’를 지납니다. 이 시기를 견디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기술력, 서비스를 갖고 있다고 해도 생존하기 어려운데요. 잘 알려지기만 하면 시장에게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중소기업이 죽음의 계곡에 빠지게 둘 순 없습니다. 이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도록 응원합니다.
커널로그의 오복성 대표. /더비비드

“사람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만드는 게 엔지니어링의 꽃이라고 생각하는 공학도입니다.”

6년 전 영화 <아이언맨>같은 '입는 로봇 팔'을 만들어 다수의 미디어에서 관심을 받은 청년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각종 로봇 대회를 휩쓸고 다녔던 청년이 엔지니어의 로망과 전문지식을 총합해 개발한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대중의 호기심이 회사의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엔지니어링은 무엇인가’ 자문했다. 호기심에 그치는 게 아니라 삶을 이로운 방향으로 이끌어주는 것이 엔지니어링의 본질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스타트업 커널로그의 오복성(30)대표 얘기다. 한때 로봇 팔 사나이였던 그가 태양광 발전소에 상주하게 된 사연을 들었다. ​

◇수만개의 태양광 패널 중 고장 난 하나 찾아드려요

마이크로 컨버터를 부착하는 모습. /커널로그

태양광 발전소의 기대 수명은 15년이 넘는다. 하지만 준공 후 7년이 채 지나기 전에 발전량이 80% 이하로 떨어지는 일이 부지기수다. 제대로 관리되지 못해 방치된 발전소도 많다.

원인 소명이 쉽지 않다. 태양광 패널은 10개 이상의 패널이 직렬로 연결되어 있어, 하나의 패널에만 문제가 생겨도 패널 전체의 효율이 떨어진다. 자동차 타이어 4개의 수명의 모두 같지 않듯이, 패널별로 수명이 저하되는 속도가 다르다. 이 과정에서 발전 편차가 발생하는데, 편차로 인한 손실이 크다.

스타트업 커널로그는 태양광 발전소 유지보수(O&M) 솔루션 운영사다. 커널로그는 기존 태양광 발전소 시장의 문제에 착안해 패널별로 부착하는 마이크로 컨버터를 개발했다. 문제가 생긴 패널의 전압을 변환해 손실을 개선하는 디바이스다. 기존 발전소에서 별도의 시설 변경 없이 바로 도입 가능하며 모든 타입의 패널에 적용할 수 있다.

커널로그 패치 솔루션 이미지. 각 패널의 상태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커널로그

마이크로 컨버터의 또 다른 역할은 데이터 수집이다. 패널별 오염도, 음영, 손상, 열화 및 노후화, 기자재 효율 등의 데이터를 수집한다. 수집한 데이터는 디지털 솔루션 ‘커널로그 패치’(PATCH)를 통해서 관리할 수 있다. 시중의 패널 관리 솔루션은 발전소 전체의 발전량만 보여줄 뿐, 개별 패널에 생긴 문제는 포착하지 못했다. 문제되는 부분을 찾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모되는데, 패널 단위로 데이터를 관리하면 보다 저렴한 가격에 실시간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다.

패치 솔루션은 기능과 가격별로 총 3종류가 있다. D 모델은 모니터링 서비스 중심의 상품으로 가장 저렴하다. S와 M모델로 갈수록 부가 기능이 많아지고 단가가 오르는 구조인데, S 모델 사용 시 위험 요소를 자동으로 차단하거나 원격으로 막을 수 있다. 최고가 모델인 M모델은 앞서 소개한 모든 기능에 실시간 자동 편차 개선 기능을 더한 버전이다. 관련 기술로 총 4건의 특허를 등록했다.

◇로봇과 사랑에 빠졌던 학창시절

필리핀 마닐라 로봇 올림피아드 출전 당시의 모습. /오복성 대표 제공

오 대표는 로봇과 사랑에 빠진 채 학창시절을 보냈다. 각종 로봇 대회를 섭렵했다. 작은 대회에서 출발해 시 대회, 전국구 대회를 넘어 세계 대회까지 진출했다. 고등학생이었던 2010년,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렸던 로봇 대회가 끝난 후 허무함에 시달렸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한 줌 재로 남은 걸 본 것 같은 공허함이 찾아온 것이다. 그때 로봇을 업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 로봇에 꽂힌 이유가 궁금합니다.

“중학교 로봇동아리 1기 출신입니다. 배경 지식이 있었던 건 아니고요. 은사님이 새로운 동아리를 만들어보자고 제안하신 게 로봇 동아리였습니다. 활동하다 보니 푹 빠졌습니다. 로봇에 대한 열의는 고등학교까지 이어졌어요. 친구들이 수능 공부를 할 때 로봇 대회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재미있었어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시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흥미로웠고요. 제 로봇이 훌륭한 성적으로 미션을 달성할 때면 큰 성취감을 느꼈습니다.”

2012년 퍼스트 테크 챌린지 출전 당시 모습. /오복성 대표 제공

- 그럼 로봇을 전공했겠네요.

“아주대 기계공학과에 진학했습니다. 엔지니어였던 아버지의 길을 따랐죠. 순수 기계공학도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그보다는 전기나 컴퓨터공학을 결합한 융복합 프로젝트를 많이 했습니다. 고등학생 때와 마찬가지로 비주류의 걸었어요. 동기들이 대기업 엔지니어를 준비할 때 저는 로봇대회에 나가거나 대외활동을 했습니다.”

- 대외활동이야 말로 최고의 스펙 쌓기 활동 아닌가요.

“의도한 건 아닌데 결과적으론 그럴 수도 있겠네요. 로봇대회와 대외활동을 부지런히 다닌 덕에 훌륭한 네트워크를 쌓을 수 있었어요. 2012년에 삼성전자가 올림피아드 같은 큰 대회 수상자들을 한데 모아서 육성하는 프로젝트에 선정됐습니다. 덕분에 물리, 천체, 생물 등 각 분야에서 날고 기는 친구들과 연을 맺을 수 있었죠. 이곳에서 공동창업자 김은서 대표와 커널로그 팀원들을 만났습니다.”

◇로봇 천재들이 눈을 돌린 뜻밖의 시장

오 대표가 개인적으로 개발한 로봇 팔. /오복성 대표 제공

2016년 첫 창업을 했다. 로봇을 업으로 삼겠다는 다짐을 살려, 영화 <아이언맨>의 수트처럼 입는 로봇 팔을 개발했다. 전문 용어로 ‘동력형 외골격’으로 VR(가상 현실) 시장이 타깃이었다. 엔지니어로서의 로망을 실현하고자 한 일인데 성과는 기대 이하였다.

- 패인이 무엇이었던 것 같나요

“그때는 제가 만들고 싶었던 걸 소비자에게 찔러 넣는 방식으로 비즈니스를 했어요. 통할 리 없었죠. 직접 경험해보니 엔지니어링과 사업은 다르거든요. 이 일을 기점으로 생각을 전환했어요. 내가 좋아하는 아이템을 모두에게 파는 것 대신 모두에게 해당되는 분야에서 인사이트를 주는 사업을 하는 게 맞다고 판단했죠.”

(왼쪽부터) 자신이 개발한 로봇 팔을 착용한 오 대표, VR 시장을 타깃으로 개발했던 로봇 팔 건틀렛. /오복성 대표 제

- 그래서요.

“원점으로 돌아가서 아이템을 찾아 나섰어요. 팀의 정체성에 어울리면서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아이템을 탐색했습니다. 저희 팀을 아우르는 테마는 ‘융복합’입니다. 한 분야에 천착하지 않고 전기, 컴퓨터공학, 기계공학 여러 분야를 두루 아우르는데 강한 팀이죠. 개인적으로 인류의 생존을 위해 혁신이 꼭 일어나야 하는 분야로 에너지, 운송, 식품(푸드테크)를 꼽는데요. 이 중 에너지 분야가 가장 융복합 테마와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 에너지도 분야가 다양하지 않나요.

“원자력, 풍력, 화력 발전소처럼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발전소 산업은 개인이 접근할 수 있는 규모의 시장이 아닙니다. 전문가들만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죠. 반면 소위 ‘분산 에너지’라고 불리는 태양광 에너지가 확산하면서 개인도 발전소를 운영하는 시대가 도래했습니다. 태양광 에너지는 후발주자인데 반해 관련 서비스가 운영되는 방식은 원시적이었습니다. 정보통신 기술이 발달한 현재와 동떨어져 있었죠. 저희 팀이 로봇을 개발하면서 연마한 센서, 모터, 제어기 관련 기술을 태양광 에너지에 접목하면 혁신을 일으킬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들었습니다.”

◇하드웨어 대신 유지보수에 집중한 이유

오 대표는 2022년 커널로그에 합류했다. /더비비드

2022년 7월, 공동창업자로 커널로그에 합류했다. 커널로그는 태양광 발전소 O&M 솔루션 개발사다. 하드웨어와 관리 소프트웨어 두 축으로 이루어진 솔루션이다. 사실 하드웨어만 놓고 봤을 땐 아주 새로운 유형의 제품은 아니다. 이미 솔라엣지, 엔페이즈에너지 등 유명 마이크로인버터 생산기업이 글로벌 시장을 점령하고 있다. 커널로그가 차별점을 두기로 한 건 패널에 부착하는 기기가 아니라 소프트웨어다. 패널에서 수집한 데이터를 토대로 디지털 유지보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 유지보수에 초점 맞춘 이유는 뭔가요.

“태양광 에너지 시장은 긴 관점으로 봐야 합니다. 시공 못지 않게 관리가 중요하죠. 그래서 저희는 하드웨어 제조사가 아니라 태양광 패널 유지보수 기업이라고 스스로 규정합니다. 궁극적으로는 데이터 비즈니스 기업이 될 생각이에요. 기자재별 전력 효율, 화재 위험성 등 마이크로 컨버터로 수집한 정보를 잘 가공하기만 해도 유용한 정보가 되거든요. 발전주, 보험사, 시공사 모두가 필요로 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죠.”

(왼쪽부터) 패치로 패널별 음영 상태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패널을 수리하고 있는 모습. /커널로그

-  디지털 유지보수가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기존의 관리 시장은 사후 처리의 성향이 짙었어요. 관리 비용의 대부분이 인건비라 비쌌고,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서 해결책을 제시했기에 한계점이 분명했습니다. 예컨대, 낙뢰 때문에 고장이 났는데 원인을 소명하지 못해 패널 전체를 교체한 경우도 있습니다. 최악의 경우죠. 저희 솔루션을 이용하면 빠른 시간안에 문제의 원인을 밝힐 수 있습니다. 원인만 해결하면 되니까 비용도 아낄 수 있죠. 선제적으로 관리를 하면 유지관리비는 50% 아끼고, 패널의 수명은 5~15%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 좋은 취지인 건 알겠는데 이걸 돈 들여가며 쓸까요.

“노후화 문제를 아직 겪지 않은 분들은 유지보수의 중요성을 잘 모릅니다. 이런 분들보다는 문제를 겪어본 발전소와 신규 설치 발전소를 타깃으로 삼기로 했습니다. 신차 구매 시 옵션을 선택하는 것과 비슷한 심리가 작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사람들은 이미 출고된 차에 옵션을 추가하는 것엔 보수적인 태도를 보이지만, 신차를 살 때는 어차피 대출 내는 거 몇 푼 더 보태서 풀옵션을 택하잖아요.”

마이크로 컨버터를 설치하는 모습. /커널로그

- 그럼 발전소를 대상으로 영업을 다닌 건가요.

“저희의 타깃은 태양광 설비 시공사입니다. 시공사를 통해 제품을 설치한 후 발전소를 대상으로 유지보수해주는 방식이 가장 보편적이죠. 처음엔 발전주 대상의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는데요. 설치 의사를 밝히는 곳이 거의 없었어요. 설치해야 성과를 검증할 수 있는데, 사례가 적어 투자자들에게 내세울만한 성과가 없었죠. 회사 문을 닫을 뻔할 정도로 힘든 시기를 보내야 했습니다. 관점을 바꿔서 시공사를 공략하기로 했습니다. 시공사들이 영업을 할 때 ‘우리가 설치해주는 패널엔 이런 게 있어요’에서 ‘이런 걸’ 맡기로 한 거죠. 시공사들의 수요에 맞춰 서비스를 개편했습니다. 상품을 3단계로 나눈 것도 시공사들의 입장을 고려한 판단이었어요.”

◇한국 시장은 190개국 중 한 군데에 불과해요

디캠프 디데이 출전 당시 오 대표. /더비비드

지금까지 수자원공사 산하의 발전소, 서울시에서 관리하는 발전소 등 총 15곳에 솔루션을 도입했다. 현재 국내 유수 태양광 설비 시공업체와 계약을 앞두고 있다. 계약이 성사되면 솔루션을 도입하는 발전소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아이디어의 참신함과 필요성도 인정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의 연구개발과제를 수행했고 카카오벤처스, 신한캐피탈, 스프링캠프 등으로부터 시드투자를 유치했다. 지금까지 누적 투자금은 5억원이다. 환경부 창업스타, 케이스타트업(K-startup) 왕중왕전 등 다수의 경진대회에서 수상한데 이어 지난 9월 은행권청년창업재단(디캠프)의 창업경진대회 디데이 본선에 진출했다.

- 앞으로의 목표는요.

“내년에 국내 시장에서 100MW만큼은 차지하고 싶어요. 그 다음 해에는 해외에 진출하려 합니다. 레퍼런스를 토대로 각 국가의 EPC 시공사를 확보할 계획입니다. 글로벌 태양광 시장은 어마어마하게 큽니다. 우리나라는 190개 국가 중 하나에 불과하죠. 얼마전에 모로코의 기업과 미팅을 했는데요. 모로코에서는 기업 하나가 우리나라 전체 기업이 설치하는 물량을 소화한다고 합니다. 모로코에서 단 하나의 거래처만 확보해도 우리나라 전체 물량만큼의 매출을 벌 수 있다는 소리죠. 해외기업 대비 가격경쟁력이 있고 서비스 제공의 폭도 넓으니 가능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오 대표는 로봇에 대한 자신만의 확고한 철학이 있다. /더비비드

- 지금 하는 일이 로봇과 관련이 없어 아쉽지 않나요.

“커널로그 팀원들은 센서와 제어기를 갖춘 것들은 모두 로봇이라고 생각합니다. 자동문도, 자율주행 자동차도 이 관점에서는 로봇이죠. 패치엔 로봇에 적용되는 핵심 기술이 모두 녹아 있습니다. 다만 태양광 에너지 시장의 특성에 맞게 형식만 달리했을 뿐이죠. 넓은 관점으로 보면 제가 하는 일이 로봇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물론 저와 다른 의견도 환영합니다. 아마 로봇 엔지니어들은 이 주제로 밤새 논쟁할 거예요.”​

/진은혜 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