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료방송 산업이 공적 책임 중심의 규제 정책에서 벗어나 산업 경쟁력 강화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규제 중심에서 진흥 중심으로 정책 전환 의지를 내놨다.
박성순 배재대학교 교수는 이달 12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유료방송시장 위기 심화에 따른 규제 개선 및 진흥방안' 토론회에서 "미디어 시장은 규제 중심에서 시장, 산업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며 "지상파, 유료방송,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로 구분하는 게 아니라 계층화, 다변화하는 정책 환경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는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주최하고 한국방송학회가 주관했다.
"OTT는 자유사업, 유료방송만 옥죄는 불공정 경쟁"

박 교수는 현재 유료방송 위기의 근본 원인으로 과도한 공적 책임 부담을 지목했다. 그는 "이용자들은 공적인 것을 찾지 않는다"며 "(공적 책임이)직접적으로 이용자들에게 전달되는지를 생각해 봐야 한다"며 현실 인식 전환을 촉구했다.
특히 OTT와 유료방송 간 규제 격차 문제가 집중 제기됐다. 손지환 KT스카이라이프 팀장은 "OTT는 부가통신사업자로 자유롭게 사업하는데 유료방송사업자는 7년 단위 재허가로 사업환경 변화에 유연한 대응이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용약관과 요금 규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유료방송은 상품 구성부터 요금 책정까지 일일이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OTT는 자유자재로 사업할 수 있다. 광고 규제 역시 마찬가지다. 조제분유·패스트푸드·주류 등 시대착오적 광고 규제가 여전히 유료방송에만 적용되고 있다.
한상혁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실장은 "네거티브 규제로 전환하지 않는 이상 이용자, 요금, 채널사용사업자(PP)와의 협의 등 다른 항목에 막힌다"며 근본적 제도 전환을 요구했다.
방송통신발전기금도 문제다. 케이블TV 업계는 2024년 기준 전체 영업이익이 148억원인데 기금 부과액은 250억원으로 버는 돈보다 내는 금액이 더 많다. 적자를 내도 매출액 기준으로 기금을 내야 하는 불합리한 구조다. 지상파·종편·홈쇼핑은 영업손실에 따른 감면 제도가 있지만 케이블TV는 감면 혜택이 없다.
인터넷(IP)TV 업계도 목소리를 냈다. 이희승 한국IPTV방송협회 국장은 직사채널(방송사가 외주를 주지 않고 직접 콘텐츠를 제작해 송출하는 채널) 운영 허용, 약관 변경 절차 간소화 등을 요구했다. 이 국장은 "케이블이나 위성과 달리 IPTV는 직사채널 운영이 불가능한데 이용자들의 실시간 채널 시청 패턴이 우세해 새로운 서비스를 하고 싶어도 직사채널은 불가능하다"며 "케이블이나 위성처럼 IPTV도 직사채널을 열어달라"고 요구했다.
홈쇼핑 업계도 절박하다. 이날 토론회에는 서우람 한국데이터홈쇼핑협회 실장이 참석했다. 서 실장은 "홈쇼핑은 지난 30여년간 규제 완화가 단 한 번도 없었다"며 "규제로 인해 마켓컬리와 쿠팡 등 거대 유통강자에 비해 경쟁력이 매우 약화했다"고 말했다.
유료방송이 OTT와의 경쟁에서 고전하고 있다면 홈쇼핑 업계를 위협하는 존재는 라이브커머스다. 홈쇼핑에 대한 규제 개선이 장기간 멈춘 가운데 라이브커머스의 등장으로 성장이 정체됐다. 특히 데이터홈쇼핑은 실시간 방송이 불가능하고 화면의 절반 이상을 영상이 아닌 상품 정보와 메뉴 같은 데이터로 채워야 한다. 서 실장은 "라이브커머스를 염두에 두고 동일서비스 동일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홈쇼핑 업계의 생존이 유료방송 산업의 존속과 연결되는 이유는 홈쇼핑 송출수수료가 방송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송출 수수료는 홈쇼핑이 채널 송출을 대가로 방송사에 지급하는 요금이다.
유료방송과 홈쇼핑은 그동안 송출수수료를 둘러싼 이견이 컸고 갈등이 빈번했다. 다만 유료방송과 홈쇼핑의 상호 의존적인 관계인 만큼 규제 개선에는 한목소리를 낸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도 이날 보도자료를 통해 "규제 개선이 없다면 홈쇼핑 산업은 경쟁력을 잃고 침체가 계속돼 유료방송시장도 위기에 처할 수 있다"며 "홈쇼핑은 유료방송 생태계에 크게 이바지해 온 만큼, 편성·심의 등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고 제도를 개선해 산업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도 공감... 1400억 투입해 '규제→진흥' 전환

이항재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뉴미디어정책과 과장은 "방송법은 과거 기술을 중심으로 주파수를 쏘는 사업자, 케이블, 위성 등을 중심으로 이뤄져 현 체계와 안맞는 측면이 있다"며 "규제 중심으로 가면 어려운 상황을 더 키울 수 있어 미디어와 콘텐츠에 대한 진흥 중심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과기정통부는 구체적인 지원책도 준비하고 있다. 2026년부터 5년간 1400억원을 방송 연구개발(R&D)에 투입한다는 계획이다. 방송 콘텐츠 제작에 AI를 접목해 비용을 낮추고 생산성을 높이는 기술 혁신을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이진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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