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믿을수록 자체 핵무장 선호…‘뜨아아’ 찾는 한국인의 복잡한 마음
올해 들어 최종현학술원, 아산정책연구원, 통일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자체 핵무장을 선호하는 응답이 60%를 넘었다. 3개 기관 조사에서 자체 핵무장에 대한 선호는 이념, 성별, 나이와 관계없이 절반을 넘는 특징을 보였다. 최근 몇년간 각종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응답이 줄곧 60~70%가량이다.
국내 전문가 62%가 ‘자체 핵무장’ 반대
외교안보 전문가 다수는 자체 핵무장에 부정적이다. 한국국제정치학회가 지난해 3월 국제정치 분야의 전문가 146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 81명(62.3%)이 반대했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한국인이 자체 핵무장을 선호하는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빈약한 질문에 따른 왜곡’ 등으로 여겨 불신한다.
토머스 컨트리맨 전 미 국무부 국제안보‧비확산담당 차관 대행은 지난 7월1일 미국의소리(VOA) 좌담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약 (여론조사) 질문이 ‘당신은 핵무기를 갖고 싶나요’라면, 그건 마치 ‘새 이탈리아 스포츠카를 갖고 싶나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그런데 만약 질문이 ‘당신은 새 이탈리아 스포츠카를 갖고 싶나요. 단, 집을 포기한다면요'이라면 대답은 ‘아니오’일 것이다.” 그는 북한이나 이란처럼 ‘국제 왕따’ 취급을 받더라도 핵무장을 원하느냐고 물어야 제대로 된 여론조사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자체 핵무장 선호 여론을 ‘대중이 뭘 몰라서 핵무장을 원한다’고 무시하기는 어렵다. 박주화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우리 국민의 자체 핵무장 의식은 상호 모순이 엉킨 풀리지 않는 퍼즐같이 복잡하고 다양하다”고 말한다.
한국인의 자체 핵무장 선호 심리에는 서구 안보이론이나 경험으로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자체 핵개발에 착수했다. 미국에 이어 소련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영국이 핵개발에 나서자 독자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프랑스에 ‘핵우산을 제공하겠다'며 핵개발을 막으려고 했지만, 프랑스는 1960년 2월 첫 핵실험에 성공했다. 드골 대통령은 1961년 존 에프 케네디 미국 대통령을 만났을 때 “파리를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소련이 프랑스 파리를 핵무기로 공격하려 할 때 미국은 뉴욕이 초토화되는 것을 감수하고라도 파리를 위협하는 소련을 향해 핵공격을 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다.
“서울을 지키려고 뉴욕을 희생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
국내에서 핵무장을 주장하는 쪽에서도 “서울을 지키기 위해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 프랑스의 핵무장 경험에 비춰보면, 미국이 제공하는 핵우산(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자체 핵무장에 대한 지지가 낮아져야 한다. 미국이 확고한 안보공약으로 한국 안보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국과 미국 전문가들의 견해도 같은 맥락이다. 이 때문에 한미 양국 대통령과 당국자들은 한-미동맹이 철통 같다고 강조하고, 미국은 확장억제와 관련해 모든 역량을 동원해 한국을 방어한다고 약속하고 있다.
그런데 박주화 연구위원이 2023·2024년 통일연구원의 여론조사 자료를 다중 회귀분석한 결과를 보면, 통념과 달리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도가 자체 핵무장 선호를 강화하는 경향이 관찰된다. 박 연구위원은 “미국 확장억제에 대한 신뢰가 높은 사람은 미국이 한국의 핵무장을 찬성할 것으로 믿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지난 2021년 12월 미국 시카고국제문제협의회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유권자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전화면접 조사에서도, 미국의 안보공약에 대한 신뢰가 높을수록 핵무장을 원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안보공약을 매우 신뢰하는 응답자의 78%가 자체 핵무장을 지지한데 견줘, 미국의 안보공약을 불신하는 응답자의 경우 56%가 핵무장을 지지했다. 미국의 안보공약을 믿을수록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미국이 확장억제 공약만 강조해서는 한국인의 자체 핵무장 지지 정서를 쉽게 바꿀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미 확장억제는 한국 핵무장 포기가 전제인데
자체 핵무장을 커피에 비유하면 프랑스 자체 핵무장 논리는 ‘미국 핵우산 불신→자체 핵무장’으로 에스프레소처럼 간명하다. 그런데 한국인은 미국 안보공약(확장억제)을 믿으면서도 자체 핵무장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게 나타난다. 미국의 확장억제 공약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 포기를 전제로 한 것임을 떠올린다면, 한국인의 마음은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비유될 수 있다.
지난 2022년 9월 북한이 핵무력정책법을 제정하고 북핵 위협이 높아지자 핵무장론이 한국 안에서 한층 커졌다고 언론 등은 전한다. 하지만 실제 여론 동향은 다르다. 최근 4년간 핵무장을 원하는 국민 비율이 10여년전에 핵무기 보유를 원하는 비율과 큰 차이가 없다. 2006년 10월 사회동향연구소가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67%가 “남한도 자체 핵을 보유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2010년 이후의 다른 여론조사 결과들도 마찬가지여서 자체 핵무장 찬성 응답은 꾸준히 60~70%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인의 핵무장 선호는 최근 몇년간 북핵 위협 고도화에 따른 단기적 대응이라기보다는 ‘오래된 열망’에 가까운 셈이다.
핵무장론 기저엔 ‘선진국 향한 열망’
박주화 위원은 “국민의 핵무장 인식 속에는 북핵에 대한 위기감뿐만 아니라 선진국 대열에 진입한 국가적 위상, 국제정세 변화 속에서 한국의 안보와 번영에 대한 고민이 녹아있다”며 “60~70%가량인 핵무장 지지 여론조사 결과를 북핵 대응을 위해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의 단순 증거로 활용하거나 핵무장 심리를 국수주의로 치부하는 것은 숫자 너머에 있는 국민의 마음을 외면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말한다.
<인용한 자료>
△우리 국민은 왜 자체 핵무장을 선호하는가(통일연구원, 박주화)
△핵무장을 원하는 국민인식의 세 가지 특징(통일연구원, 박주화)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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