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중 뜬금 없는 정전, 학교는 수리비만 1500만원 ‘황당’···한전은 “배상 책임 없어”
“한국전력공사(한전)의 관리 부실로 인한 피해인데, 그 책임을 학교가 떠안는 게 맞는 겁니까.”
광주광역시 광산구 모 고등학교 관계자 A씨는 A4용지에 새까맣게 적힌 수리비 내역서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수리비는 학교를 포함한 일대에서 정전이 발생한 뒤 에어컨 등이 고장을 일으켜 발생한 것이다. 학교는 자체 운영비로 수리를 마친 뒤 한전 측에 보상을 요구했지만, 돌아온 대답은 ‘책임이 없다’였다.
급작스러운 정전 피해로 인한 수리비 1500여만원을 일선 중·고등학교가 고스란히 떠안게 될 처지에 놓이게 됐다. 한전이 손해배상 면책 약관을 내세워 책임질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면서다. 학부모들은 한전이 자녀들의 수업을 방해한 것도 모자라 학교 운영에도 차질을 주고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16일 경향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8월30일 오전 11시30분쯤 광주 광산구 소촌동 일대에서는 대규모 정전이 발생했다. 이 사고로 주변 아파트 900여가구와 인근 중·고등학교에는 2시간에서 4시간가량 전기공급이 전면 중단됐다.
당시 중·고등학교에서는 1700여명의 학생이 수업 중이었다. 갑자기 에어컨이 꺼지고 찜통 더위가 교실 안까지 엄습하자 학교는 오후 수업을 전면 중단하고 학생들을 하교시켰다. 당시 낮 기온은 33도를 웃돌았다.
정전은 이들 학교에서 100m가량 떨어져 있는 아파트 주변 변압기가 고장을 일으킨 데 따른 것이다. 한전은 ‘수목 접촉으로 인한 열화 단선’을 원인으로 추정했다.
전기는 오후 4시쯤 복구됐다. 하지만 각 학교에 있던 냉난방기와 LED천정등, 환풍기 등은 전력 공급 뒤에도 작동하지 않았다. 수리 업체들은 정전 상황에서 낮은 전압이 유입돼 핵심 부품들이 고장을 일으킨 것 같다며 부품을 교체했다. 수리비로 고등학교는 1100만원, 중학교는 350만원 정도가 청구됐다. 이 금액은 1년 동안 각 학교가 기자재 등 시설 관리비로 투입하는 운영비의 약 30%에 해당한다.
문제는 학교가 예상치 못한 정전으로 큰 피해를 봤지만, 이를 책임져 줄 곳이 없다는 점이다. 학교 측은 한전에 피해보상을 요구하는 공문을 보냈다. 하지만 한전은 ‘손해배상 면책’이 담긴 전기공급약관을 내세워 ‘직접적인 책임이 아닌 원인으로 발생한 손해에 대해선 배상책임을 지지 않는다’고 회신했다.
학부모들은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학부모회 B씨는 “학교가 잘 못 한 것도 아니고 정전 역시 한전이 나무 가지치기 등 관리만 잘했어도 발생하지 않았을 문제인데 학교에서 알아서 하라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문제의식을 공유한 학부모들은 현재 대응방안을 함께 논의중이다.
한전은 학교 측의 어려움은 이해가 가지만 뾰족한 수가 없다는 입장이다. 한전 관계자는 “정전 등 불편을 최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산재된 전력설비 특성상 정전 등 다양한 원인을 모두 예방하고 배상을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고귀한 기자 g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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