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쩐지 무대복 같은 [도축장에서 일합니다]


도축장과 같은 대부분의 해썹 인증 기관은 위생을 위해 온몸을 깨끗한 옷으로 무장하곤 한다. 이물질 유입 방지를 위해 어떤 귀금속과 같은 악세사리도 일절 금지이며, 머리카락 한 올도 허락 못 하는 위생 캡과 모자를 쓴다. 단체로 똑같은 차림을 하고 있으니 근엄, 진지하게 일사천리로 작업이 진행될 것만 같다. 또 그런 모습이 '찰리와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움파룸파'처럼 귀엽기도 하다.

등급을 판정하는 평가사는 머리카락을 꼭꼭 눌러 담는 남색 모자, 또는 하얀색 안전모를 쓰고 무릎까지 오는 남색 장화를 신는다. 의사가 입는 것과 비슷한 하얀색 가운을 입고 ‘매스’할 때 비범한 표정으로 끼는 라텍스 장갑을 낀다. 살이 드러나지 않도록 면장갑 끼고 그 위로는 팔토시를 씌운 다음 말이다. 그런 내 모습을 보니 어쩐지 무대에 올라 신곡을 발표하는, 아마도 크레용팝의 ‘빠빠빠’를 부르는 아이돌 같기도 하고, 허벅지까지 오는 긴 가운이 냉장고 바람에 날려 펄럭거릴 땐 망토를 쓴 슈퍼맨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다른 작업자들은 직무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도축하시는 분들은 웃옷과 바지까지 초록색 단체 위생복을 입고 그 위에 생선가게에서 볼 법한 커다란 하얀색 비닐 앞치마를 두른다. 앞치마는 완전한 방수라 그만큼 또 엄청나게 뻣뻣한가 보다. 앞치마를 두른 건지 플라스틱 판을 두른 건지 걸어 다니는 통나무가 되곤 한다. 작업 여건상 피가 많이 튀는데, 이런 복장이라면 끄떡없다. 다행히 모자는 초록색이 아니었는데, 하마터면 텔레토비 뚜비가 될 뻔했다. 

돼지고기와 소고기는 아킬레스건이 갈고리에 고정되어 냉장고에서 보관된다. 거꾸로 레일에 걸린 채 냉동 탑차에 실어지길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 고기들을 대부분 수동으로 밀어서 구역을 옮기는데, 이때 이 업무를 하는 사람들은 노란색 일회용 방역복을 입고 있다. 코로나19 시기에 간호사들이 입었던 방역복 모양으로 모자부터 상의 하의가 하나로 연결된 원피스 방역복이다. 키가 큰 사람들은 정말 불편하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텔레토비 나나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모두가 위생을 위해 여름에도 긴팔, 긴바지를 입고 일하면서, 위생복 안으로는 땀이 강이 되도록 흘리곤 한다. 식품을 다루는 현장 내부는 사실 시원하다 못해 춥기도 하니 감사한 건지 뭔지 겉옷을 한 겹 더 입어본다. 겨울에는 파카를 껴입고 그 위에 위생복을 욱여넣기도 해본다. 불편해도 자신의 몸을 외부의 충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 그리고 식품을 위생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의복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매일 그렇게 차려입을 모습을 보니 정겹기도 하고 멋지기도 하다. 다 같은 옷을 입고 뒤에서 있는 듯 없는 듯, 그럼에도 꼭 필요한 백댄서처럼 그들은 묵묵히 그들의 자리에서 그 옷을 입고 있다. 티는 안 나지만 없어서는 안 될 그런 멋진 무대복 같이 말이다.


*글쓴이 -  오이

수능 성적에 맞춰 축산학과를 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과 직업 사이의 경계를 방황하면서, 알고보면 유용한 축산업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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