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의 신형 V3 E-컴프레서 엔진을 통해 살펴보는 모터사이클 과급기의 역사

지난 EICMA 2024에서 혼다가 발표한 신형 V3 E-컴프레서 엔진

모든 모터사이클 제조사들은 조금이라도 더 우수한 성능의 제품을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연구와 개발을 이어나가고 있다. 여기서 성능에는 출력 같은 부분도 있을 것이고, 반대로 출력은 그리 높지 않아도 뛰어난 연비를 내는 것 또한 중요한 부분이다. 출력 쪽의 성능을 강화한다면 취미 성격이 강한 제품, 예를 들어 슈퍼스포츠 같은 모델이 될 것이고, 반대로 연비 쪽의 성능을 강화한다면 스쿠터 같은 일상적인 영역에서 사용하는 스쿠터나 언더본 같은 모델이 될 것이다.

레이스는 브랜드의 실력과 기술을 입증하는 절호의 기회다

이 중에서 출력 등을 강화하는 부분은 브랜드 입장에선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고출력의 모델을 개발한다는 것은 브랜드의 기술력을 뽐내는 것이기도 하고, 이런 모델을 바탕으로 레이스에서 우승함으로써 기술력을 입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의 모든 브랜드가 높은 출력을 내는 제품을 개발하고 이를 레이스에 투입해 명성을 떨친 모델을 어렵잖게 찾을 수 있다.

이런 고출력을 위한 브랜드들의 노력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최근 주목받는 것이 바로 과급기다. 현재 판매되는 거의 대부분의 모터사이클은 흡기계를 통해 들어온 공기를 연료와 함께 분사해 연소시키는 자연흡기 방식인데, 여기서 흡기계에 장착된 과급기를 통해 공기를 압축해 연소실로 보내 불완전 연소를 줄여 엔진의 출력과 효율을 높이는 방식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모터사이클에는 도입이 되지 않았으나, 가와사키가 자사 제트스키에 적용하던 슈퍼차저 방식을 가져와 H2 시리즈에 탑재하며 주목받았다. 그리고 지난 11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EICMA 2024에서 혼다가 전자식 슈퍼차저를 더한 새로운 V형 3기통 엔진을 소개하며 다시 한 번 관심이 모이고 있다. 모터사이클과 과급기, 그동안 어떤 시도들이 있었고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전개될지에 대해 예측해보았다.

 

터보차저와 슈퍼차저

혼다 CX500 터보

대표적인 과급기 중 하나인 터보차저의 경우 자동차는 1962년 올즈모빌 제트파이어에 처음 도입된 이후 1973년부터 BMW의 2002 터보를 통해 대량생산되며 적용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모터사이클은 그보다 늦은 1978년 가와사키의 Z1R-TC에 최초로 과급기가 적용됐지만, 가와사키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라 딜러에서 완성 차량을 가져다 외부 업체에서 터보차저를 ‘추가’한 정도임을 생각하면 제조사에서 직접 만든 최초의 터보차저 모터사이클은 1982년 혼다의 CX500 터보가 시작이라 할 수 있다.

혼다의 첫 V형 2기통 엔진이지만 지금의 모토구찌 모터사이클처럼 엔진 헤드가 좌우로 튀어나오도록 가로배치했는데, 엔진 헤드를 시계방향으로 22° 비튼 것은 흡기계가 라이딩 포지션을 방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일반 CX500의 497cc 자연흡기 수랭 엔진은 최고출력 48마력을 발휘했는데, 1982년 터보차저를 적용한 CX500 터보는 2배에 가까운 82마력을 냈다고. 이후 야마하의 XJ650 세카 터보, 스즈키 XN85 터보, 가와사키 GPZ750 터보 등 다른 브랜드에서도 터보차저가 적용된 모터사이클을 차례로 출시했다.

1989년 아메리칸 모터사이클리스트 잡지에 실린 보험사의 블랙리스트(오른쪽 검은색 상자). 당시 출시됐던 터보 모델 중 3종이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이 모델들은 높은 성능에도 불구하고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사라진다. 이유는 흔히 ‘터보 랙(turbo lag)’이라 불리는 급가속 시 터보 특유의 지연 현상을 비롯해 관련 부품 장착으로 인한 높은 무게중심, 발열, 무게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시장에서 외면받은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자동차보다 가벼운 모터사이클에 이러한 터보차저가 추가되며 성능이 상승하게 되면 조작 과정에서의 사소한 실수가 사고로 이어지기 쉬운데, 1989년 미국 자동차 보험사의 ‘블랙리스트’에 터보차저 적용 모델들이 등록됐다는 점이 당시의 분위기를 잘 설명한다.

푸조 제트포스 125 컴프레서. 일반적인 스쿠터와는 다른 구조를 볼 수 있다

이렇게 터보차저는 일찌감치 도입됐다가 사장됐지만, 슈퍼차저는 의외로 도입이 상당히 늦었다. 슈퍼차저가 1860년 용광로용 공기펌프를 통해 처음 개발되고 1900년 다임러-벤츠의 공동 창립자인 고틀리프 다임러가 자동차 내연기관용 슈퍼차저에 대한 특허를 취득해 자동차에는 일찍부터 적용됐는데, 모터사이클에 슈퍼차저가 처음 적용된 것이 2003년 푸조의 제트포스가 처음이었으니 상당히 늦은 편이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먼저 모터사이클의 구조적 한계, 즉 관련 부품을 탑재할 공간이 상당히 부족하고, 시스템의 추가로 늘어나는 무게가 모터사이클의 운동성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이다.

가와사키 H2R. 뛰어난 성능을 보여줬지만 가격도 그만큼 뛰어났다

물론 이러한 부분들은 패키징 기술 및 경량 소재 가공 기술의 발달로 상당 부분 개선됐고, 그 결과물 중 하나가 가와사키의 H2 시리즈다. 998cc 엔진에 슈퍼차저를 조합해 H2는 200마력, H2R은 무려 310마력을 내는 괴물을 탄생시켰다. 당시는 리터급 슈퍼스포츠 제품이 200마력의 벽을 뚫기 전이었으니 이 모델들은 시장에 어마어마한 충격을 선사했다. 덕분에 이 직전까지 가와사키의 플래그십 모델은 ZZR1400이었으나, H2 시리즈의 등장으로 그 자리를 물려주고 단종 수순에 들어갔다. 물론 여기서 과급기 적용 모델이 공통적으로 갖는 또 하나의 문제점이 드러나는데, 바로 높은 비용이다. 가와사키의 경우 현재 국내 판매중인 모델로 비교해보더라도 자연흡기 방식의 ZX-10R이 3,091만 원이지만, 네이키드인 Z H2 SE는 3,498만 원, 투어러인 H2 SX SE는 4,510만 원에 달한다. 여러 장비나 부품, 기능 유무에 따른 차이는 있겠으나 가격 상승 폭이 적지 않음을 고려하면 브랜드에서도 쉽게 선택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혼다가 선택한 전동 슈퍼차저

이런 시점에 혼다가 전기 슈퍼차저를 얹은 V형 3기통 엔진을 선보인 점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단순히 신제품 개발의 일환으로만 볼 수는 없는 것이, 최근 이렇게 배기량을 낮춘 대신 높은 효율을 내는 엔진에 집중하지 않으면 강화된 환경 규제로 도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 작년까지 유예기간을 거쳐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유로 5+ 환경규제가 시행되고 있고, 아직 확정되진 않았으니 일정 기간이 지난 이후에는 유로 6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엔진만으로는 더이상 규정을 충족시키기 어려울 수도 있는 만큼 이에 대비할 수 있는 신형 엔진이 필요한 것이다.

2027년부터 모토GP의 배기량 규정이 변경된다

여기에 모토GP의 규정 변화도 한몫했다. 모토GP는 2027년부터 기존 1,000cc였던 모터사이클의 배기량을 850cc로 낮출 계획이다. 배기량이 낮아졌다고 해서 고성능을 끌어내지 못하는 건 아닌 것이, 2007년부터 도입됐던 800cc의 혼다 RC212V의 경우에도 210마력 이상의 성능을 냈을 정도니 이번 규정 변경으로 레이스의 박진감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규정이 변화되면 새 엔진을 개발해 적용할텐데, 이렇게 레이스에서 개발된 엔진을 레이스에서만 사용하는 것은 비용이나 효율 면에서도 마이너스 요소가 될 것이다. 이미 현재도 레이스에서 파생된 기술을 양산 제품의 엔진에 적극 적용하고 있는 만큼 모토GP 규졍 변경으로 인한 새 엔진 역시 양산 제품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고, 그 일환으로 이번 V3 엔진을 공개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혼다 RC213V의 엔진. 모토GP에서는 한 시즌에 최소 7개, 최대 10개의 엔진을 사용할 수 있다

물론 레이스용 모델과 양산 모델의 차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양산 모델은 레이스에 사용하는 것보다 더 높은 내구성을 요하게 되는데, 따라서 레이스용 엔진과 똑같이 높은 성능을 내는 것은 내구성을 크게 낮추는 요소이기 때문에 적당한 수준에서 성능을 타협해야 한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일정 이상의 성능을 내면서 내구성까지 함께 갖춘 모델을 원하고, 이를 위해 혼다가 이번에 V3 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한 것이다.

여기서 기존 방식의 기계식 슈퍼차저가 아닌 전자식 슈퍼차저를 더했는데, 이 역시 기존 방식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이다. 터보차저는 배기가스로 로터를 돌려 공기를 압축하는 방식이고, 슈퍼차저는 엔진 동력을 이용해 로터를 돌린다는 차이가 있다. 다만 엔진의 동력을 이용하는 만큼 출력 상승에 한계가 있는데, 일반적인 내연기관 자동차에서 에어컨을 작동시키면 컴프레서를 작동시키느라 동력이 분산되어 출력이 내려가는 점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이유로 대안으로 제기된 것이 전기 모터로 작동하는 슈처차저로, 엔진 동력 손실을 줄여 더 높은 성능을 낼 수 있고, 필요에 맞춰 과급양 조절이 수월하다. 그리고 기존 시스템보다 가벼울 뿐 아니라 내연기관에 장착하는 것보다 압축기 속도를 쉽게 높일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이런 이유로 자동차에서는 터보 랙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으로 48V 슈퍼차저를 도입하고 있다.

이번에 공개된 V3 엔진은 프레임과 스윙암, 서스펜션 등 일부 구성요소들이 함께 전시됐는데, 프레임은 경량화를 위한 트렐리스 방식이 적용됐고, 서스펜션은 앞 조절식 역방향 텔레스코픽 포크, 뒤 모노 쇼크 업소버에 스윙암은 단면(모노) 스윙암 방식이 적용되어 높은 운동성을 요하는 스포츠 성향의 모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혼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슈퍼차저 적용은 배출가스가 아닌 성능을 위한 것으로, 작은 배기량으로 더 큰 엔진의 토크를 제공하도록 설계됐다”고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이와 함께 “이번 V3 엔진은 새로운 제품 라인업의 기반이 될 것이며, 첫 번째 모델은 로드스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2025년에는 프로토타입 모델을, 그 다음해에는 첫 번째 생산 모델을 공개할 공개할 수도 있다”고 전해 내년부터 대략적인 제품의 윤곽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 외신에서는 ‘일반적인 모터사이클과 달리 2개의 배터리가 적용되는데, 하나의 배터리는 터빈을 돌리는 전기모터에 전원 공급용으로만 사용되고, 여기에 강화된 충전 시스템이 더해지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혀 실제 양산 제품에서는 어떻게 구현될지 상황을 지켜봐야 할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