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교환이 하면 ‘찌질함’도 미학이 된다…‘모자무싸’ 황동만이 밉지 않은 이유
묘하게 사랑스러운 인물 ‘전매특허’
독특한 톤과 리듬, 완급 조절까지
칸 입성 ‘군체’ 등 올해 더 기대감

황동만은 좋아하기 힘든 인물이다. 대학에서 함께 영화를 꿈꿨던 ‘8인회’ 선후배들은 영화감독 데뷔를 하거나 영화사 일원이 됐다. 어느덧 나이 마흔. 황동만만 지망생으로 남았다. 애잔할 법하지만 주변에서는 그를 이제 버거워한다. 무능해서가 아니라 태도 때문이다. 황동만은 “남 잘되는 거에 미쳐 죽고, 남 안 되는 거에 행복해 죽는 놈”이다. 친구의 영화가 망하면 위로를 건네기는커녕 그 영화가 별로인 이유를 신이 나 떠드는 편이다. 시끄러운 잘난 척에서는 자격지심이 투명하게 읽힌다.
JTBC 토일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모자무싸)는 웬만해서는 옆에 두고 싶지 않은 영화계 주변인 황동만을 주인공으로 한다. ‘지안’(아이유)에게 “편안함에 이르렀나” 물으며 막을 내린 tvN <나의 아저씨>(2018), ‘구씨’(손석구)에게 “날 추앙해요”라고 명령하는 ‘미정’(김지원)의 말로 시작하는 JTBC <나의 해방일지>(2022)를 쓴 박해영 작가의 신작이다.

외로움과 초라함. 드러내놓지 않지만 다들 느끼는 부정적 감정을 극에 풀어놓는 건 박 작가의 장기다. 박 작가가 작정하고 만든 ‘찌질함’의 집약체, 황동만은 여태껏 그가 만든 캐릭터 중 가장 참아주기 어려운 인물이다. 하지만 황동만을 미워하기도 어렵다. 배우 구교환(44)의 ‘밉지 않은’ 연기 덕이다.
살짝 높은 목소리의 구교환은 대사의 리듬을 조절하며 노래하듯 연기한다. 구질구질한데 기묘하게 사랑스러운 캐릭터는 ‘독립영화계 총아’로 연출·연기를 겸하던 시절부터 구교환의 전매특허였다. 헤어진 연인에게 ‘제작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 연애 다큐멘터리를 같이 찍자’고 연락하거나(<연애다큐>, 2015) 출연한 영화 파일을 받지 못하자 감독들을 손수 찾아가 내놓으라고 요구하는(<왜 독립영화 감독들은 DVD를 주지 않는가?>, 2013) 영화 속 그의 모습이 그러했다. 황동만은 이 캐릭터들이 꿈을 이루지 못하고 영화계를 떠돌았다면 맞이했을 법한 미래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영화·드라마 업계는 자신만의 리듬으로 연기하는 이 배우를 극을 환기하는 조연으로 활용하곤 했다. 넷플릭스 시리즈 <D.P.>(2021)에서 그가 연기한 병장 ‘한호열’은 무거운 극의 분위기를 실없는 농담으로 가볍게 바꿔놨다. 영화 <탈주>(2024)에서는 속을 알 수 없는 북한 보위부 장교 ‘리현상’으로 분해 위압적인 역할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2026년은 구교환이 주연급으로 발돋움한 해다. 지난해 12월31일 개봉한 구교환·문가영 주연의 멜로 영화 <만약에 우리>는 올해 초 260만명을 동원하며 깜짝 흥행에 성공했다. 헤어진 두 사람이 10년 뒤 우연히 다시 만나 옛 연애를 돌아보는 내용의 영화에서도 구교환의 밉지 않은 매력이 빛났다. 원작인 중국 영화 <먼 훗날 우리>(2018)의 남자 주인공 ‘린젠칭’(정백연)이 이기적으로 보였다면, 한국판 영화에서 구교환이 맡은 ‘은호’는 화를 내는 상황에서도 모질어 보이지 않는다.

<모자무싸>의 황동만에게서 구교환표 캐릭터들이 밉지 않은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구교환이 내보이는 꿈을 꾸는 듯한, 때로는 아이 같은 눈빛을 보면 황동만이 싫어지려다가도 응원하게 된다. “나는 더, 더, 더 무가치해질 거고, 너희를 더, 더, 더, ‘빡치게’ 할 거거든!” 평소에 잘 쓰지 않는 ‘무가치’라는 낯선 단어가 든 대사도 구교환이 아이처럼 떼쓰는 듯한 톤으로 내지르면 퍽 어울린다. 황동만이 남몰래 느끼는 고독과 불안을 보여주는 장면에선 정석적인 연기를 선보인다. 구교환은 자신만의 독특함을 완급 조절해 전달할 줄 안다.
올해는 구교환의 해라고도 할 만하다. 이달 열리는 제79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이트 스크리닝 섹션에 초청받은 연상호 감독 영화 <군체>에서 좀비 감염 사태를 일으킨 생물학 박사 서영철 역으로 관객을 만난다. 감독으로서도 찾아온다. 구교환은 다음 달 개막하는 제22회 미쟝센단편영화제 트레일러 연출을 맡았다. 7일 공개되는 영화제 홍보 영상에는 배우 김태리, 손석구가 나온다.
전지현 기자 jhy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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