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풍향계] 반도체 기업결합에 촉각 세운 공정위… 최초 ‘공개적 의견 청취’ 이유는
이례적으로 ‘경쟁사·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공표
기업결합 앞두고 ‘잠재적 사업자’ 목소리도 듣는다
‘미래 먹거리’ 반도체 업계에서 일어나는 글로벌 기업의 결합에 공정거래위원회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미국 ‘시높시스’(Synopsys)와 ‘앤시스’(ANSYS)의 기업결합(M&A)에 대한 경쟁사와 이해관계자 등의 의견을 청취한다고 지난 11일 밝혔습니다. 공정위가 기업결합을 심사하면서 경쟁사나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동안 공정위는 기업결합 심사를 진행할 때 대부분 비공개로 의견 조회를 해왔습니다. 예를 들어 HD현대중공업과 STX중공업의 기업결합처럼 전통적인 분야는 경쟁사나 이해관계자가 명확한 편이라 특정 기업에 의견을 묻기 좋습니다.
그러나 이번 기업결합은 반도체 칩 설계와 분석에 사용되는 소프트웨어 시장과 관련된 신기술 분야라 이해관계가 더 복잡할 수 있습니다. 때문에 공정위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이해관계자가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공개적으로 의견을 받기로 한 것입니다.
15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5월 31일 시높시스로부터 앤시스 주식 취득과 관련한 기업결합 신고를 접수했습니다. 시높시스는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반도체 칩 설계와 분석에 사용되는 전자 설계 자동화(EDA) 소프트웨어 시장의 선도 기업입니다. 전 세계 EDA 소프트웨어 시장에서 약 30~35%의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텔, AMD,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앤시스 역시 미국에 본사를 둔 글로벌 기업으로, 제품과 시스템의 기능이나 성능을 가상의 디지털 모델을 통해 검증하고 분석하는 시뮬레이션 및 분석 소프트웨어 분야의 선도 기업으로 꼽힙니다. 앤시스는 엔비디아와 퀄컴 등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습니다.
미국 기업들이 한국에서 기업결합 심사를 받는 이유는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외국회사의 국내 매출액이 각각 300억원을 넘을 경우 한국 공정위에 기업결합을 신고해야 합니다.
이번 기업결합은 시높시스가 앤시스의 주식 100%를 취득하는 것으로, 거래 금액은 45조9000억원(약 350억달러) 규모에 달합니다. 특히 AI 반도체와 고대역폭 메모리 등 향후 반도체 산업의 핵심이 될 첨단 반도체 설계와 생산 과정에서 EDA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전망입니다.
공정위는 전 세계 반도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큰 두 회사가 결합했을 때 한국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시장에는 다양한 중소기업과 잠재적 진입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번 기업결합에 대기업뿐만 아니라 잠재적 사업자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공정위는 이번 기업결합에 대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다양한 기업에서 의견을 제출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시장의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공정위가 비공개로 의견을 청취하면 뒤늦게 제출된 의견 때문에 심사가 지연되거나 시장 획정을 다시 해야 할 수 있어, 이번에 공개적으로 의견을 접수하기로 한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두 기업의 결합으로 영향을 받을 시장을 어떻게 구분할지 고심하고 있습니다. 반도체 시장은 크게 설계와 제조로 나눌 수 있는데, 시높시스와 앤시스는 설계,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제조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공정위는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시장을 세부적으로 나눠야 할지,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가 설계 관련 자회사를 운영하는지를 따져볼 계획입니다. 이 과정에서 두 기업의 결합이 상호 경쟁 관계에 있는지, 혹은 보완 관계에 있는지를 분석해 ‘수평결합’으로 볼지 ‘혼합결합’으로 판단할지 결정하게 됩니다.
공정위는 오는 10월 11일까지 기업결합에 대한 의견을 청취합니다. 향후 다른 기업결합 건에도 공개적인 의견 청취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도 나옵니다. 공정위 관계자는 “생각지 못한 우려가 많이 접수될 경우, 앞으로도 기업결합 심사에서 공개적으로 의견을 청취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 기업결합 심사는 단순한 두 기업의 결합을 넘어, 반도체 산업의 미래 경쟁 구도를 결정짓는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공정위의 첫 공개 의견 조회로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과 잠재적 사업자들까지 목소리를 낼 기회가 열렸습니다. 이 결합이 국내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선에서, 기술 혁신을 촉진하고 공정한 경쟁 환경을 조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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