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 탁구의 간판 신유빈이 월드테이블테니스(WTT) 챔피언스 프랑크푸르트 준결승에서 일본의 에이스 하리모토 미와(세계 7위)에게 2대4(9-11, 11-2, 11-13, 4-11, 12-10, 13-15)로 패하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중국 톱랭커들이 빠진 이번 대회는 신유빈에게 첫 챔피언스 우승의 절호의 기회로 여겨졌지만, 마지막 벽은 높았다. 하지만 경기 내용만큼은 분명 이전보다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54분간 이어진 접전에서 신유빈은 세 번의 듀스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고, 하리모토와의 수준 높은 랠리 속에서도 끝내 한 세트 차이로 무너졌다. 그 아쉬움 속에는 실력의 성숙과 가능성이 함께 담겨 있었다.

경기 초반 신유빈은 다소 긴장된 듯한 출발을 보였다. 1게임에서 2대8까지 끌려가며 하리모토의 빠른 템포에 밀렸다. 그러나 이후 포핸드 드라이브의 각도를 조정하며 9대10까지 따라붙었고, 마지막 득점에 실패해 9대11로 내줬다. 비록 세트를 잃었지만 경기 감각을 완전히 회복한 듯한 흐름이었다. 2게임은 완벽한 반전이었다. 하리모토의 서브를 초구에서 적극적으로 받아치며 주도권을 잡았다. 빠른 박자와 코스 공략으로 7점을 연속 득점한 뒤 11대2로 압도했다. 짧은 리시브와 코너를 찌르는 공격이 효과를 발휘하면서 분위기를 완전히 자기 쪽으로 끌어왔다.
문제는 3게임이었다. 초반 7대3까지 앞서며 손쉽게 경기를 풀어가는 듯했지만, 하리모토의 역습이 시작됐다. 신유빈의 서브 길이가 길어지고 리듬이 살짝 무너지자 하리모토는 특유의 백핸드 치키타로 연속 득점을 만들어냈다. 9대9 듀스 상황에서 신유빈이 먼저 세트포인트를 잡았지만 마지막 두 포인트를 내리 내주며 11대13으로 아깝게 내줬다. 승부처였던 이 세트를 잃으면서 경기의 흐름이 다시 하리모토에게 넘어갔다. 4게임은 완전히 상대의 페이스였다. 하리모토의 초반 강공에 밀리며 신유빈은 연속 실수를 범했고, 4대11로 세트를 내주며 세트스코어 1대3으로 몰렸다.

벼랑 끝에서도 신유빈은 포기하지 않았다. 5게임에서 다시 한 번 강한 집중력을 보여줬다. 하리모토의 서브를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랠리를 길게 끌고 갔고, 치열한 듀스 끝에 12대10으로 세트를 따냈다. 경기장에 모인 독일 팬들도 신유빈의 투혼에 박수를 보냈다. 마지막 6게임은 이 경기의 모든 긴장과 드라마를 압축한 세트였다. 3대3, 6대6, 9대9, 13대13까지 시소 게임이 이어졌고, 한 포인트 한 포인트마다 숨소리조차 들릴 정도로 팽팽했다. 그러나 마지막 두 랠리에서 신유빈의 드라이브가 테이블을 살짝 벗어나며 13대15로 세트를 내줬고, 경기는 그대로 끝났다.
비록 결과는 패배였지만 신유빈의 경기는 결코 실망스럽지 않았다. 전 경기에서 보여준 경기 운영 능력, 위기 순간마다 냉정하게 리듬을 되찾는 집중력, 그리고 상위 랭커를 상대로도 물러서지 않는 공격적 자세가 빛났다. 3세트에서 역전을 허용했을 때도 감정의 기복을 최소화했고, 5세트에서는 과감한 서브 전략으로 분위기를 바꿨다. 특히 짧은 리시브 이후 빠른 3구 공격은 과거보다 훨씬 안정적이었다. 다만 마지막 두 세트에서 나타난 세밀함의 부족, 듀스 국면에서의 마무리 능력은 향후 보완해야 할 과제다. 강도 높은 랠리 후 체력 관리와 백핸드 타점 유지가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핵심 포인트다.

신유빈의 이번 준결승은 ‘패배 속의 성장’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2주 연속 WTT 챔피언스 4강에 올랐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성과다. 몽펠리에 대회에서 유럽 강자들을 상대로 완승을 거둔 데 이어, 이번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세계 7위 하리모토와 대등하게 맞섰다. 특히 중국 선수들이 빠진 상황에서 일본 강호들 사이에서도 꿋꿋이 버티며 한국 여자 탁구의 존재감을 다시 한 번 알렸다. 결승 진출은 무산됐지만, 내용만 놓고 보면 세계 최정상급 선수들과의 간극이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한 무대였다.
하리모토 미와는 여전히 세계무대에서 가장 빠른 리듬을 구사하는 선수 중 한 명이다. 신유빈은 그런 상대에게도 전혀 밀리지 않았다. 포핸드 드라이브의 정확도와 코스 선택, 중장거리 랠리에서의 버티는 힘, 그리고 관중의 응원을 등에 업은 집중력까지 완벽에 가까웠다. 결국 마지막 몇 포인트의 결정력이 승부를 갈랐을 뿐, 경기 전반의 내용은 박빙이었다. 특히 6게임에서 하리모토를 상대로 13대13까지 맞선 장면은 그 어떤 경기보다도 인상적이었다.

이날 패배로 신유빈은 WTT 챔피언스 시리즈 결승 진출이라는 꿈을 다음 대회로 미루게 됐지만, 이 경험은 그녀의 커리어에서 값진 자산이 될 것이다. 최근 몇 달 사이 네 차례의 4강 진출은 그만큼 안정적인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며, 이제 남은 과제는 ‘마지막 문턱을 넘는 법’을 배우는 일이다. 신유빈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오늘 경기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듀스 상황에서 좀 더 냉정하게 플레이해야 한다는 걸 느꼈다”며 “다음 대회에서는 더 강해진 모습으로 돌아오겠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신유빈은 또 한 번 문 앞에서 멈췄지만, 이번 프랑크푸르트 준결승은 단순한 패배가 아니라 ‘성장의 증거’였다. 세계 상위권 선수들과의 격차는 점점 좁혀지고 있고, 경기 운영과 멘탈의 안정감은 분명히 한 단계 올라섰다. 결승은 다음을 기약해야 했지만, 탁구 팬들은 신유빈이 곧 이 무대를 완전히 정복할 것이라는 확신을 얻은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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