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현장] 탈원전에 꺾이지 않은 그 이름 '名匠'

손현덕 기자(ubsohn@mk.co.kr) 2023. 2. 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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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이 없어 손끝 무뎌질까봐 모의실험하면서 우린 버텼다"
두산에너빌리티 기술명장 분투기
우리나라가 처음 수출한 한국형 원자로 APR1400 모형이 놓인 두산에너빌리티 본관 미디어홍보관에서 원자력 장인들이 탈원전 악몽을 씻어내는 듯한 환한 웃음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기계가공의 임동진 명장, 용접의 장성호 명장, 비파괴검사의 신건철 명장, 그리고 소형원전 SMR을 담당하는 왕진민 부장. 3인 명장의 명찰에 사각형 녹색 표시가 있다. 【사진 제공=두산에너빌리티】

높이 14.6m, 지름 5.1m의 흰색 원통형 원자로가 공장 문을 열고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증기발생기, 가압기, 냉각펌프와 함께 돔 모양의 원자력발전소에 들어갈 4대 주기기 중 가장 핵심이 되는 장비. 철판 두께 29.2㎝, 무게 560t의 원자로는 '멀티로더'에 실렸다. 마치 육지를 달리는 뗏목처럼 생긴 특수트레일러. 길이 21.1m, 폭 5.3m의 납작한 운반기기다. 바퀴만 96개. 원자로를 실은 멀티로더는 공장 길을 따라 서서히 항구로 향했다. 꺼억꺼억 소리가 났다.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엔 별도의 부두가 있다. 원자로는 극비를 요하는 사항이라 생산 장소에서 바로 배에 실어 발전소까지 옮긴다. 원자로를 실을 1만t급 거중선(Heavy Lift Vessel)은 이미 하역장에 도착해 있었다. 거중선 위로 거대한 노란색 크레인이 멀티로더에 있는 원자로를 들어 배에 선적한다. 배 가장 가운데 깊은 곳에 원자로가 안착되고 결박을 마치자 덜커덕하고 덮개가 닫힌다. APR1400급 바라카원전(BNPP·Barakah Nuclear Power Plant) 1호기, 우리 손으로 처음 수출하는 원전이었다. 목적지는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칼리파항.

다음날인 2014년 3월 17일, 원자로가 두산의 품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날이었다. 새벽부터 옅게 낀 안개는 마산만에서 130만평의 두산에너빌리티 창원공장으로 슬금슬금 기어들었다. 직원 몇몇이 부둣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공장 도로엔 흐드러지게 핀 벚꽃들이 안개비에 흩날렸다. 근육질의 공장도 이런 몽환적 분위기를 연출할 날이 있기는 한 모양이다. 원자로를 실은 거중선은 항구를 떠나 마산만을 따라 남쪽바다로 방향을 틀었다. 배가 시야에서 사라지는 건 10분이 채 안 됐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원자력공장의 장성호 기술부장은 몇 해 전 설날 새벽에 먹은 국밥 기억이 떠올랐다. 방금 항구를 떠난 원자로의 초기 모델인 APR1400 신고리 3호기를 제작할 때였다. 처음인지라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래도 어떡하든 납기는 맞춰야 했다. 설 전날까지 일했다. 새벽 4시 어두컴컴한 시간, 작업을 마무리하고 공장을 나서려고 하자 직원 중 한 명이 "날도 추운데 상남동 국밥 한 그릇 먹읍시다"라고 제안했다. 직원들은 그야말로 정신없이 흡입했다. 후루룩 국물 들이켜는 소리가 그렇게 큰 줄 처음 알았다. 우리 기술 우리 손으로, 주요 부품까지 국산화해서 만든 우리 원자로. 장 부장은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원자력공장에서 원자로를 마지막으로 꺼낼 때 자리를 지켰던 기술명장이다. 원자력공장은 말이 원자력이지 사실은 용접공장이다. 원자로를 만드는 핵심 공장은 세 곳이다. 철을 녹여 틀을 만드는 주조 단조공장, 옛날로 치면 대장간이다. 그다음 원자력발전소의 심장이라고 할 수 있는 터빈 만드는 공장이 있고 마지막으로 원자로를 완성하는 공장. 그게 원자력공장이다. 원자로를 구성하는 모든 부품들을 용접해서 붙이는 곳이다. 공장 벽면마다 용접에 관련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다. 일반인들은 알아듣기 힘든 공장의 전문용어들. '셀과 노즐의 용접' '튜브와 튜브시트의 용접' '원주용접' '인스트루먼트 노즐 용접' '오메가 실 용접' 등등. 자격증만 해도 자세별, 재질별로 수십 개로 가지 치는 용접은 원전 제조의 핵심 공정이다.

장 부장은 2010년 국가품질명장(용어)으로 지정돼 이 바라카원전 1호기 프로젝트에 선임 현장관리자로 투입됐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동 중인 25개 원전 가운데 16개 원자로가 그의 손끝에서 용접을 마무리했다. 과거에는 모두 사람이 직접 용접봉을 들고 용접을 했지만 이제는 자동화 기술이 발달돼 컴퓨터에서 키보드를 치고 마우스를 움직이면서 작업하는 경우가 많다.

터빈공장 연못 옆에 설치된 두산에너빌리티 역대 명장들의 핸드프린팅 동판.

그래도 장 명장은 "손으로 용접해본 사람이 기계도 잘 사용한다"며 "용접봉이 녹는 것을 보면 용접이 제대로 되는지 안 되는지를 안다"고 말한다. 작업복 오른쪽 가슴에 명찰이 붙어 있다. 명찰에는 이름과 직함 그리고 두산 로고를 상징하는 세 가지 색깔 중 하나인 녹색 사각형 표기가 돼 있다. 그건 명장만 달 수 있는 특권이다.

터빈공장은 원자력공장 옆에 위치해 있다. 전기 생산의 핵심 부품인 로터(rotor·발전기 등 회전하는 기계에서 회전하는 부분을 로터라고 한다)가 조립을 대기 중이다. 큰 거 4개, 작은 거 하나 이렇게 5개가 한 짝을 이룬다. 이 터빈공장엔 국가품질명장 임동진 부장이 있다.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열아홉의 나이에 두산에 입사해 25년 넘게 일해 딴 명장이다. 그에게 주어진 미션은 육중한 기계를 머리카락 굵기의 오차도 없이 깎는 것. 절삭 가공 작업이다. 벽면에 흔히 볼 수 있는 공장의 구호가 붙어 있다. '모든 사람은 실수한다' '모든 장비는 고장 난다'. 근로자들의 스트레스를 덜어주는 배려의 표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 옆에 세 번째 표어를 보면 의미는 반전된다. '그래서 사고는 발생한다'고. 실수하지 말고 장비 고장 내지 말라는 경고였다. 임 명장은 "원자로 헤드는 70t, 터빈발전기의 로터는 200t, 가압기는 150t. 원자로 핵심 기기들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며 "이걸 사고 안 나게 관리하고 정확하게 가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매 순간이 긴장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장인으로서의 자존심이 대단하다. "간혹 신입 직원들에게 원전 기자재 제작 세계 1등 기업이 어디냐고 물으면 미국, 프랑스 회사 이름을 댑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그냥 웃으면서 우리가 1등, 그것도 압도적 1등이라고 말합니다." 그는 입사 때부터 자신의 경험을 노트에 기록했다. 그게 이제 모두 10권 분량. 손끝 기술은 후배들에게 그렇게 전수된다.

백준호 공장장의 말. "터빈공장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게 있는데 그게 진동이다. 모든 터빈은 정확한 원으로 회전해야 한다. 그걸 진원(眞圓)이라 한다. 진짜 원. 타원으로 회전하는 순간 사고는 발생하기 때문이다." 작은 오차라 할지라도 비효율을 낳고 그 비효율은 시간이 흐르면서 크기를 키워 결국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터빈 중심에서 뻗어나간 빗살 하나하나의 길이와 무게가 똑같게 가공하는 게 핵심이다.

이 터빈공장을 나오면 작은 건물 하나가 있는데 간판에 밸런싱 숍(Balancing Shop)이라고 적혀 있다. 실제 현장에서의 회전속도(1800rpm)보다 20% 높여 운전해도 오차가 없음을 확인한 뒤에 후속 공정으로 넘긴다. 과거엔 이 작업을 우리가 못해 배에 싣고 미국까지 가서 검사 마치고 다시 가져오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수모도 수모지만 시간 낭비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여기서 만들어진 제품이 배에 실려 발전소로 가기까지, 정확히 말하자면 원자로 압력용기 생산할 때부터 숱하게 치러야 할 검사가 있다. 전문용어로는 비파괴 검사. 관련 기기를 파괴하지 않고 결함이 있는지를 찾아내고 결함이 발견되면 보완 조치를 하는 작업. 원자력 안전의 기본 중 기본이다. 병원에서 건강검진 받을 때 내시경이나 초음파, MRI 검사, CT 촬영하는 것과 같은 이치. 신건철 기술부장은 10년 전인 2013년 대한민국명장에 선정된 인물. 비록 검사 기술은 미국 웨스팅하우스에서 배웠지만 웨스팅하우스보다 먼저 검증을 받고 자격증을 딴 의지의 한국인이다.

그는 "전기로에서 나온 쇳물로 제강품을 만드는 것부터, 용접한 모든 부위, 그리고 원전에 원자로를 설치하고 가동에 들어가기 전에도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게 검사 작업"이라고 말한다. 그가 '노' 하면 원자로는 세상 구경을 못 한다.

대한민국 원전의 역사를 새로 쓴 APR1400. 아랍에미리트에 처음 수출한 이 원자로는 두산의 원자력 거장들의 손끝에서 완성됐다. 이 이전 원자로 그러니까 한빛(영광) 3, 4호기에 들어간 1000㎿(메가와트)급 원전은 미국 컴버스천 엔지니어링(CE)과 공동 제작했다. 국산화율을 72%까지 끌어올렸다. 그래도 의미가 있는 건 우리가 메인이고 미국의 보조(sub)였다. 그러다가 1998년 8월 한울 3, 4호기는 웨스팅하우스가 빠졌다. 사실상 최초의 대한민국 표준원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 후 신고리 4호기를 우리나라 독자 기술로 설계했고, 신한울 1, 2호기는 핵심 설비 중 여전히 미국에 의존했던 냉각재펌프(RCP)와 계측제어시스템(MMIS)까지 국산화한 제품이다. 이게 중동으로 처음 수출한 바로 그 원자로다.

이렇게 오랜 세월을 거쳐 세계 1등 기술과 기능을 보유한 한국의 원전. 최고의 기술은 최고의 비즈니스를 불러왔다. 그러나 천당에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의한 경각심이 고조된 데다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펼쳐진 탈원전 정책이 한국 원전에 핵펀치를 날렸다. 2012년 9조6000억원에 달하던 두산의 매출은 2020년엔 3조4500억원대로 가라앉았다. 기후변화에 따른 화력발전 비중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원전을 빼고는 설명이 어려운 대목이다. 얼마 전 웨스팅하우스에서 경영층 한 분이 두산을 방문했다. 그를 안내한 왕진민 제관기술팀 부장은 아픈 상처를 파고드는 질문을 받았다. "그동안 일감이 없었는데 어떻게 기술을 유지할 수 있었느냐? 품질에 자신은 있느냐"는 것. 왕 부장은 이렇게 답변했다. "두산엔 최고의 명장들이 여전히 버티고 있다. 역대 60명이 넘고 지금도 15명이나 있다. 과거 대한민국 기업 중 가장 많은 명장이 있는 곳이 우리였고 지금도 아마 그럴 것이다. 그들은 빙하기에도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일감이 없어 손끝이 무뎌질까봐 블록을 만들어 모의시험을 한 우리"라고.

정권이 바뀌고 분위기가 나아졌지만 여전히 두산엔 일감이 턱없이 부족하다. 원자력공장의 터닝롤러를 보면 안다. 이곳에 원통형 셀을 올려놓고 작업을 하는데 70~80세트나 되는 터닝롤러는 여전히 비어 있다. 이동현 공장장은 "손이 근질근질하다"고 한다.

그래도 대기업인 두산은 그런 대로 버틸지 몰라도 협력업체들은 그야말로 펑펑 나가떨어졌다. 두산의 원자력 협력업체는 총 806곳. 종업원 수만 4만명에 달한다. 작년까지 70개 회사가 폐업을 했으니 생태계가 무너질 만도 하다. 창원서 협력업체를 운영하는 김홍범 삼홍기계 사장은 지난 5년간이 악몽이라고 말한다. 그는 "원전 르네상스가 온다며 큰돈 투자해 공장 지었는데 가동에 들어가려니 그때부터 주문이 말라붙었다"며 "월급을 반납하면서 버텨준 직원들이 눈물 나게 고맙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창원공단에 서서히 온기가 돌기 시작했다. 작년 6월 윤석열 대통령 창원 방문 후 미리 일감도 받았다. 다음달이면 신한울 3호기 제작을 위한 한수원의 발주가 나올 예정인데 그에 앞서 선수금 조로 지원이 들어간 것이다. 작년에 두산에너빌리티로부터 29억원 규모의 일감을 받았다. 이젠 희망이 보이고 희망이 현실이 돼가는 것 같다고 말하는 김 사장. 그리고 두산에너빌리티 명장들 얼굴에도 화색이 돈다.

용어

명장(名匠) : 국내 명장은 두 종류가 있다. 대한민국명장과 국가품질명장. 둘 다 대통령이 지정한다. 대한민국명장은 고용노동부가 산업 현장에서 15년 이상 근무하면서 최고의 숙련 기술을 보유하고 기술 발전과 지위 향상에 공헌한 숙련 기술인에게 주는데 5개월간의 엄격한 심사를 거친다. 국가품질명장은 1991년부터 산업통상자원부(옛 지식경제부) 국가기술표준원과 한국표준협회가 주관해 제조 및 서비스 부문에서 품질혁신활동이 우수한 현장 근로자 또는 품질경영혁신 추진자에게 수여한다.

'사람과 현장'은…

머리보다는 가슴, 가슴보다는 발로 쓰는 글을 좋아한다. 경제기사가 따분한 이유는 발로 쓰지 않고 머리로 써서 그렇다. 발품을 팔아 사람을 만나고 현장을 쏘다니다 보면 글이 나온다.

[손현덕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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