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겨울 스토브리그는 유난히 시끄러웠다. 거액 FA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터졌고, 팀마다 “이번엔 진짜 우승 창을 연다”는 말이 나왔다. 그런데 사직은 상대적으로 조용했다. 그래서 롯데 팬들 마음이 더 복잡해졌다. “또 가만히 있나” 하는 불만과 “그래도 뭔가 준비는 하겠지” 하는 기대가 섞였다. 그런 와중에 롯데가 외국인 선수 구성을 한 번에 확정했다. 투수 엘빈 로드리게스, 제레미 비슬리를 각각 총액 100만 달러에 영입했고, 타자 빅터 레이예스는 총액 140만 달러로 재계약했다. 말 그대로 내년의 외국인 판을 ‘투수 두 장, 타자 한 장’으로 새로 깔아버린 셈이다.

이 선택은 방향이 분명하다. “돈을 쓸 땐 써야 하는 곳에 쓰겠다”는 선언에 가깝다. 롯데는 지난 시즌을 복기할 때, 무엇이 가장 아팠는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외국인 투수 농사가 흔들리는 순간 팀 전체가 같이 흔들렸다. 시즌 초반부터 믿고 가야 할 축이 무너지면, 뒤에서 아무리 타선이 버텨도 승부는 길게 끌려간다. 선발이 일찍 무너지면 불펜이 갈리고, 불펜이 갈리면 한 번에 연패가 길어진다. 작년 롯데가 겪은 ‘내리막’은 특별한 사건이라기보다, 선발이 흔들릴 때 흔히 나타나는 팀의 전형적인 붕괴였다. 그래서 내년 롯데의 첫 번째 과제는 간단하다. 선발이 버텨줘야 한다. 더 정확히는, 선발이 “매주 1승을 가져오는 팀”이 아니라 “매주 2번은 경기를 정상적으로 시작하게 하는 팀”이 되어야 한다.
로드리게스와 비슬리라는 이름이 팬들에게 아직 낯설어도, 구단이 내세운 키워드는 확실하다. 둘 다 150km 후반대의 빠른 공을 던지는 오른손 투수다. 요즘 KBO에서 빠른 공 자체가 희귀한 무기는 아니지만, ‘빠른 공을 꾸준히 스트라이크로 넣는 투수’는 여전히 귀하다. 더구나 두 선수는 일본 무대 경험이 있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KBO 외국인 투수 영입에서 자주 나오는 실패 공식이 있다. 공은 빠른데, 스트라이크가 안 들어오고, 경기 운영이 안 되고, 1회부터 투구 수가 불어나 4~5이닝도 버겁게 끝나는 패턴이다. 일본에서 시간을 보낸 투수들은 대체로 이 부분에서 한 번 걸러진다. 물론 NPB에서 잘했다고 KBO에서 무조건 잘하는 건 아니다. 다만 아시아 야구 특유의 리듬, 타자들이 노리는 포인트, 끈질긴 승부에 대한 경험이 있다는 건 분명 플러스다.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는 법’을 이미 배운 선수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구단 설명을 보면, 로드리게스는 투구 동작에서 타자를 속이는 요소가 있고, 스트라이크존을 폭넓게 활용하는 유형이라고 했다. 이 말은 결국 ‘구위만 믿고 던지는 투수’가 아니라 ‘생각하면서 던질 줄 아는 투수’를 기대한다는 뜻이다. KBO에서 외국인 선발이 성공하려면, 힘보다 먼저 필요한 게 이 부분이다. 빠른 공을 던질 수 있어도, KBO 타자들이 한두 번 보고 나면 대응은 생각보다 빨리 끝난다. 그 다음부터는 코스와 타이밍 싸움이다. 로드리게스가 정말로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쓰면서도 볼넷을 줄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계산이 선다.

비슬리는 또 다른 결의 카드다. 땅볼 유도 비율이 높고 장타 억제에 강점이 있다는 설명이 붙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롯데가 원하는 그림과 딱 맞아떨어진다. 사직에서든 원정에서든, 롯데가 매년 고생하는 구간은 ‘한 방’이다. 장타는 연패를 부른다. 특히 승부처에서 홈런 한 방이 나오면 팀 분위기가 휙 꺾인다. 땅볼을 많이 유도하는 투수는 화려하진 않아도 연패를 끊어주는 힘이 있다. “오늘은 6이닝 2실점이면 됐다” 같은 경기 운영이 가능해진다. 팬들이 바라는 것도 결국 이런 안정감이다. 매번 8-7로 이기는 야구보다 4-2로 이기는 야구가 훨씬 오래 간다.

여기에 레이예스 재계약은 롯데가 ‘확실한 것 하나는 놓치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레이예스는 지난 2년 동안 성적도 성적이지만, 무엇보다 아픈 날이 적었다. 외국인 타자에게서 가장 고마운 덕목이 바로 이 ‘꾸준함’이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팀은 예기치 못한 변수를 만나는데, 외국인 타자가 매일 라인업에 이름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도 감독은 숨을 돌릴 수 있다. 게다가 레이예스는 수비에서도 팀에 도움이 되는 편이고, 팀 분위기에서도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타입으로 보인다. 내년 롯데가 반등한다면, 그 출발점은 ‘레이예스가 평소처럼 해준다’는 전제 위에 세워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장밋빛만 말할 수는 없다. 롯데의 겨울이 조용했던 만큼, 이 외국인 3인방의 성공 여부가 내년 분위기를 거의 결정할 수도 있다. 외국인 투수 둘이 동시에 기대에 못 미치면 플랜B가 빠르게 닳아버린다. 시즌은 길고, 교체는 쉽지 않다. 또 한 가지는 “구속”이라는 단어에 대한 착시다. 빠른 공이 있다고 해서 매 경기 강해지는 건 아니다. 컨디션이 떨어지는 날에도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 위기에서 볼넷을 내주지 않는 담력, KBO 타자들과의 두 번째·세 번째 승부에서의 조정 능력이 결국 성패를 가른다. 로드리게스와 비슬리가 이 숙제를 얼마나 빨리 풀어내느냐가 중요하다.

그럼에도 이번 선택이 반가운 이유는, 최소한 롯데가 문제를 모른 척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지난 시즌이 왜 무너졌는지, 어떤 구멍을 먼저 막아야 하는지, 구단이 판단을 내리고 실행했다. FA 시장에서 화려한 이름을 데려오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 한 겨울은 아니다. 오히려 롯데는 “가장 필요한 곳에 외국인 슬롯을 몰아넣는” 방식으로 승부를 걸었다. 이런 승부수는 맞으면 크게 웃고, 틀리면 크게 아픈 전략이다. 그래서 더 팬들의 마음을 건드린다. 내년 봄, 사직에 다시 기대가 차오르려면 결국 마운드에서 답이 나와야 한다. 로드리게스와 비슬리가 그 답을 던져줄 수 있을까. 레이예스가 변함없이 타선을 끌어줄 수 있을까. 롯데의 2026년은 지금 이 세 장의 카드 위에서 시작된다.
Copyright © 구독과 좋아요는 콘텐츠 제작에 큰 힘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