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기념일마다 아내는 아무런 설명도 없이 단정한 옷차림으로 혼자 집을 나섰다.
내가 근사한 식당을 예약하겠다고 제안해도 아내는 항상 일을 핑계 대며 조용히 외출을 감행했다.
올해로 마흔 번째 맞이하는 기념일에도 아내가 정성스럽게 포장한 상자를 들고 나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뒤를 쫓았다.

택시를 타고 아내의 뒤를 따라 도착한 곳은 시내 외곽에 위치한 작고 오래된 주택가였다.
골목길 끝에 있는 단독주택 앞으로 걸어간 아내는 담장 너머를 한참 동안 따뜻하게 바라보았다.
인터폰을 누르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이 나와 반갑게 아내의 손을 잡으며 마당으로 맞아들였다.

열린 대문 사이로 어르신이 아내에게 내 남편이 사업을 다시 일으킨 소식을 들었다며 감사 인사를 건넸다.
40년 전 젊은 시절 내가 사업 실패로 부도를 맞았을 때 선뜻 거금을 빌려주고 사라졌던 옛 은인의 집이었다.
아내는 내가 자존심 때문에 은인을 찾지 못하는 것을 알고 매년 대신 찾아와 정성을 전해왔던 것이다.

마당 한쪽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가만히 듣던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져 한동안 걸음을 떼지 못했다.
아내는 남편이 여전히 당신을 존경하고 있으며 매년 기념일마다 은혜를 잊지 않고 있다는 말을 전했다.
내 자존심을 지켜주면서도 가장 중요한 은혜를 40년 동안 홀로 갚아온 아내의 깊은 마음이 가슴을 울렸다.

나는 마당으로 들어가 40년 만에 은인 앞에 고개를 숙이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은인은 내 손을 잡으며 훌륭한 아내를 두었으니 당신은 이미 세상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미소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내 삶을 묵묵히 받쳐준 아내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