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 성심당과 계룡문고

온라인·원도심 가속화 등 어려움에
30여년만에 폐업한 대전 향토 서점
폐허 공간서 수습한 거래 책 13권뿐
빵집 가보니 수백명 건물 휘감은 줄
출판사 남은 과제는 잘 죽는법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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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독서의 계절이다. 폭염에 지친 심신을 책의 향기로 달래려는 듯 전국의 지자체에서 책축제와 지역독서대전이 열렸다. 압권은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다. K-컬처의 화룡점정이라 할 만한 쾌거다. 명실공히 대한민국은 김구 선생이 소원했던 대로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문화강국으로 우뚝 섰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는 우스갯소리가 정겹다.

와중에 안타까운 일도 있었다. 책과 빵의 운명이 극명하게 교차했다. 결과적으로 빵은 살아남았고 책은 죽었다. 성심당 대전역점 임대계약 연장과 계룡문고 폐업에 관한 이야기다. 특정 지역기업의 흥망을 이야기하려는 게 아니다. '지금, 여기'의 슬픈 현실이 오롯이 드러난 사례로 볼 일이다.

2년 전 독서문화상 대통령상 후보에 올랐었다. 잠시 설렜고 은연 기대했지만 허사였다. 심사과정에서 필자의 이름은 거론조차 되지 않더라고, 심사에 참여했던 모 인사가 알려줬다. 자존심이 상했지만, 수상자의 이름을 듣는 순간 곧바로 수긍했다. 2022년 독서문화상 대통령상 수상자는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였다.(참고로 필자는 이듬해 독서문화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지난 9월 계룡문고가 문을 닫았다. 30년을 이어온 대전 유일의 향토 서점이, 공교롭게도 대통령상을 수상한 지 2년만에 폐업하고 만 것이다. 계룡문고는 단순히 책만 파는 곳이 아니었다. 연중 학생 견학 프로그램과 북콘서트를 여는 등 문화공간으로서 지역의 독서문화를 이끌어왔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지역서점인 계룡문고는 온라인서점과 대형서점의 공세, 원도심 공동화 현상의 가속화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동선 대표는 "서점을 생명처럼 여겼고, 어떤 방식으로든 살려보려고 몸부림쳤지만 더는 어쩔 수 없는 한계점에 도달해 30여 년 영업을 종료하게 되었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비슷한 시기, 대전의 또 다른 향토기업 성심당이 대전역에서 영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다는 소식도 날아왔다. 코레일유통이 감사원의 지적을 근거로 대전역사 입점 업체 임대료 인상 계획을 발표하자 성심당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무리한 인상안이라며 여론전을 펼쳤고, 급기야 문체부 장관까지 나서서 문제 해결을 위해 도울 방법을 찾아보겠다고 약속했다. 정부의 압박과 여론에 떠밀린 코레일유통은 결국 애초의 인상 계획을 철회했다.

연 매출 1천억원이 넘는 성심당의 임대료 문제에는 정부까지 나섰던 반면, 계룡문고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지역 언론에서 여러 차례 보도했지만, 정부도 지자체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몇몇 시민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성심당과 계룡문고의 명암이 교차했다. 성심당 대전역점에서 줄을 서서 빵을 사는 사람들에겐 기쁜 소식일 것이다. 그러나 계룡문고의 문화프로그램을 좋아했던 사람들, 책을 납품했던 출판인들, 30여 년 동안 서점에 인생을 걸었던 이동선 대표는 실의에 빠지고 말았다.

폐업 직후 계룡문고와 거래했던 출판사들이 속속 매장의 남은 책을 수거해갔다. 폐허가 된 서점엔 한껏 품었던 자식(책)을 떠나보낸 늙은 어미의 빈 가슴처럼 속이 텅 빈 책장들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남은 책을 수거하기 위해 서점을 방문했던 한 출판인(정순구 '역사비평사' 대표)이 그 처연한 모습을 절절하게 묘사했다.

'주말에 계룡문고로 내려가 폐허가 된 공간에서 남은 책을 수습해 왔는데 이십여 년 거래에 남은 건 딱 13권. 영혼의 양식은 이미 상했으니 육신의 배나 채워볼까 하고 인근 그 빵집에 갔더니 수백 명이 건물을 뱀처럼 휘감으며 줄을 서 있다. 책의 유골함 같은 작은 상자 하나를 안고 올라오는 내내 지역 서점이나 작은 출판사에게 유일하게 남은 과제는 잘 죽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소회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최준영 (사)인문공동체 책고집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