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상수배범 고라니

이 영상을 보라. 고라니가 바다로 보이는 물 속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다. 산, 공원, 도로에 이어 이젠 바다에서까지 출몰하는 고라니 유니버스다.

얼마전 고라니 목격담 설문을 올렸는데, 참여한 왱구님 가운데 80%가 고라니를 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특히 군 시절이나 도로에서 운전하다 갑툭튀하는 고라니 때문에 놀란 적이 많다고.

밤마다 특유의 괴성으로 사람 놀래키는, 민폐 갑인 고라니, 사냥이 가능한걸까? “고라니를 사냥하면 안 되는지 알아봐달라”는 의뢰가 들어와 취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고라니는 사냥해도 된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

사냥하면 되죠. 유해조수로 지정돼 있으니까 사냥할 수 있습니다.

사실 고라니 자체는 멸종위기 동물이다. 국제자연보전연맹 지정 멸종위기종인 데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도 지정 보호 야생생물로 지정돼 있다.

그래서 충남 서천에 있는 국립생태원 사슴생태원에서도 고라니를 보호 중이다. 그런데도 고라니 사냥이 가능한 건고라니가 멸종 위기종인 동시에 유해야생동물이기 때문.

고라니는 어쩌다 두 개의 타이틀을 동시에 석권한 걸까? 일단 우리나라는 뚜렷한 상위 포식자가 없어서 고라니가 살기 좋은 환경이다.게다가 고라니는 수명도 길고 새끼도 많이 낳아서 유독 국내 개체 수가 많아졌다고.

문제는 고라니가 농가에 주는 피해가 상당하다는 것. 2023년도 고라니가 농작물에 끼친 피해 금액만 해도 약 12억원에 달한다

얘네들은 구황작물은 물론 벼, 채소, 과일도 마구 먹어치운다. 이렇다 보니 환경부는 고라니를 수렵 가능 대상이라고 법으로 지정까지 해놨다.

근데 아무나 고라니는 잡을 수 있는 건 아니다. 환경부에 직접 물어봤는데, 특정 조건이 갖춰져야 가능하다. 일단 지자체의 포획허가를 받아야 한다. 근데 이 허가가 상당히 까다로운데, 포획기간, 포획지역, 포획수량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일단 고라니 같은 유해야생동물이 재산상 피해를 끼치면 가해동물, 피해대상, 피해정도와 금액을 기재한 포획허가신청서를 지자체에 내야 한다. 그러면 지자체에서 피해 상황과 개체 수를 조사한다.

만약 피해가 상당할 경우 지자체가 유해야생동물의 포획기간과 지역, 수량의 적정성을 검토한 뒤 포획허가증을 발급하고,그제서야 비로소 고라니 사냥이 가능하다.

그렇다고 고라니 피해자가 고라니를 직접 응징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

지자체 단체장이 모집 공고를 냅니다. 지역 엽사를 선발하는데 5년 이상 수렵 경험이 있는 자, 결격 사유가 없는 자 이렇게 해가지고 허가 사항에 모집 공고를 합니다. 그러면 이제 지역 엽사들이 신청서를 내는 거죠. 대체적으로 25명에서 30명 정도를 선발해서 (수렵을)합니다.

정리하면, 고라니를 직접 사냥하려면 경험 많은 수렵인이어야 한다. 노련해서만 되는 건 아니고, 엽총, 공기총을 다루는 1종 수렵 면허와 덫을 다루는 2종 수렵 면허 둘다 갖고 있어야 한다.

또 포획 실적으로 줄을 세워 지자체가 뽑는 인원 안에 포함돼야 고라니 사냥단에 들 수 있다. 고라니 레이드 컷이 참 높긴 하다.

수렵인이 아니더라도, 가끔 특수하게 포획단으로 선발되는 경우도 있는데,주로 학술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다.

[야생생물관리협회 관계자]

그 사람이 한 (경력이) 2년밖에 안 됐어도 예를 들어서 학술 연구용으로 고라니 시료를 피도 빼서 검사도 하고 진드기도 잡고 골수도 빼고 역학조사 하는 것들이 있어요.

이렇게 유해야생동물 고라니를 잡으면 포상금도 받을 수 있다.고라니 한마리 당 대략 3만원에서 5만원 정도의 포상금이 나온다고.

그렇다고 고라니 사냥으로 떼돈을 벌 수는 없다. 나름 멸종위기종이라 인당 하루 3마리 정도가 최대 사냥 가능 범위고, 포획기간 동안 최대 50마리에서 100마리 정도만 사냥해 개체 수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취재하다가 알게 된 건데, 이렇게 잡은 고라니는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전문 업체가 와서 ‘렌더링(Rendering)’ 작업을 한다.렌더링은 동물 사체를 고온 열처리해서 비료나 사료로 만드는 것이다.

예전에는 사체를 그냥 매립했지만, 환경 오염 문제 때문에 이런 방식으로 바꿨다고. 조금 잔인하긴 한데, 고라니는 가죽도 쓸모없고, 고기도 누린내가 심하고, 심지어 맛까지 없어서 달리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이 없다.

합법적인 사냥으로 개체 수를 조절해도 어디서나 출몰하는 민폐갑 고라니. 지금은 골칫덩이지만 환경이 좀 나아져서 사람과 함께 잘 살 수 있는 방안이 나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