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로(JINRO)'가 현지인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첫 해외 시장. 하이트진로는 그 상징적 무대로 필리핀을 주목하고 있다. 진로는 이제 한식당을 넘어 편의점, 마트, 온라인 쇼핑몰, 카페와 칵테일바까지 현지의 다양한 일상 공간에 자리 잡았다.
하이트진로는 이 흐름을 기반으로 2025년을 ‘진로 대중화 전략’의 전환점으로 삼았다. 필리핀을 교두보 삼아 동남아 전역으로 진로의 브랜드 저변을 넓히고 다음 100년의 서막을 이곳에서 열고자 한다.
하이트진로는 21일 필리핀 '애드미럴 호텔 마닐라'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필리핀을 동남아 시장 확장의 전략적 교두보로 삼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2016년 ‘소주의 세계화’를 선언한 이후 지난해 창립 100주년을 맞아 ‘진로의 대중화’를 천명한 하이트진로는 필리핀의 성공 사례를 중심으로 동남아 시장 전반으로 전략을 확장할 계획이다.
앞서 회사는 2030년까지 해외 소주 매출 5000억원 달성을 목표로 설정했는데 필리핀 시장에서는 지속적인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인규 대표이사(사장), 국동균 필리핀 법인장, 장인섭 총괄임원(전무)을 비롯한 현지 주요 거래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1968년 첫 해외 수출을 시작한 하이트진로의 소주 세계화 전략은 단순한 수출 확대에 그치지 않는다. 회사는 '소주=진로'라는 브랜드 인식을 세계 소비자에게 자연스럽게 심어주고 한국 소주의 감성과 문화를 현지 일상에 스며들게 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고 있다. 이를 위해 외국 소비자에게 발음이 익숙한 ‘진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웠다. 또 과일소주와 일반소주를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운영하며 제품 접근성과 선택지를 동시에 넓혔다.
이 전략이 실제로 효과를 거둔 대표적인 시장이 필리핀이다. 하이트진로는 2019년 마닐라에 현지 법인을 설립한 이후, 집중적인 현지화 전략을 펼친 결과 지난해 기준으로 필리핀 소주 시장 점유율 67%를 기록하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필리핀은 약 1억명의 인구를 보유한 세계 14위 규모의 시장으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주류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곳이다. 경제 성장과 K콘텐츠를 통한 한류 확산도 하이트진로의 성장 배경으로 작용했다는 평가다.
필리핀이 성공적인 현지화 사례로 꼽히는 배경 중 하나는 소비층의 변화다. 기존에는 교민 중심으로 형성됐던 진로 수요가 최근에는 현지 소비자 중심으로 옮겨가며 진정한 ‘대중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23년 기준 필리핀 내 재외동포 수는 3만4000명으로 10년 전보다 61% 줄었지만 같은 기간 하이트진로의 소주 수출은 약 3.5배 증가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은 41.7%에 달했다.
일반 소주를 선호하는 비중이 높아졌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21년까지만 해도 하이트진로의 필리핀 내 소주 판매 비중은 과일리큐르 제품이 61%를 차지했으나, 2024년에는 일반 소주가 68%로 역전됐다. 이는 과일 소주를 진입 장벽을 낮추는 ‘가교 제품’으로 활용한 전략이 효과를 거뒀다는 방증이자 필리핀 시장이 한국과 유사한 주류 문화로 수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남아 시장에서는 일반적으로 도수가 낮고 맛이 부드럽고 달콤해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 소주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편이다. 롯데칠성(새로), 무학(좋은데이) 등도 이러한 흐름에 맞춰 과일 리큐르 라인업을 강화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트진로가 도수가 높은 일반 소주를 앞세워 현지 시장에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는 점은 의미가 더욱 크다.
필리핀에서 진로의 대중화가 가능케했던 주요한 전략은 회사의 공격적인 유통 전략에서도 비롯됐다. 회사는 필리핀 전역으로 유통망을 확장하며 소주에 대한 접근성과 가시성을 동시에 끌어올렸다. 현지 최대 유통사인 PWS, SM그룹, 창고형 할인매장 S&R, 세븐일레븐(전국 약 4000개 점포) 등과 협력하며 전국 단위 유통망을 구축했다.
향후에는 단순 진열을 넘어 실제 음용으로 이어지는 ‘경험 중심’ 마케팅을 강화할 방침이다. 샘플링, 시음 행사 등 소비자 체험 기반 프로모션을 확대해 브랜드 인지도를 구매로 연결하겠다는 것이다.
국동균 필리핀 법인장은 “현재 진로 제품은 필리핀 대부분의 가정 채널에 진열돼 있지만, 진정한 대중화는 현지 소비자들이 자발적으로 진로를 찾아 구매하는 단계에 도달해야 완성된다”며 “현지 식당 등 로컬 채널에서도 자연스럽게 소주가 소비될 수 있도록 유통과 브랜드 경험을 더욱 확장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마닐라=이유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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