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방통위 출신 인사들, 로펌·포털·통신사로 대거 이직
8년 간 로펌행만 16명...규제 리스크 커지자 통신사 이어 포털의 공무원 영입도 늘어
취업 심사 제한적...로펌엔 느슨하게 적용, 전문성 입증해 통과하기도
[미디어오늘 금준경, 박서연 기자]
방송·통신·ICT 업무를 담당한 공무원들의 로펌과 포털, 통신사 이직이 잇따르고 있다. 통신·ICT 관련 법적 분쟁이 늘고 규제 논의가 이어지면서 규제기관 출신 인사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이해상충 소지가 있지만 취업승인을 받기는 어렵지 않다.
미디어오늘이 방송통신위원회 출신 공무원들의 2017년 이후 재취업 현황을 분석한 결과 로펌과 통신사, 포털 이직이 두드러졌다. 방통위·정통부 과장급 이상 출신으로 로펌에 재취업한 인사는 16명, 통신사와 포털에 이직한 인사는 6명으로 나타났다.
방통위는 전직 대변인 3명이 나란히 로펌에 재취업했다. 방통위 통신시장조사과장, 방송정책기획과장 등을 역임한 장봉진 전 대변인은 지난해 율촌에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방통위에서 통신시장조사과장과 방송지원정책과장 등을 거친 진성철 전 대변인은 방통위 일부 업무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이관된 이후 개인정보위로 옮겼다가 지난해 퇴직해 현재 광장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방통위 이용자정책과장, 방송기반총괄과장 등을 역임한 배춘환 전 대변인도 2022년 광장 고문에 영입됐다.
로펌별로 보면 김앤장법률사무소, 클라스, 화우, 율촌이 복수의 방통위 출신 인사를 영입했다. 특히 김앤장은 장차관급에 국장급은 물론 실무진까지 영입했다.
2017년 이후 김앤장은 △오남석 전 방통위 이용자정책국장(2017년) △김준상 전 방통위 방송정책국장(2019년) △우영규 전 방통위 융합정책과 서기관(2019년) △이기주 전 방통위 상임위원(2020년) △김용수 전 과기정통부 차관(2021년) △박민하 전 과기정통부 디지털사회미래과장(2022년)을 영입했다. 개인정보보호 업무를 담당한 방통위 5급 실무자도 2018년 김앤장이 전문위원에 영입했다. 5급은 취업심사 대상이 아니다. 이들은 모두 방통위에서 업무를 했던 이력이 있다.
조사 기간 이전에도 김앤장은 박민철 방통위 변호사, 노준형 전 정통부 장관,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그룹장 출신인 정진한 박사 등 관련 분야 인사들을 지속적으로 영입했다.
로펌이 방통위·정통부 출신 공무원을 선호하는 이유는 관련 소송 건수가 급증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글, 메타, 넷플릭스 등이 국내 사업자와 소송을 겪거나 방통위 등 제재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늘었다. 세기의 재판으로 불린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 사건에 메타를 대리한 김앤장은 방통위 제재 무효 판결을 이끌어내 '김앤장의 승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김앤장은 TMT(Technology·Media·Telecom) 조직을 별도로 두고 있으며 애플, 아마존, 넷플릭스, 구글, 메타의 소송 및 자문 업무를 맡았다.
다른 로펌들 역시 통신·ICT 사건에 공을 들이며 관련 인사 영입을 늘리고 있다. 페이스북 접속경로 변경 사건 당시 방통위 제재와 재판을 담당했던 진성철 전 통신시장조사과장도 현재 법무법인 광장에서 고문으로 일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 때만 해도 방통위, 정통부 출신 관료들의 통신사행이 두드러졌는데 최근엔 포털로 이직하는 경향도 나타난다. 포털 역시 해외 IT기업과 마찬가지로 방통위 등 규제 가능성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언론계, 법조계 출신뿐 아니라 방통위, 정통부 출신 인사들을 영입한 것으로 보인다.
방통위 운영지원과 등에서 근무를 한 후 미래창조과학부 뉴미디어과장을 맡아 유료방송 정책 방안을 마련한 손지윤 전 과장은 2019년 LG경영개발원 이직 후 LG유플러스로 옮겨 상무를 지냈고 2021년 네이버로 이직해 정책전략총괄이사를 맡고 있다. 최근 김태규 방통위원장 직무대행의 네이버 현장방문 간담회 당시 네이버 임원진 중 한명으로 참석했다. 이광용 전 방통위원장 비서실장도 2021년 네이버 책임리더로 자리를 옮겼다. 카카오는 2021년 우영규 김앤장 고문을 정책협력실장으로 영입해 대외협력 업무를 맡겼다.
2017년 이후에도 통신3사 이직이 잇따랐다. 이 시기 통신사업자들이 소속된 단체나 협회로 이직한 정통부 공무원은 10명이 넘는다. 통신사 영입의 경우 처음엔 계열사나 연구소로 발령을 낸 다음 추후 통신 관련 업무로 옮기는 상황이 반복된다.
퇴직공직자는 별도의 취업심사를 받지만 취업제한 조항은 느슨하다. 공직자윤리법에 따라 4급 이상 공무원은 퇴직 후 3년간 퇴직 전 5년 동안 소속됐던 부서나 기관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 있는 기관에 취업하려면 윤리위 승인을 받아야 한다. 2011년 공직자윤리법 개정에 따라 로펌도 취업심사 대상이 됐지만 영향력 행사 가능성 및 업무 관련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이유로 대부분 허용된다. 5급 이하 공무원은 재취업 심사를 하지 않는다.
우영규 카카오 정책협력실장은 2021년 카카오 입사 과정에서 처음엔 '취업제한' 결정을 받지만 재심사 결과 취업이 허용됐다. 첫 심사 때는 카카오에서 할 업무가 공무원 재직 당시 부서 업무와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불허됐는데 '전문성이 입증되는 경우' 등의 예외조항 적용을 통해 심사를 통과했다. 카카오는 규제 위험과 사법리스크 등이 커지는 가운데 국회, 검찰청, 경찰청,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인사들을 잇따라 영입했다.
공무원도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고 전문성을 발휘하는 이직을 막을 순 없지만 규제 업무를 맡은 공무원들이 퇴직 직후 로펌이나 업계로 옮기는 사례가 늘면서 우려도 커지고 있다. 방통위 입장에서 사업자 불법행위 조사와 제재 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이 로펌이나 기업으로 옮기게 되면 조사와 제재의 허점을 노출할 수 있다. 방통위, 정통부 공무원 네트워크가 한정적인 상황에서 인맥을 통해 로비할 여지도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로펌이나 업계에선 과거엔 주로 고위 직급을 찾았지만 최근에는 과장급은 물론 실무자들도 찾고 있다. 업무 경험과 인맥 자체를 자산으로 보는 것이다. 이미 로펌으로 간 선배 공무원들이 끌어주기도 한다”며 “공무원의 직업 만족도가 떨어지는 상황도 맞아떨어지는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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