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율 강조한 육군, 면도 지침 강화… “지키지 않으면 전역”
미국 육군이 면도 규정을 대폭 강화하면서 규정 위반 시 장병을 전역시키겠다는 방침을 내놔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이번 조치가 흑인 장병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주면서 인종 차별적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제기된다.
뉴욕타임스(NYT)는 7월 9일(현지시간) “미 육군이 새로운 지침을 통해 일정 기간 내 수염을 깎지 않으면 전역 대상이 되도록 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존에 피부 질환 등 의료적 사유로 면도를 면제받았던 장병들에게까지 적용되는 것으로, 실질적 강제조치라는 비판이 뒤따른다.

“가성모낭염 무시한 처사”… 흑인 장병 60% 면도 곤란
가장 큰 논란은 ‘가성모낭염(pseudofolliculitis barbae)’을 앓는 장병들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 질환은 수염이 피부 안으로 파고들며 염증과 통증을 유발하는 것으로, 특히 흑인 남성에게서 발생 빈도가 높은 피부 질환이다. 미국 피부과학회에 따르면 흑인 남성의 60% 이상이 해당 증상을 경험하고 있으며, 미군 내 흑인 장병 중 약 45%가 가성모낭염 진단을 받은 상태다.
이에 따라 그간 군은 이들을 대상으로 면도를 면제하거나 면도 빈도를 조절해왔다. 그러나 이번 개정으로 상당수 장병이 의료면제를 잃게 되면서 강제 전역 또는 자발적 이탈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군 “규율과 준비태세를 위한 조치”… 예외는 종교적 사유뿐
미 육군은 이러한 비판에 대해 군 조직의 일관성과 규율 유지를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육군은 공식 성명을 통해 “이번 면도 규정 강화는 군 규율 문화를 강화하고, 전투 준비태세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불가피한 결정”이라며 “군의 복무는 통일성과 일관성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예외적 상황은 최소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종교적 사유에 따른 수염 유지 등은 예외로 인정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의료적 사유에 대한 면제는 매우 엄격한 기준으로 제한되며, 장기적인 면제는 불허되는 방향으로 조정된 상태다.

흑인 커뮤니티와 인권단체 “사실상 인종차별적 정책” 반발
흑인 장병 비율이 높은 육군 내에서 이번 조치는 곧바로 인권 문제로 번지고 있다. 흑인 인권단체와 군 인권 옹호 단체들은 “면도 규정이 모든 인종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더라도 실제로 피해를 받는 층이 특정 인종으로 집중될 경우, 이는 간접적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며 강력히 반발했다.
한 흑인 장병은 NYT와의 인터뷰에서 “수염을 밀면 피부에 통증과 흉터가 생기고, 그 때문에 매일이 고통이다. 그런데도 규정을 이유로 전역을 강요하는 것은 정의롭지 않다”고 토로했다. 일부 장병은 해당 조치로 인해 심리적 위축과 자존감 저하를 겪고 있으며, 군복무 지속 의지마저 흔들리고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국제적 흐름과 역행… 서방 동맹국들, 수염 허용 추세
이번 미 육군의 조치는 주요 서방국들의 병영 문화와는 상반된 방향으로 보인다. 실제로 영국군은 지난해 젊은 세대의 모병을 늘리기 위해 ‘수염 금지’ 규정을 전면 폐지했고, 독일·덴마크·벨기에·캐나다 등도 장병이 수염을 기를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수염이 병영 규율에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장병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군 복무 환경을 개편하고 있다. NYT는 “미군은 아직도 전통적 군기 중심 문화를 고수하는 반면, 유럽국가들은 젊은 세대의 병영 적응과 다양성 존중을 우선시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규제 강화 움직임 계속될 듯… 해병대도 면도 기준 강화
육군뿐 아니라 미 해병대 역시 지난 3월 유사한 면도 규정을 발표했다. 당시 해병대는 “외모의 일관성과 신체 단정성은 전투력의 상징”이라며 면도 기준을 강화했고, 피부 질환에 따른 예외조항도 기존보다 엄격하게 제한했다. 이처럼 국방부 차원의 전반적인 규율 재점검 흐름 속에서 향후 공군, 해군까지도 유사한 규제를 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실제로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은 최근 “복무 기준 전반을 재검토하고 있으며, 신체적 단정성과 외모 기준도 국가 안보에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러한 규제가 복무자 유치와 병력 유지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