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도설] 꽃사슴 탈주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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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청은 1997년 10월 꽃사슴 26마리를 데려왔다.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태종대공원에 꽃사슴을 풀어 관광객을 유인하려는 의도였다.
문화재위원들이 부산시 지정문화재인 태종대공원의 현상변경(꽃사슴 방목)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4년 전 폐업한 부산 삼정더파크 동물원에서 암컷 꽃사슴 한 마리가 지난 9일 나무 우리 틈새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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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청은 1997년 10월 꽃사슴 26마리를 데려왔다.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태종대공원에 꽃사슴을 풀어 관광객을 유인하려는 의도였다. 이틀도 안돼 변고가 발생했다. 자연 방사를 앞두고 사육장에서 ‘야생 적응’ 훈련을 하던 3마리가 사라진 것이다. 태종대관리사업소는 1.5m 높이 철조망을 뛰어넘어 달아난 것으로 추정했다. 남겨진 꽃사슴들은 2년 가까이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했다. 문화재위원들이 부산시 지정문화재인 태종대공원의 현상변경(꽃사슴 방목)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태종대공원의 희귀 식물군이 훼손될 우려가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영도구청은 할 수 없이 민간에 꽃사슴을 분양했다. 무지한 행정으로 예산과 인력을 낭비한 셈이다.
지난해 3월에는 서울 어린이대공원에서 키우던 얼룩말 ‘세로’가 탈출해 주택가를 배회했다. 골목길에서 배달 노동자와 마주친 세로 사진이 SNS를 통해 확산하자 “합성이냐”는 댓글이 많이 달렸다. 사육사들은 “부모를 잃고 방황하던 세로가 우리를 벗어나” 잠시 자유를 만끽했다고 설명했다. 2018년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탈출한 퓨마와 지난해 경북 고령군의 한 농원에서 도망친 암사자가 사살됐을 때는 “평생 갇혀 지내다 총 맞고 죽었다”는 동정론이 일었다.
4년 전 폐업한 부산 삼정더파크 동물원에서 암컷 꽃사슴 한 마리가 지난 9일 나무 우리 틈새로 탈출했다. 2014년 개장한 삼정더파크 동물원은 경영난으로 적자가 쌓이자 2020년 문을 닫았다. 코끼리 기린부터 호랑이 사자 흑표범까지 500여 마리는 여전히 남아 있다.
삼정더파크 측은 현재 부산시와 송사 중이다. “동물원 매수 요청을 하면 부산시가 매입한다는 내용의 매수청구협약을 맺었는데 부산시가 이행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1·2심은 부산시가 승소했다. 대법원은 1년 8개월이 넘도록 판단을 내리지 않고 있다. 기나긴 소송과 ‘재판 지연’ 때문에 부산 유일의 동물원이 4년째 관람객을 만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대법원 사법연감에 따르면 민사합의사건 1심 판결이 나기까지 걸리는 기간은 2018년 297.1일에서 2022년 420.1일로 120일가량 늘어났다.
꽃사슴 탈출 사실이 알려지자 “동물원 관리가 제대로 되고 있느냐”는 우려가 나온다. 한편에선 “이제는 품종 보존 목적이 아닌 동물원은 폐지할 때가 됐다”는 주장도 있다. 그나저나 달아난 꽃사슴은 어디로 갔을까. 자연에서 자유를 즐기고 있을까. 아니면 낯선 환경에서 두려워하고 있을까.
이노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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