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and History] 순간을 영원으로 바꾼 세기의 기록자, 라이카

현대 사진의 역사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라이카다. 카메라와 사진의 역사를 바꾼 라이카의 첫 번째 카메라 ‘라이카 I’이 출시 100주년을 맞았다.
우르-라이카를 개발한 오스카 바르낙.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소형 카메라의 등장
라이카 카메라는 독일 광학기기 제조업체 ‘에른스트 라이츠 옵티셰스 베르케’의 엔지니어였던 오스카 바르낙에 의해 탄생했다. 여가 시간에 풍경 사진 촬영을 즐겼던 그는 천식을 앓고 있어 크고 무거운 대형 카메라를 휴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소형 카메라를 구상하기 시작한 그는 1914년 영화 제작에 활용하던 35mm 필름 포맷의 카메라를 제작하는 데 성공한다. 이 카메라는 ‘최초’라는 의미의 접두어 ‘우르(Ur)’를 붙여 ‘우르-라이카(Ur-Leica)’로 이름 붙여졌다. 세계대전의 여파로 우르-라이카는 프로토타입 개발 9년 만인 1925년, ‘라이카 I’이라는 이름으로 시장에 첫선을 보였다. 최초의 35mm 풀프레임 포맷 소형 카메라인 라이카 I의 등장으로 일상을 보다 자유롭게 기록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됐다.

1914년 개발된 우르-라이카.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1925년 출시된 라이카I.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Info. 현미경 회사에서 출발한 라이카
라이카의 전신은 1849년 칼 켈너가 설립한 현미경 제조사 ‘옵티셰스 인스티투트’다. 칼 켈너는 회사 설립 후 광학 논문을 발표하는데, 과학자 사이에서 그의 연구가 주목받으면서 옵티셰스 인스티투트는 매우 정밀한 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광학 기술과 렌즈의 품질은 이 시기부터 이미 입증된 셈이다. 이후 에른스트 라이츠 1세가 합류하면서 사명이 ‘에른스트 라이츠 옵티셰스 베르케’로 바뀌었다. 카메라 제조사이자 브랜드를 일컫는 ‘라이카(LEICA)’는 ‘라이츠의 카메라’(LEItz CAmera)라는 의미다.

1954년 공개된 M3.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라이카의 ‘정수’, M시리즈
1936년 오스카 바르낙이 세상을 떠난 뒤 라이카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렌즈를 여러 번 돌려 장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각도만큼 돌려 결속하는 새로운 방식을 채택했고,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뷰파인더의 배율이 조정되는 기능도 도입해 별도의 파인더 장착 없이도 사진을 빠르게 촬영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모든 기능이 탑재된 것이 바로 ‘전설의 카메라’라고 불리는 M3다. 1954년 독일 국제 사진 기재 전시회 '포토키나'에서 처음 공개된 RF 카메라 M3는 1966년 단종되기까지 22만 대가 팔리면서 세계적 인기를 끌었다. M3 특유의 가벼우면서 견고한 보디, 빠르고 편리한 사진 촬영 방식은 보도 사진을 촬영하는 작가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고, 이는 라이카라는 브랜드가 도약하는 발판이 됐다. M시리즈는 현재까지 라이카를 대표하는 카메라 라인업으로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Episode. 카메라 역사의 분기점이 되다
M3가 처음 공개된 '포토키나'에는 독일 업체뿐 아니라 일본 카메라 업체도 다수 참가했다. 현장에서 M3를 본 일본 업체들은 이 이상의 완성도를 지닌 RF 카메라 생산은 힘들 것이라고 판단하고, 렌즈를 통해 본 상이 그대로 찍히는 SLR 카메라 개발로 사업 경로를 수정했다. 당시 라이카가 보유하고 있었던 남다른 기술력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일화다.

라이카 카메라를 들고 전 세계를 누빈 사진작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alamy
로버트 카파가 촬영한 ‘노르망디상륙작전’. ⓒalamy

시대의 증인
라이카의 카메라는 ‘결정적 순간을 포착한다’는 카메라의 본질에 가장 충실한 도구다. 그 예시가 포토저널리즘이다. 어디든 지니고 다닐 수 있는 데다 내구성이 우수한 라이카 카메라는 오랫동안 사진기자들의 눈이 되어왔다. 라이카 카메라와 함께 세계를 누빈 사진작가로는 ‘포토저널리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종군 사진작가 로버트 카파 등이 있다.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의 생‘ 라자르 역 뒤에서’, 로버트 카파의 ‘노르망디상륙작전’ 시리즈뿐 아니라 베트남전쟁의 참상을 기록해 퓰리처 상을 수상한 닉 우트의 ‘베트남전쟁의 테러’ 등 사진작가들이 라이카 카메라로 기록한 이미지는 그 자체만으로 한 시대를 증언한다.

2024년 출시된, 뒷면에 화면이 없는 디지털 카메라 M11-D.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라이카의 첫 번째 디지털 RF 카메라 M8.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디지털 시대로의 대전환
라이카에도 위기는 있었다. 1990년대 말 디지털카메라의 성장으로 카메라 시장의 판도가 변하기 시작하면서 전통적인 필름카메라 제조사들은 변화의 직격탄을 맞았다. 2000년대 초반 라이카 역시 심각한 재정 위기에 직면하면서 부도 직전까지 내몰렸고,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회장은 라이카 카메라 특유의 감성과 디지털 혁신을 결합해 아날로그 감성을 구현하는 디지털카메라를 제작하기로 결정한다.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회장의 투자로 라이카는 2006년 라이카 M시리즈의 첫 번째 디지털 RF 카메라 M8을 내놓는다. M3 출시 이후 52년 만에 공개된 M8에는 코닥의 1030만 화소 센서가 탑재됐고, M시리즈 카메라의 렌즈와 호환되도록 설계됐다. 클래식한 디자인에 최신 디지털 기술을 접목한 M8은 소비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며 라이카의 새로운 도약을 알렸고, 라이카는 2011년 흑자 전환에 성공하면서 디지털 시대로의 대전환을 이겨낸다. 라이카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 평가한 세계 최대 사모펀드 운용사 블랙스톤 역시 라이카 지분 44%를 인수하며 기업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Leica Camera AG

Info. 라이카 마니아들의 천국
라이카는 그 역사와 감성으로 사진 전문가 사이에 두터운 팬덤을 형성했다. 안드레아스 카우프만 회장은 라이카의 첫 번째 디지털카메라 M8을 성공적으로 출시한 후, 2014년 독일 베츨라에 ‘라이츠 파크’라는 이름의 복합단지를 설립했다. 이곳은 라이카 마니아들에게 자유롭게 모여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한다. 라이카는 라이츠 파크에서 각종 전시와 공간 투어를 진행하며, 방문객들이 라이카의 유산과 브랜드 철학을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Leica Camera AG

본질에 집중하는 장인정신
라이카 카메라는 보디와 렌즈가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초고가 제품이다. 그러나 라이카 마니아들은 “가격으로는 라이카 카메라의 가치를 판단할 수 없다”라고 입을 모은다. 라이카 카메라는 단순한 촬영 도구가 아니라 장인의 손길이 깃든 작품에 가깝다. 한 대의 카메라는 100가지가 넘는 정교한 공정을 거쳐 제작되며, 60단계 이상의 철저한 검수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대부분의 과정은 숙련된 장인의 손을 거치는 수작업으로 이루어진다. 이런 과정이 라이카 카메라의 특별한 품질과 감성을 만들어낸다.

라이카는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디자인은 기능을 따른다’는 원칙을 지켜왔다. 필름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과정에서도 이 철학은 변하지 않았다. 불필요한 부분을 배제한 직관적인 디자인을 채택해 사용자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피사체에만 몰입할 수 있도록 했고, 디자인과 렌즈 호환성에서는 필름카메라의 유산을 계승하고 있다. 장인정신의 정수가 담긴 보디와 렌즈, 이들의 손길을 거친 제품이 발휘하는 탁월한 성능과 시대를 초월하는 감각적인 촬영 경험이 라이카의 가치를 완성한다.

‘2024 LOBA’에서 신인상을 수상한 마리아 구투 (Maria Gutu)의 ‘고향(Homeland)’시리즈 일부. ⓒLeica Camera AG

Info. 사진 예술의 후원자
라이카는 카메라 출시 이외에도 사진 문화의 전반적인 발전을 위해 여러 활동을 펼친다. 오스카 바르낙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며, 1979년부터는 ‘라이카 오스카 바르낙 어워드(LOBA)’를 개최하고 있다. LOBA에서는 매년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주제로 의미 있는 프로젝트를 기록한 작가에게 상을 수여해 전문 작가와 신인 작가를 지원한다. 이외에도 라이카 브랜드와 사진 장르의 발전에 공헌한 작가들에게는 공로상인 ‘라이카 명예의 전당 상’을 수여하며,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작가들의 사진 중 일부는 ‘올해의 라이카 사진’으로 선정하고 있다.

라이카 100주년을 기념해 출시된 액세서리 컬렉션.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라이카 브랜드 스토리가 담긴 라이카 워치 ‘ZM 2’. ⓒ라이카 카메라 코리아

100년을 넘어 미래로
라이카는 헤리티지가 담긴 브랜드 철학은 지키되,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며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을 추구한다. 2022년부터는 파나소닉과 새로운 카메라와 렌즈 제품, 차세대 소프트웨어를 공동 개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L² Technology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으며, 샤오미와의 협업을 통해서는 스마트폰 시리즈 탑재를 위한 프리미엄 광학렌즈를 설계했다. 그뿐 아니라 에르메스 등 명품 브랜드와의 한정판 컬래버레이션 카메라와 쌍안경을 출시해 마니아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기도 했다.

카메라가 아닌 새로운 제품군을 출시하는 실험적 시도도 이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스마트폰과 시계다. 2021년부터 2022년, 2024년에 걸쳐 라이카의 빨간 로고를 붙인 ‘라이츠폰’을 지속적으로 발매하며 스마트폰에서도 라이카 M렌즈의 룩을 완벽하게 재현했고, 수동 와인딩 기계식 무브먼트로 구동되는 손목시계를 출시해 ‘순간을 포착한다’는 브랜드 철학과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 라이카 카메라의 유산과 디자인에 대한 경의를 표했다.

변함없는 철학을 바탕으로 하는 라이카의 가치는 세대를 넘어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라이카’라는 이름은 이제, 역사적 유산에 새로운 기술을 더해 시대를 아우르는 브랜드의 상징이 됐다. 첫 번째 모델을 발표한 지 한 세기가 지난 지금도 라이카는 일상의 특별한 순간을 포착하며 새로운 시각언어를 만들어가고 있다. 시대의 충실한 목격자이자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서, 또 다른 100년을 향한 라이카의 도약은 이미 시작됐다.


ㅣ 덴 매거진 2025년 3월호
에디터 김보미 (jany6993@mcircle.biz)


Copyright © 저작권자 © 덴 매거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