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高에 직격탄 맞은 가계 살림…내년엔 더 커질 빈부격차 ‘경고음’

세종=김민정 기자 2022. 11.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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얇아진 주머니에…실질소득 감소 ‘금융위기’ 이후 최악
가구 4곳 중 1곳은 가계부 빨간 줄…이자 부담 ‘눈덩이’
직장인·자영업자, 흑자액·흑자율 동반 ‘마이너스’
3중 악재에 내년 ‘빈익빈 부익부’ 현상 가속하나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을 찾은 시민들이 장을 보며 오가고 있다. /연합뉴스

올해 들어 본격화된 고물가·고금리·고환율 등 3고(高) 현상으로 가계 경제가 직격탄을 맞았다. 가구 4곳 중 한 곳은 얇아진 지갑에 ‘적자 살림’을 꾸리고 있다. 직장인과 자영업자 모두 가구당 흑자액과 흑자율이 지난해보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물가가 가파르게 오르면서 가계 소득이 느는 것보다 지출이 더 가파른 속도로 증가한 것이 가계 살림을 더 어렵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소득 하위 20%는 생존을 위한 필수생계비 비중이 80%에 육박했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충격이 내년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면서 소득보다 지출이 증가하는 추세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필수 생계비 부담이 늘어나는 충격이 저소득층에 더욱 배가될 것으로 보인다. 물가 충격이 내년에는 빈부격차 확대로 전이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왔다.

서울 중구 명동의 빈 상점가를 지나치는 시민들. /연합뉴스

◇ 소비수준 그대로인데 얇아진 주머니…'금융위기’ 때만큼 실질소득 감소

20일 통계청이 발표한 가계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3분기(7~9월) 소비지출은 지난해 같은 분기와 비교해 6.2% 증가했지만, 물가 상승 영향을 뺀 실질 소비 증가율은 0.3%에 그쳤다. 소비수준은 사실상 그대로인데 주머니에서 빠져나가는 돈만 커졌다는 의미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86만9000원으로 지난해 같은 분기(472만9000원)보다 14만원(3%) 늘었다. 그러나 소득이 증가하는 속도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해 지출이 늘어나는 속도(6.2%)가 더 빠르게 나타났다. 소득 증가율에서 물가로 인한 요인을 제외한 실질소득은 2.8% 감소했다. 3분기 기준 실질소득 감소 폭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3.2%) 이후 가장 크게 나타났다.

실질소득은 감소했는데 가계 이자 부담은 대폭 커지면서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이 됐다. 한국은행의 급격한 기준금리 인상에 주택담보대출이나 학자금 대출 등 이자 비용은 가구당 19.9% 증가했다. 이진석 통계청 가계수지동향과장은 “금리가 오른 데다 주택담보 대출 비중이 커서 생긴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가구 4곳 중 1곳은 적자 살림을 꾸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3분기 처분가능소득은 가구당 월평균 385만원으로 1년 전보다 2.0% 증가하는 데 그쳤다. 물가상승과 거리두기 해제 영향으로 소비지출이 늘고 금리인상으로 이자 부담까지 높아지면서 가계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진 셈이다.

처분가능소득보다 소비지출이 더 많은 적자 가구도 전체 가구의 25.3%에 달했다. 4가구 중 1가구는 소득에서 세금과 공과금, 생활비 지출을 빼면 가계부가 ‘마이너스’인 셈이다.

그래픽=이은현

◇ 직장인·자영업자 모두 팍팍해진 살림살이…먹거리 구입도 ‘뚝’

직장인으로 대표되는 ‘근로자가구’와 자영업자로 대표되는 ‘근로자외가구’의 살림살이도 모두 어려워진 것으로 드러났다. 근로자가구와 근로자외가구는 3분기 실질흑자액과 흑자율이 모두 하락세를 기록했다.

근로자가구의 3분기 실질흑자액은 127만8000원으로 1년 전(143만2000원)보다 14만4000원 줄었다. 근로자가구의 흑자율은 32.4%, 근로자외가구의 흑자율은 24.5%로 1년 전보다 각각 2%포인트, 4.4%포인트 감소했다.

근로자가구의 소비지출도 1년 전보다 허리띠를 졸라맨 것으로 조사됐다. 근로자가구 실질소득은 506만6000원으로 지난해 3분기(531만5000원)보다 4.6% 감소했다. 소비지출도 267만3000원으로 지난해 3분기(273만6000원)보다 쪼그라들었다. 반면 근로자외가구의 실질소득과 소비지출은 소폭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픽=손민균

장바구니 물가가 오르자 소비지출 중 먹거리 구입부터 줄인 것으로 나타났다.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은 40만7000원으로 전년 같은 분기보다 5.4% 감소했다. 이는 2007년 4분기(-5.8%) 이후 역대 두 번째로 큰 감소 폭이다. 식료품 및 비주류음료에 대한 소비자물가지수를 반영한 실질 소비도 12.4% 줄었다.

특히 1분위 가구는 월평균 소득이 줄어들자 식료품 등 필수품에 대한 지출을 줄였음에도 생존을 위한 필수생계비 비중이 80%에 육박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1분위 가구의 월평균 처분가능소득은 3분기 기준 90만2000원인데, 이 중 71만3000원(79%)을 식비·주거비·교통비를 합친 필수생계비로 지출했다. 주로 병원비인 보건 지출까지 더하면 지출 비중이 97.1%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 지원금 끊기자 심해진 ‘빈익빈 부익부’…분배 양극화 내년에도 ‘먹구름’

물가가 올라 지갑이 얇아진데다 코로나19 지원금이 끊기자 상·하위 소득 격차는 더 극심해졌다. 고환율·고물가·고금리란 3중 악재에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이 1%까지 치닫는 가운데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가속화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온다.

올해 3분기 전체 소득분위 중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소득만 유일하게 줄어들었다. 1분위 월평균 소득은 113만1000원으로 1년 전보다 1.0% 줄어 같은 분기 기준 2018년(-9.6%) 이후 최대 감소 폭을 기록했다. 같은 기간 전체 가구의 소득은 3.0% 증가했고, 상위 20%(5분위) 가구 소득은 3.7% 오르면서 5개 분위 중 가장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그래픽=손민균

1분위 소득이 줄어든 이유는 지난해 3분기 하위 88%에 1인당 25만원이 지급됐던 상생 국민지원금이 끊겼기 때문이다. 4인 가구에 지급됐던 100만원가량의 지원금이 올해는 지급되지 않으면서 소득이 줄었다. 1분위의 경우 근로소득은 21.1%, 사업소득은 22.5% 늘었지만, 공적 이전소득이 15.3% 감소하자 전체 소득이 뒷걸음질 치게 된 셈이다.

소득 상위 20%와 하위 20% 분배 양극화는 더 심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5분위 소득을 1분위 소득으로 나눈 배율을 뜻하는 ‘균등화 처분가능소득 5분위 배율’은 5.75배로 1년 전 같은 분기(5.34배)보다 0.41배포인트 늘어났다. 배율이 커진다는 것은 빈부 격차, 즉 분배의 악화를 뜻한다.

유혜미 한양대 금융경제학부 교수는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으면 물가가 오르는 수준을 임금이 오르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면서 실질소득이 계속 내려갈 수밖에 없다”면서 “소득 분위가 낮을수록 대출이 많은데, 이자 부담까지 겹치면서 쓸 수 있는 돈이 줄어 가계 경제에 타격이 심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작년까지는 코로나19 지원금 등으로 이전소득이 늘어날 여지가 있었지만, 정부가 재정 긴축 모드를 선언한 만큼 저소득층 상황이 개선될 여지가 크지 않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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