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유미의 제대로 쓰는 해방 전후사] 38선 미국 책임론은 단견… 美 힘의 한계가 반영된 역사적 산물이었다
日 항복 받으려는 군사작전의 일부
소련 北 점령은 국제협력 고려한 것
그 판단이 한반도에 혼란 불러왔다
소련 봉쇄 위해 美가 38선 그었다는
책임론은 운동권 반미주의의 영향
해방 전후사를 둘러싼 해석과 논쟁이 치열하게 전개돼 왔으나 연구는 아직도 미흡하다. 일제가 1940년대 들어 조선어 신문들을 폐간하고 출판 활동을 탄압하면서 조선인의 시각이 담긴 당대의 사료가 매우 부족한 것이 한 원인이다. 그러나 태평양전쟁의 전개와 종전, 미군정과 정부 수립 등을 더 깊이 연구하지 않고는 역사적 상황에 대해 추상적이거나 편향된 해석을 할 수 있다. 한국 근현대사에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 재미 학자 문유미 스탠퍼드대 교수가 ‘제대로 쓰는 해방 전후사’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38선을 기준으로 국토가 분단된 것은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다. 과거에 수많은 비극과 오늘날 벌어지는 문제들도 여기에서 시작됐다. 그렇기에 누가 언제, 어떤 목적으로 38선을 그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이 질문에는 군사적 편의론과 정치적 의도설, 두 가지 해석이 맞서 왔다. 군사적 편의론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군의 항복과 무장 해제를 위한 군사적 필요에 따라 분할선이 설정됐다고 본다. 반면 정치적 의도설은 미국이 소련의 팽창을 막고 자국 이익을 실현하려는 목적으로 남한을 점령했다고 해석하는데, 현재는 이 해석이 학계와 대중 모두에 강력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내 생각으로는 미국의 38선 획정과 남한 점령은 군사적 필요와 정치적 목적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미국의 한반도 점령은 애초에 소련 봉쇄를 목표로 하지 않았다. 태평양전쟁 최종 단계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려는 군사작전의 일부로, 적어도 1944년 후반부터 검토하고 준비해 온 일이었다. 38선을 경계로 소련의 북한 점령을 허용한 것은 미국의 힘의 한계를 드러내는 동시에, 전후 한반도 문제를 국제 협조로 해결하려는 정치적 노선의 산물이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의 사료를 폭넓게 살펴보면 이런 미국의 군사적·정치적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을 위하여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받아내려고 미국은 다양한 군사 작전을 구상하면서 여러 경우의 수를 예측했다. 동시에 전후 질서를 염두에 둔 군사적·정치적 결정을 순차적으로 내렸다. 핵심 정책 결정 기관은 합동참모본부(JCS)와 국무부, 전쟁부(육군), 해군부의 요인들로 구성된 삼부조정위원회(SWNCC)였다. 두 기관에는 각종 특별기구가 부속돼 방대한 정보가 수집되고 정책 결정에 반영됐다.
미 합참은 일본 본토의 군사력을 완전히 파괴하더라도 상황 변화에 따라 점령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인지했다. 일본 정부가 항복 선언을 거부하거나 만주·조선 등 본토 바깥에서 일본군이 계속 저항할 경우, 연합군의 본토 지위마저 위험해질 수 있었다.
이런 복합적 변수에 대응해, 점령군 최고 사령부는 서로 다른 내용의 대일 포고문(proclamation)과 일반 명령(general order) 초안을 준비했다. 만약 여러 어려움이 중첩되면, 국제법상 ‘완전한 패배(total defeat)’에 따른 권위를 상실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전쟁을 일으킨 일본 구체제를 해체하고 새 정부를 세우는 고강도 점령 목적을 대일 포고문에 담을 수 없게 될 상황도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의 최종적 대일 작전 계획에는 대만, 조선, 사할린 남부, 만주 등 일본 본토 이외 지역에서 미군의 군사 작전 방식, 점령 형태, 주둔군 구성, 점령 후 정치적 조치 등에 대한 검토가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한반도 점령과 삼부조정위원회의 결정
한반도 점령과 관련된 미국의 결정은 합참과 삼부조정위원회가 만든 ‘일본의 무조건 항복’에 관한 문서들(SWNCC 16과 22 시리즈)과 합참의 한국 관련 문서들에 그 배경이 잘 나타나 있다. 전황이 변화하면서 본토 밖 일제 지배 지역에 대한 계획도 점점 구체화됐다. 이 결정 과정은 삼부조정위 문서 87번 시리즈가 잘 보여준다. ‘극동의 정치적·군사적 문제: 일본 제국과 그 외 지역의 군사적 점령: 점령 대상 지역’이라는 제목이다.
한반도 점령에 관한 미국의 정치적 의도가 가장 선명하게 보이는 것은 1945년 5월 23일 자 삼부조정위 문서와 그 첨부 자료(SWNCC 87/1/D)다. 이 문서에서 국무부는 어떤 지역에 군정이 설치될지는 군사 작전 결과에 따라 결정되겠지만, 일부 지역에서는 전략적·정치적·사회적·민족적 요인을 주의 깊게 고려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루스벨트, 처칠, 장제스가 카이로 회담(1943년 11월 22~26일)에서 조선 독립을 공약한 사실을 우선적으로 언급했다. 38선 획정 문제를 깊이 연구한 김기조 교수에 따르면, 이 문서가 작성될 즈음 일본은 중국과의 평화 협상을 추진하면서, 후버 전 대통령을 통해 조선과 대만의 보유를 전제로 한 ‘조건부 항복’을 미국과 교섭 중이었다고 한다. 미국이 카이로 공약을 지킨 것은 천만다행이었다.

삼부조정위의 87번 문서 시리즈에서 국무부는 소련이 한반도와 국경을 접하고 있고, 역사적으로 주변국과 오랜 갈등을 가진 지역인 만큼, 연합국이 한반도를 공동으로 점령·통치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때 각국 군대 규모는 미국의 참여 효과를 저해하지 않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규정했다. 군정은 향후 과도적 국제 관리 기구가 구성되거나 조선이 독립할 때까지 일시적 임무를 맡도록 설계됐다.
주목할 대목은, 소련군이 다른 연합국 군대보다 먼저 한반도를 점령할 경우 미국은 점령 참여를 재고해야 한다고 명시한 점이다. 또 다른 문서에선 군사 작전의 결과로 미군이 한반도를 점령하고 군정을 이미 확립한 경우라도, 종전 후에는 공동 점령과 공동 정부 수립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단 미군 규모는 미국이 실질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고 못박았다.
국무부가 작성한 이 문구들은 삼부조정위원회 결정문에는 담기지 않았다. 그러나 한반도에서 공동 점령을 실시하며,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규모의 주둔군을 유지한다는 기본 방침은 종전 직후까지 이어졌다.

얄타 회담의 미·소 협조와 38선 획정
1945년 2월 얄타 회담에서 소련이 대일전 참전을 결정하자 미·소 양국은 군사 협조와 작전 구역의 경계선을 논의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미 합참은 1945년 7월 10일쯤 한반도 남부를 우선 점령 대상으로 한다는 계획을 시사했고, 포츠담 회담 당시 미·소 참모총장은 한반도 북부 소련의 해·공군 작전 구역 설정에 합의했다. 하지만 분할 점령과 경계선 자체는 분명하지 않았다.
38선 최종 획정 경위는 이완범·김기조 교수에 의해 상세히 밝혀진 바 있다. 방대한 미국 문서를 분석한 두 연구자는 1945년 8월 10일 소련군이 한반도 북부에 진입했다는 전문을 받은 후 11일 새벽 미 육군 작전국 전략정책단장 조지 링컨(George A. Lincoln) 준장이 38선을 소련군 남하의 하한선으로 정하고 상부의 승인을 받았음을 실증했다. 미국은 대일 군사 작전 계획에서 부산과 서울 지역을 한반도 최우선 점령 지역으로 설정했는데, 링컨 준장은 이를 숙지한 상태에서 서울 이북의 38선을 선택한 것이다.
결국 미국의 한반도 점령은 일본 항복 보장 작전의 일부였다. 미국이 38선을 획정하고 남한 점령에 그친 것은 얄타 회담의 미·소 합의를 기반으로 한 국제 협력 노선의 산물이었다. 그래서 미국은 소련의 사할린 남부 점령을 묵인했고 소련은 미국의 38선 제안을 쉽게 받아들인 것이다. 소련 봉쇄를 위해 미국이 분단을 의도했다는 책임론은 민주화 과정에서 확산된 반미주의가 역사 인식에 영향을 준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은 당시 소련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했지만, 종전 초기에는 루스벨트와 스탈린이 합의한 틀 안에서 문제를 풀려 했다. 이 판단은 한반도에 혼란을 불러왔고, 냉전 진행과 함께 변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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